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듣기 전에 먼저 눈길을 빼앗는 음반이 있다. 한 장의 레코드 재킷이 단순한 포장을 넘어 음악보다 먼저 말을 걸고, 때로는 그 시대의 사회와 인간을 향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경우다.

 

미국 그룹 암브로시아(Ambrosia)가 1982년 발표한 다섯 번째 스튜디오 앨범 ‘Road Island’가 그런 음반이다. 

 

이 앨범의 커버를 그린 인물은 영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삽화가 랄프 스테드만(Ralph Steadman)이다. 사회와 정치에 대한 풍자, 거칠고 폭발적인 선, 기괴하면서도 유머러스한 인물 묘사로 독특한 세계를 구축한 작가다.

랄프 스테드만(Ralph Steadman), 영국 가디안 지 인터뷰 기사

스테드만은 1935년 영국 체셔에서 태어났으며, 젊은 시절부터 ‘펀치(Punch)’, ‘프라이빗 아이(Private Eye)’, ‘데일리 텔레그래프’, ‘뉴욕타임스’, ‘롤링 스톤’ 등에서 프리랜서 삽화가로 활동했다. 특히 미국 저널리스트이자 작가 헌터 S. 톰슨(Hunter S. Thompson)과의 오랜 협업은 그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됐다. 

 

두 사람의 작업은 이른바 ‘곤조 저널리즘(Gonzo Journalism)’의 시각적 이미지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랄프 스테드만(Ralph Steadman) 작품

그의 그림은 아름답게 정돈된 현실을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잉크가 폭발하듯 튀고, 인물의 얼굴과 신체는 과장되거나 일그러지며, 문명과 권력, 욕망과 소비의 풍경이 불안하고 우스꽝스럽게 드러난다. 그의 작품에서는 전쟁과 폭력, 도시의 군중, 기계와 인간이 뒤섞인 장면이 강렬하게 등장한다. 흰 여백과 검은 잉크, 붉은색과 노란색이 충돌하며 스테드만 특유의 불안정한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랄프 스테드만(Ralph Steadman) 작품

그의 활동 영역은 신문과 잡지에 머물지 않았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보물섬’, ‘동물농장’ 등 여러 문학작품의 삽화를 제작했고, 더 후(The Who), 프랭크 자파(Frank Zappa), 닐스 로프그렌(Nils Lofgren), 암브로시아 등 음악가들의 앨범 커버에도 참여했다. 1985년에는 핼리 혜성의 출현을 기념한 영국 우표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Road Island’의 앞표지를 바라보면 스테드만의 세계가 음악과 어떻게 만나는지가 선명해진다.

Ambrosia-RoadIsland-front-1982

작은 섬 위로 검은 도로가 이어진다. 낡은 행색의 한 남자가 기타를 연주하며 그 길을 걷고 있고, 등에는 ‘ROAD ISLAND’라고 적힌 커다란 북이 매달려 있다. 섬에는 비현실적으로 길고 가느다란 야자수 한 그루가 솟아 있다. 하늘과 바다, 황량한 땅이 만나는 장면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어딘가 쓸쓸하다.

 

앨범 제목 ‘Road Island’는 ‘Rhode Island’를 연상시키는 언어적 유희처럼 보이지만, 스테드만의 그림 안에서는 말 그대로 ‘도로가 있는 섬’으로 시각화된다. 어디론가 향하는 길이 존재하지만 그 길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기타를 든 여행자는 앞으로 걸어가고 있으나 그의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알 수 없다.

 

앨범 뒷면은 더욱 상징적이다.

 

푸른 지구 위를 하나의 도로가 길게 가로지르고 있으며, 작은 인물이 그 길을 따라 이동하는 모습이 보인다. 지구 아래쪽은 붉고 검은 색채가 뒤엉켜 마치 불타거나 파괴된 세계를 연상시킨다. 반면 지구 위쪽에는 푸른빛과 밝은 하늘이 펼쳐진다.

Ambrosia-RoadIsland-back-1982

앞면에서 한 작은 섬의 길을 걷던 여행자가 뒤표지에서는 거대한 지구를 횡단하는 존재처럼 확장된다. 개인의 여행이 어느 순간 인류 전체의 여행처럼 읽히는 대목이다.

그림 위에 흩어진 손글씨와 낙서 같은 흔적 또한 스테드만의 특징이다. 정돈된 활자 대신 작가의 손이 직접 개입한 듯한 문자가 화면을 가로지른다. 그림과 문자, 낙서와 색채가 한 화면에서 충돌하면서 ‘Road Island’는 단순한 밴드의 초상이나 로고 중심의 앨범 재킷과 전혀 다른 모습을 갖게 된다.

 

이 시각적 세계와 만나는 음악이 바로 암브로시아다.

 

암브로시아라는 이름은 그리스 신화에서 신들의 음식물을 의미하며 어원적으로 ‘불사(不死)’와 연결된다. 그룹은 1970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결성됐고, 아트록과 팝을 결합한 음악으로 대중적인 성공을 거뒀다. 부드럽고 선율적인 편곡, 풍부한 보컬 하모니, 심포닉한 키보드와 정교한 오케스트레이션이 이들의 음악을 특징짓는다.

 

1975년 데뷔 앨범에서는 ‘Nice, Nice, Very Nice’와 ‘Holdin’ On To Yesterday’가 주목받았고, 앨범 후반부의 ‘Drink Of Water’ 역시 팬들 사이에서 중요한 곡으로 꼽혀왔다. 이후 1978년 ‘How Much I Feel’, 1980년 ‘Biggest Part Of Me’가 각각 빌보드 싱글 차트 3위에 오르면서 암브로시아는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렇지만 ‘Road Island’는 그들의 이전 히트곡처럼 부드러운 팝 음악만을 기대한다면 조금 다른 인상을 준다.

 

1982년 발표된 이 앨범은 암브로시아의 다섯 번째 앨범이자 당시 공식적으로 발표된 마지막 스튜디오 앨범이었다. 대중적으로 크게 히트한 싱글은 없었지만, ‘Ice Age’와 같은 곡은 팬들에게 중요한 작품으로 기억됐다.

 

어쩌면 바로 그 지점에서 랄프 스테드만의 그림이 더욱 흥미로워진다.

 

스테드만의 그림에는 완벽하게 안정된 세계가 없다. 길은 구부러지고, 인물은 비틀리며, 문명은 언제든 붕괴할 것처럼 위태롭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사람은 계속 길을 걷는다.

 

‘Road Island’의 기타를 든 여행자도 마찬가지다.

작은 섬에서도 걷고, 거대한 지구 위에서도 길을 간다.

 

길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음악가에게 길은 새로운 음악을 찾아가는 과정이고, 화가에게 길은 현실을 바라보고 질문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듣는 사람에게 길은 한 장의 음반을 통해 자신만의 기억과 시대를 다시 여행하는 과정이 된다.

 

좋은 앨범 커버는 음악을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음악을 듣기 전에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우리가 만든 길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그리고 이 길을 계속 걸어가야 하는가.

 

1982년 암브로시아의 ‘Road Island’를 바라보며 40여 년이 지난 오늘에도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면, 랄프 스테드만의 그림은 아직 끝나지 않은 셈이다. 음악은 턴테이블 위에서 멈춰도 그림 속 길은 계속 이어진다.

 

눈으로 한 번 보고,
귀로 한 번 듣고,
마지막에는 마음속으로 다시 걷게 되는 음반.

그것이 오늘의 ‘이 한장의 음반’, 암브로시아의 ‘Road Island’다.

 

글 ㅣ 최재우 문화예술기획 제이비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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