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을 듣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는 음악뿐 아니라 한 장의 앨범 커버에 담긴 이야기를 발견하는 데 있다. 그림과 사진, 디자인이 음악과 만나면서 하나의 시대와 문화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로드 스튜어트(Rod Stewart)의 1976년 앨범 ‘A Night on the Town’은 미술과 대중음악이 절묘하게 만난 대표적인 음반 가운데 하나다.

앨범 표지를 바라보면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이라는 생각이 든다. 수많은 사람들이 야외 공간을 가득 메우고 춤을 추고 대화를 나눈다. 테이블에는 술잔이 놓여 있고, 화려하게 차려입은 남녀의 모습 사이로 도시의 흥겨움과 낭만이 넘쳐난다.
이 장면의 뿌리는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 1841~1919)의 걸작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Bal du moulin de la Galette, 1876)’에 있다. 로드 스튜어트의 앨범 커버는 이 작품을 미국의 일러스트레이터이자 화가인 마이크 브라이안(Mike Bryan)이 패러디해 완성한 것이다.
르누아르가 그린 빛과 사람들
르누아르는 1862년 샤를 글레르의 공방에서 클로드 모네를 만나며 본격적인 화가의 길을 걸었다. 특히 모네와 함께 그르누이에르에서 작업했던 경험은 그의 작품 세계를 변화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야외에서 직접 빛을 관찰하고 그리는 과정에서 그의 색조는 더욱 밝아졌고 붓놀림도 세분화됐다. 그림자를 표현할 때 검은색에 의존하지 않고, 순간적으로 변화하는 빛과 색을 화폭에 담으려 한 것이다. 모네가 풍경에 관심을 기울였다면 르누아르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발생하는 분위기, 표정, 행복과 생동감에 더 깊은 관심을 보였다. 1876년 완성된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는 이러한 르누아르의 예술 세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당시 몽마르트르의 물랭 드 라 갈레트는 파리 시민들이 춤과 음악을 즐기던 유명한 공간이었다. 르누아르는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모습을 하나의 거대한 집단 초상처럼 펼쳐냈다. 나뭇잎 사이로 떨어지는 햇빛, 사람들의 옷 위에서 흔들리는 밝은 색채, 서로 이야기를 나누거나 춤을 추는 젊은 남녀의 모습이 화면 전체에 리듬을 만들어낸다.
정지된 그림임에도 어딘가에서 음악과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바로 이런 생동감이 100년 뒤인 1976년 로드 스튜어트의 음반 표지에서 또 다른 방식으로 되살아났다. 자료에서도 이 작품을 르누아르를 대표적인 인상파 화가로 자리매김하게 한 중요한 작품으로 소개하고 있다.
르누아르의 인물들 사이에 등장한 로드 스튜어트
앨범 커버를 그린 마이크 브라이안은 전통적인 회화와 디지털 매체를 폭넓게 다뤄온 미국의 일러스트레이터이자 화가다. 미술 작품뿐 아니라 음반 패키지, 영화 포스터, 비디오 게임 표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으며 사진을 연상시키는 극사실적인 묘사로 잘 알려져 있다.
‘플래툰’, ‘로보캅’, ‘더 플레이어’, ‘비디오드롬’, ‘나는 전설이다’, ‘엘리시움’ 등 여러 영화와 관련된 포스터·콘셉트 디자인 작업도 그의 경력에 포함된다. 클래식 자동차와 항공기, 대중문화 아이콘, 화려한 라이프스타일의 장면 역시 그가 즐겨 다뤄온 소재다. 그런 마이크 브라이안이 르누아르의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를 로드 스튜어트의 세계로 가져왔다.
원작의 인물과 구도, 북적이는 파티의 분위기를 빌려오면서도 화면 중심에는 로드 스튜어트를 자연스럽게 배치했다. 르누아르가 그렸던 19세기 파리의 사교 공간이 20세기 록 스타의 밤으로 변신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두 작품이 ‘밤의 즐거움’이라는 정서를 공유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모여 춤을 추고, 술을 마시고, 사랑을 이야기하는 풍경. 르누아르에게 그것은 근대 파리 시민의 일상이었고, 로드 스튜어트에게는 자유와 사랑, 유혹과 열정이 공존하는 록 음악의 세계였다.
원조 허스키 보이스 로드 스튜어트
1945년 태어난 로더릭 데이비드 스튜어트(Roderick David Stewart)는 특유의 거칠고 쉰 듯한 목소리로 세계적인 사랑을 받아온 영국의 가수이자 작곡가다. 그의 음악 경력은 1960년대 초 하모니카를 연주하며 거리 공연을 하던 시절에서 출발했다. 이후 여러 밴드 활동을 거쳐 솔로 가수로 영역을 넓혔고, 1969년 데뷔 앨범 ‘An Old Raincoat Won't Ever Let You Down’을 발표했다.
초기 로드 스튜어트의 음악에는 록과 포크, 소울, R&B가 자연스럽게 뒤섞여 있었다. 거칠면서도 애잔하고, 때로는 자유분방하지만 깊은 감정을 전달하는 그의 목소리는 이 다양한 장르를 하나로 묶어주는 중심이었다.
1971년 발표한 세 번째 앨범 ‘Every Picture Tells a Story’는 영국과 미국, 캐나다, 호주 차트에서 정상에 오르며 그를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었다. ‘Maggie May’가 크게 성공했고, 이듬해 발표한 ‘Never a Dull Moment’와 수록곡 ‘You Wear It Well’도 인기를 이어갔다.
