세계적인 갤러리 가고시안(Gagosian)이 9월 2일부터 5일까지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프리즈 서울 2026’에 참가해 영국 현대미술가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의 회화와 조각을 집중 조명한다.
가고시안은 부스 C10에서 지난 40여 년 동안 이어진 허스트의 작품 세계를 대표하는 주요 연작을 선보인다. 이번 프레젠테이션은 ‘스핀 페인팅(Spin Paintings)’, ‘필 캐비닛(Pill Cabinets)’, ‘트레저스(Treasures)’, ‘모노크롬 버터플라이 페인팅(Monochrome Butterfly Paintings)’, ‘더 시크릿 가든 페인팅(The Secret Gardens Paintings)’, ‘컬러 스페이스(Colour Space)’ 등을 아우른다.
허스트는 회화와 조각, 설치 등 다양한 형식과 재료를 활용해 예술과 삶의 경계를 탐구해 온 작가다. 충격적인 소재와 일상적인 사물을 넘나들며 아름다움과 믿음, 진실, 삶과 죽음, 질서와 혼돈, 현실과 허구의 관계를 끊임없이 질문해 왔다.
이번 프리즈 서울 출품작들은 허스트의 작업이 지닌 폭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동시에 인간의 경험을 형성하는 근본적인 힘을 되짚는다. 서로 다른 시기에 제작된 작품들이 한 공간에 배치되면서 작가가 지속해서 탐구해 온 생명과 죽음, 과학과 종교, 우연과 통제라는 주제가 교차한다.
우연이 만들어내는 색채의 폭발
‘스핀 페인팅’은 회전하는 캔버스 위에 가정용 광택 페인트를 붓는 방식으로 제작된다. 빠르게 회전하는 화면에서 원심력에 의해 물감이 사방으로 퍼지며 예측하기 어려운 색채와 형태를 만들어낸다.
허스트는 1970년대 어린 시절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본 회전 그림에 영감을 받아 1990년대 초 런던 남부의 작업실에서 이 기법을 실험하기 시작했다. 제작 과정에는 기계적인 회전과 작가의 행위가 동시에 개입하지만, 최종적인 구성은 우연에 맡겨진다.
출품작 ‘Beautiful Celebration of Our Latest Obsession… Painting’(2019)은 지름 244㎝ 규모의 대형 원형 회화다. 화면을 휘감는 강렬한 색채와 소용돌이는 통제할 수 없는 인간 존재의 혼란을 시각화하면서 그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의학과 신앙이 충돌하는 ‘필 캐비닛’
1990년대 후반부터 이어진 ‘필 캐비닛’ 연작은 의학과 약품, 인간의 믿음을 결합한다. 벽에 설치된 유리문 캐비닛 안에는 수많은 알약이 수술실을 연상시킬 정도로 정밀하게 배열된다. 거울로 마감된 내부는 알약의 형태를 반사해 시각적 밀도를 더욱 높인다.
작품 속 알약은 실제 의약품이 아니라 석고와 레진, 금속 등으로 하나씩 제작하고 채색한 조각이다. 허스트는 현대사회에서 과학과 의학에 대한 믿음이 종교적 신앙을 대체하는 현상에 주목한다. 약장을 현대의 제단처럼 제시하면서도 의학이 인간에게 완전한 구원을 제공할 수 있는지를 되묻는다.
대표 출품작 ‘Nemesis’(2007)는 유리와 스테인리스스틸, 알루미늄, 니켈, 비스무트, 레진, 석고 등 다양한 재료를 결합한 작품이다. 정교하게 배열된 약의 형상은 생명을 연장하려는 인간의 욕망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동시에 드러낸다.
허구의 난파선에서 건져 올린 보물
‘트레저스’ 연작은 진실과 허구의 경계를 무너뜨린 허스트의 대규모 세계 구축 프로젝트다. 작가는 2천여 년 동안 인도양 해저에 가라앉아 있던 가상의 난파선에서 고대 유물이 발견됐다는 이야기를 만들고, 그 서사에 등장하는 보물들을 조각으로 제작했다.
