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영국 록 음악계에는 블루스와 재즈, 포크, 사이키델릭, 클래식 음악의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사운드를 모색하던 그룹들이 잇따라 등장했다. 영국 도싯 출신의 그룹 룸(Room) 역시 그 흐름 속에서 록 음악의 비상을 꿈꿨던 밴드다.

그룹 룸(Room) 1970년 앨범 “Pre-Flight”

룸은 활동 당시 크게 주목받지 못했고 단 한 장의 앨범만을 남긴 채 사라졌다. 그러나 그들이 1970년 발표한 유일한 앨범 《Pre-Flight》는 반세기가 넘는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초기 브리티시 프로그레시브 록의 숨은 명반으로 회자되고 있다.

 

룸의 음악은 여성 보컬을 중심으로 헤비한 기타와 재즈풍의 리듬, 소규모 오케스트라 편곡을 결합한 것이 특징이다. 리드 보컬 제인 케번(Jane Kevern)을 비롯해 리드 기타리스트 스티브 에지(Steve Edge), 베이시스트 로이 풋(Roy Putt), 드러머 밥 젠킨스(Bob Jenkins), 세컨드 기타리스트 크리스 윌리엄스(Chris Williams)가 밴드의 사운드를 완성했다.

 

《Pre-Flight》에서 가장 먼저 귀를 사로잡는 것은 오케스트라의 브라스와 현악기다.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 베이스, 트럼펫, 호른, 트롬본으로 구성된 소규모 오케스트라는 사이키델릭하고 심포닉한 사운드를 한층 웅장하고 풍성하게 확장한다.

 

록 그룹이 오케스트라를 음악에 끌어들이는 일은 자칫 과도하거나 어색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룸은 오케스트라를 제한적이면서도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현악기와 관악기는 밴드의 연주를 압도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녹아들며, 각 곡이 지닌 분위기와 서사를 확장하는 역할을 한다.

 

두 부분으로 구성된 타이틀곡은 당시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밴드의 작품이라고 보기 어려울 만큼 세련된 구성을 보여준다. 록과 재즈, 심포닉 음악, 포크가 유기적으로 결합하면서 《Pre-Flight》가 지향했던 음악적 세계를 압축해 들려준다. 초기 프로그레시브 록이 여러 장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재구성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매력적인 곡이다.

 

‘Where Did I Go Wrong?’은 5분이 넘는 길이의 느린 블루스 곡이다. 다소 단조롭게 느껴질 수 있지만, 차분하게 흐르는 연주 속에서 룸이 지닌 블루스 록의 뿌리를 발견할 수 있다.

 

‘No Warmth in My Life’는 축축하면서도 매혹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제인 케번의 맑은 메조소프라노와 혼, 어쿠스틱 기타, 일렉트릭 기타, 보컬 편곡이 조화를 이루며 앨범의 서정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Big John Blues’는 록 공연장보다 R&B 페스티벌의 춤추는 무대를 떠올리게 하는 곡

이다. 경쾌하게 흘러가는 이 곡에 이어지는 ‘Andromeda’는 전혀 다른 세계로 청자를 이끈다. 블루스와 오케스트라, 사이키델릭 트랜스, 제인 케번의 소울풀한 목소리가 어우러지며 몽환적인 풍경을 펼쳐 보인다.

 

‘War’는 앞선 곡의 강렬한 분위기를 이어받으면서 크리스 윌리엄스와 스티브 에지의 뛰어난 듀얼 기타 연주를 전면에 내세운다. 두 기타가 서로 대화하듯 주고받는 연주는 곡의 긴장감을 끌어올리고, 룸의 음악이 지닌 헤비 록의 성격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앨범의 정점은 ‘Cemetery Junction Pt. 1 & 2’다. 웅장한 현악기와 뜨거운 록 퓨전 리듬이 맞물리며 룸이 추구했던 음악적 실험을 완성한다. 블루스 록과 재즈 록, 사이키델릭 록, 오케스트라 사운드가 한데 모여 장대한 흐름을 만들어낸다.

 

제인 케번의 보컬에서는 1950년대를 빛낸 여성 재즈 보컬리스트들에 대한 관심을 엿볼 수 있다. 처음에는 다소 연약하게 들릴 수 있지만, 반복해서 들을수록 특유의 매력이 점차 가까이 다가온다. 어떤 대목에서는 당시 스튜디오의 순간을 그대로 포착한 것처럼 생생하고 사랑스럽다.

 

여성 보컬이 이끄는 초기 프로그레시브 록이라는 점에서 룸의 음악은 동시대 영국 그룹 어피니티(Affinity)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룸은 헤비한 듀얼 기타와 오케스트라 편곡, 재즈풍의 리듬을 결합하며 자신들만의 개성을 만들어냈다.

 

앨범 전반을 관통하는 일렉트릭 기타는 독창적인 멜로디와 절제된 연주를 들려준다. 재즈 록에 가까운 유연한 전개 속에서도 때로는 프로토 메탈을 연상시킬 정도로 무겁고 강렬한 사운드를 만들어낸다.

 

《Pre-Flight》의 진정한 리듬 키맨은 드러머 밥 젠킨스다. 그는 무거운 기타 리프를 단순하게 따라가는 데 그치지 않고 언제나 재즈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한다. 변화무쌍한 드럼 롤과 섬세한 심벌즈 연주는 곡의 흐름을 풍부하게 만들며, 앨범을 듣는 또 하나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녹음 음질도 인상적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1970년대 앨범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풍부한 공간감을 들려준다. 악기들은 음악적 배경 속에 고르게 배치돼 있으며, 오케스트라와 밴드의 연주가 뒤엉키지 않고 각각의 음색을 선명하게 유지한다.

 

《Pre-Flight》는 누구에게나 쉽게 다가가는 앨범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초기 프로그레시브 록의 실험성과 1970년대 브리티시 록의 다양한 음악적 흐름을 살펴보려는 이들에게는 한 번쯤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작품이다. 훗날 희귀 음반 발굴과 재발매로 잘 알려진 체리 레드(Cherry Red)의 전문가들이 이 앨범을 다시 세상에 소개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앨범 표지는 베이시스트 로이 풋이 직접 그렸다. 빨래가 널려 있는 삼엽 비행기가 하늘을 나는 모습은 귀엽고 사랑스럽다. 힘차게 비상하는 비행기와 일상의 빨래가 한 화면에 담기면서 묘한 유머와 낭만을 전한다.

한 번의 비행만을 남기고 사라진 그룹 룸. 비록 그들의 여정은 길지 않았지만, 《Pre-Flight》에 담긴 음악은 여전히 하늘을 날고 있다. 블루스와 재즈, 록과 오케스트라의 경계를 넘어 훨훨 날아오르려 했던 젊은 음악인들의 꿈이 이 한 장의 음반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글 ㅣ최재우 문화예술기획 제이비엠 대표

앨범 개요

앨범명: Pre-Flight
아티스트: Room
발표 연도: 1970년
출신 지역: 영국 도싯
장르: 프로그레시브 록, 사이키델릭 록, 재즈 록, 블루스 록
리드 보컬: Jane Kevern
리드 기타: Steve Edge
세컨드 기타: Chris Williams
베이스: Roy Putt
드럼: Bob Jenkins
앨범 성격: 룸의 유일한 정규 앨범
주요 특징: 여성 보컬, 듀얼 기타, 소규모 오케스트라 편곡
앨범 커버: Roy Putt
재발매: Cherry 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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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만택 기자 dream-kaz@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