1975년 ‘Atlantic Crossing’에서는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대표적인 발라드 ‘Sailing’을 선보였다.
그리고 이듬해 등장한 음반이 바로 ‘A Night on the Town’이다.
‘A Night on the Town’, 로드 스튜어트 전성기의 한 장
1976년 발표된 ‘A Night on the Town’은 로드 스튜어트의 음악 경력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앨범은 영국에서 정상을 차지했고, 로드 스튜어트는 이 시기를 중심으로 미국과 캐나다, 영국, 호주 등 주요 음악 시장에서 연이어 상위권 성적을 거뒀다. 특히 수록곡 ‘Tonight's the Night (Gonna Be Alright)’은 미국과 캐나다에서 거의 두 달 동안 1위를 기록하고 여러 나라에서도 상위권에 진입하며 그의 대표곡 가운데 하나가 됐다.
이 노래를 들으며 앨범 표지를 다시 바라보면 그림과 음악 사이에 묘한 연결고리가 생긴다.
‘오늘 밤이 바로 그 밤’이라고 노래하는 로드 스튜어트의 허스키한 목소리와 르누아르의 그림 속에서 춤추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그림 속 사람들에게도 그날은 특별한 밤이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사랑을 시작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였을 것이다. 누군가는 음악에 맞춰 춤을 췄고 또 누군가는 한쪽 테이블에 앉아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로드 스튜어트의 노래도 바로 그런 밤의 감정을 이야기한다.
1970년대를 넘어 ‘살아있는 전설’로
로드 스튜어트의 성공은 ‘A Night on the Town’에서 멈추지 않았다.
1977년 ‘Foot Loose & Fancy Free’에서는 ‘You're in My Heart (The Final Acclaim)’와 ‘Hot Legs’를, 1978년 ‘Blondes Have More Fun’에서는 디스코 스타일의 ‘Da Ya Think I'm Sexy?’를 크게 히트시켰다. 특히 ‘Da Ya Think I'm Sexy?’는 영국, 캐나다, 호주, 미국에서 정상에 오르며 시대를 대표하는 곡으로 자리 잡았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는 뉴웨이브와 신스팝 요소까지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Passion’, ‘Tonight I'm Yours’, ‘Young Turks’, ‘Infatuation’ 등을 잇달아 발표하며 변화하는 대중음악 시장에서도 존재감을 이어갔다.
수십 년에 걸쳐 이어진 그의 기록 역시 화려하다.
전 세계적으로 1억2천만 장 이상의 음반을 판매했으며, 영국에서 10개의 1위 앨범과 31개의 톱10 싱글, 미국에서는 16개의 톱10 싱글을 기록한 아티스트로 소개돼 있다. 솔로 아티스트와 페이시스 멤버로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는 등 오랜 음악적 성취도 이어졌다.
병마를 넘어 다시 무대로
화려한 음악 경력의 이면에는 건강과 싸워야 했던 시간도 있었다.
로드 스튜어트는 성대와 관련된 어려움을 겪으며 다시 노래하는 법을 익혀야 했고, 이후 전립선암 치료를 받았다. 자료에는 이러한 경험을 계기로 암 치료 연구, 특히 어린이 암 치료를 돕기 위한 자선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으며 2019년 전립선암 치료 후 완치 사실을 알렸다고 기록돼 있다.
그럼에도 무대는 계속됐다.
80세를 넘어서도 새로운 음악을 준비하고 공연을 이어가는 그의 모습은 단순히 오래 활동한 스타라는 표현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음악적 유행과 세대가 바뀌었지만, 그 특유의 허스키 보이스는 여전히 로드 스튜어트를 상징한다.
한 장의 그림, 한 장의 음반
르누아르는 1876년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를 그렸다. 그리고 정확히 100년 뒤인 1976년, 로드 스튜어트는 그 그림을 패러디한 커버의 ‘A Night on the Town’을 발표했다.
두 작품 사이에는 한 세기가 놓여 있지만 사람들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만나고, 이야기하고, 사랑하고, 춤을 춘다. 예술은 그 순간을 그림으로 남기기도 하고 음악으로 남기기도 한다. 르누아르의 붓이 파리의 어느 즐거운 하루를 기록했다면 로드 스튜어트의 허스키한 목소리는 1970년대 어느 뜨거운 밤을 노래했다.
그래서 ‘A Night on the Town’은 단순히 유명한 가수의 히트 앨범으로만 바라보기에는 아깝다. 르누아르의 인상주의 회화와 대중문화의 패러디, 그리고 로드 스튜어트의 음악이 한 장의 커버 안에서 만난 독특한 문화적 기록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턴테이블 위에 ‘A Night on the Town’을 올려놓고 ‘Tonight's the Night (Gonna Be Alright)’을 들어보면 어떨까. 르누아르의 그림 속 몽마르트 사람들이 어느새 움직이기 시작하고, 파리의 밤 한가운데에서 로드 스튜어트의 거칠고도 따뜻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한 장의 음반을 눈으로 즐기고 귀로 듣는다는 것은 어쩌면 이런 순간을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로드 스튜어트, ‘Tonight’s the Night’.
시간을 넘어 여전히 노래하는 멋진 ‘나이스 가이’의 건강과 음악을 오래도록 응원해 본다.
글 ㅣ 최재우 문화예술기획 제이비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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