출품작 ‘The Severed Head of Medusa’(2008)는 그리스 신화 속 메두사의 잘린 머리를 청동으로 형상화했다. 작품은 고대 유물처럼 보이지만 허스트가 창조한 허구적 고고학의 산물이다. 관람객은 역사적 사실처럼 치밀하게 구축된 이야기 앞에서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예술적 허구인지 질문하게 된다.
죽음 속에서도 살아 있는 나비
나비는 허스트의 작품 세계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모티프다. 그는 1989년 런던 브릭스턴 작업실에서 아직 마르지 않은 캔버스 표면에 붙은 곤충에서 영감을 얻은 뒤 나비를 작품에 사용하기 시작했다.
1991년 런던에서 열린 첫 개인전 ‘In and Out of Love’를 통해 본격적으로 등장한 나비는 사랑과 변신, 재생, 영혼을 상징한다. 동시에 죽은 나비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생명의 아름다움과 죽음의 불가피성을 함께 드러낸다.
‘Love Poem’(2008)은 단색의 광택 페인트 화면 위에 나비를 배치한 작품이다. 선명한 색채와 섬세한 나비의 형태는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전달하지만, 실제 생명의 흔적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관람객을 삶과 죽음의 경계로 이끈다.
정밀함과 우연이 공존하는 정원
‘더 시크릿 가든 페인팅’ 연작은 인간과 자연환경의 관계를 다룬다. 꽃이 가득한 정원의 이미지 위로 물감을 흩뿌려 구상적인 풍경과 추상적인 행위를 하나의 화면에 결합한다.
출품작 ‘Garden of Fun and Games’(2023)는 각각 274×213㎝ 크기의 두 화면으로 구성된 대형 유화다. 울창한 꽃과 식물이 만들어내는 정밀한 이미지 위에 즉흥적인 물감 자국이 겹쳐지면서 아름다움과 혼돈, 질서와 우연이 공존하는 자연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연작은 인상주의 풍경화의 전통을 환기하는 동시에 물감을 던지고 흩뿌리는 액션 페인팅의 표현 방식을 받아들인다. 허스트는 자연의 화려함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이 자연을 바라보고 통제하려는 방식까지 화면 안에 끌어들인다.
기계적 질서에 되돌아온 인간의 손
‘컬러 스페이스’ 연작은 허스트의 대표적인 ‘스폿 페인팅’과 ‘스핀 페인팅’의 특징을 결합한다. 일정한 크기의 색점을 반복한 기존 스폿 페인팅이 기계로 제작된 듯한 완벽한 질서를 추구했다면, 컬러 스페이스에는 물감의 번짐과 겹침, 흘러내린 흔적 등 인간의 손이 지닌 불완전성이 적극적으로 드러난다.
‘Imitation Gold’(2016)는 168×196㎝ 화면에 수많은 색점을 중첩한 작품이다. 화면 속 점들은 서로 밀고 겹치며 색종이 조각이나 현미경으로 확대한 세포처럼 보인다. 엄격한 체계와 즉흥적인 표현이 충돌하면서 허스트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질서와 혼돈의 긴장을 형성한다.
한국 관객과 다시 만나는 데미안 허스트
이번 프리즈 서울 프레젠테이션은 허스트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개최한 아시아 최초의 미술관 회고전 이후 이어지는 한국 관객과의 만남이라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가고시안은 해당 회고전에 5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방문했다고 밝혔다.
허스트는 한국이 고유한 문화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는 점이 흥미롭고 기쁘다는 소감을 전했다. 이번 가고시안 부스는 회고전에서 확인된 한국 관객의 높은 관심을 프리즈 서울의 현장으로 이어가는 자리가 될 전망이다.
가고시안의 데미안 허스트 프레젠테이션은 단순히 대표작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화려한 색채와 정교한 형식 이면에 자리한 죽음의 공포, 과학에 대한 믿음, 자연과 인간의 관계,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된다.
행사 개요
행사명: 프리즈 서울 2026
전시: 데미안 허스트 개인 프레젠테이션
기간: 2026년 9월 2일~5일
장소: 서울 코엑스
부스: C10
참여 갤러리: 가고시안
참여 작가: 데미안 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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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만택 기자 dream-kaz@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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