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웠던 계절이 한풀 꺾이고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기운이 스며드는 처서 무렵, 지나가는 여름을 붙잡기보다 조용히 배웅하게 만드는 음악이 있다. 미국의 인디 소울 밴드 듀랜드 존스 앤 더 인디케이션스(Durand Jones & The Indications)가 2025년 발표한 네 번째 앨범 《Flowers》다.

듀랜드 존스 앤 더 인디케이션스(Durand Jones & The Indications) 2025년 앨범 ”Flowers“안드레아 피터슨(Andrea Peterson) 작품

이 음반에는 1960~70년대 소울 음악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모타운 레코드의 정서가 짙게 배어 있다. 그러나 과거의 음악을 그대로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당시 소울 음악의 악기 구성과 풍성한 보컬 레이어를 가져오면서도 현대적인 리듬과 인디 음악의 감각을 더해,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사운드를 만들어낸다.

 

앨범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표지 역시 음악만큼이나 매혹적이다. 진한 청색 바탕 위에 선명하고 단순한 형태의 정물이 놓여 있다. 절제된 색채와 현대적인 구성이 강렬하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표지를 그린 작가는 미국의 화가 안드레아 피터슨(Andrea Peterson)이다.

사막에서 길어 올린 안드레아 피터슨의 환상

안드레아 피터슨

미국 동부 해안에서 성장한 안드레아 피터슨은 노스캐롤라이나주 이스트캐롤라이나대학교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전공했다. 이후 워싱턴 D.C.와 뉴욕으로 거처를 옮기며 그림에 대한 열정을 이어가던 그는 사막이 지닌 독특한 매력에 이끌려 애리조나에 정착했다.

안드레아 피터슨

사막과 산이 맞닿은 미국 남서부의 이국적인 풍경은 그의 예술세계에 무한한 영감을 제공했다. 광활한 대지와 낯선 식물, 강렬한 햇빛과 깊은 그림자는 피터슨의 화면에서 현실과 꿈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미지로 변주된다.

 

그의 작품에는 패턴과 초상, 인물이 중심 소재로 자주 등장한다. 독특한 초현실주의 작가로 평가받기도 하지만, 그의 작업을 하나의 양식으로 규정하기는 쉽지 않다. 작품의 스타일은 폭넓은 스펙트럼 안에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한다. 현실에서 출발한 형상들은 화면 안에서 서로 연결되며, 말로는 온전히 설명하기 어려운 신비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안드레아피터슨-작품

피터슨은 피카소의 ‘숨을 쉬듯 그림을 그린다’는 말을 떠올리며, 자신의 그림 역시 꿈과 같은 마법과 끊임없는 진화의 감각을 불러일으킨다고 설명한다. 그의 작품은 현재 애리조나의 와일드 마이어 갤러리(Wilde Meyer Gallery)에 상설 전시돼 있다.

안드레아피터슨-작품

《Flowers》의 앨범 표지는 이러한 피터슨의 조형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깊고 진한 청색을 배경으로 펼쳐진 정물은 강렬한 색채를 지니고 있지만 지나치게 복잡하지 않다. 선명한 형태와 단순한 표현이 서로 균형을 이루며, 앨범에 담긴 따뜻하고 세련된 빈티지 소울의 정서를 시각적으로 전달한다. 음악을 듣기 전부터 표지만으로 음반의 온도와 향기를 상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교회 합창단에서 시작된 듀랜드 존스의 목소리

 

듀랜드 존스 앤 더 인디케이션스는 인디애나주 블루밍턴에서 결성된 딥 소울 리바이벌 밴드다. 이들은 1960~70년대 빈티지 소울을 바탕으로 삶의 현실과 사랑, 관계의 감정을 강인하면서도 우아한 R&B로 풀어낸다.

그룹 듀랜드 존스 앤 더 인디케이션스(Durand Jones & The Indications)

그룹을 이끄는 두 목소리의 대비는 이들의 가장 특별한 매력이다. 듀랜드 존스의 깊고 묵직한 바리톤과 아론 프레이저(Aaron Frazer)의 맑고 섬세한 하이톤이 한 곡 안에서 교차한다. 두 사람의 목소리는 서로 다른 온도와 질감을 지니면서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풍성한 소울의 결을 완성한다.

 

듀랜드 존스는 미국 루이지애나의 작은 마을에서 성장했다. 그의 음악적 출발점은 교회였다. 뛰어난 성악적 재능을 알아본 할머니의 권유로 청소년 합창단에 들어가 처음 대중 앞에서 노래했고, 이 경험을 통해 보컬의 기초를 다졌다.

 

2012년 서던대학교(Southern University)에서 학사 학위를 받은 그는 고향을 떠나 인디애나대학교 제이콥스 음악대학의 대학원 과정에 진학했다. 캠퍼스의 색소폰 앙상블과 함께 공연하던 중 빈티지 소울과 R&B에 대한 애정을 공유하는 아론 프레이저와 블레이크 라인(Blake Rhein)을 만났다. 음악을 매개로 쌓은 세 사람의 우정은 훗날 밴드 결성으로 이어졌다.

 

이들이 만든 밴드는 여러 파티에서 공연하며 점차 인기를 얻었고, 자신들만의 음반을 만들기 위해 곡을 쓰기 시작했다. 녹음 환경은 화려하지 않았다. 아론 프레이저의 지하실에 마련된 4트랙 녹음 장비와 리드 보컬을 담기 위한 노래방 마이크가 전부였다. 그러나 제한된 장비는 오히려 음악에 생생하고 투박한 질감을 더했다. 그렇게 완성한 음악은 2016년 듀랜드 존스 앤 더 인디케이션스의 이름을 내건 첫 앨범으로 세상에 나왔다.

과거를 복제하지 않고 오늘의 소울로 되살리다

 

《Flowers》는 이들이 오랜 시간 다듬어온 음악적 정체성이 자연스럽게 피어난 네 번째 앨범이다. 미디엄 템포의 드럼과 베이스가 안정적으로 중심을 잡고, 그 위에 가벼운 기타와 부드러운 보컬이 겹쳐진다. 화려하게 몰아붙이기보다 느긋한 리듬 속에서 감정을 조금씩 번지게 하는 음반이다.

 

특히 ‘Flower Moon’은 앨범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곡이다. 필라델피아 소울과 모타운 계열의 로맨틱한 정서가 짙게 흐르며, 풍성한 화음과 부드러운 리듬이 한여름 밤의 공기처럼 천천히 감싸온다. 듀랜드 존스의 깊은 음색과 아론 프레이저의 투명한 목소리가 어우러지면서 과거 소울 음악이 간직했던 낭만과 오늘날 인디 음악의 세련된 감각을 동시에 전한다.

 

이들의 음악이 인상적인 까닭은 옛 소울을 단순히 흉내 내지 않기 때문이다. 시대를 상징했던 연주 방식과 편곡, 보컬 구성을 존중하되 그것을 현재의 언어로 다시 풀어낸다. 복고적인 질감 속에서도 낡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이유다. 오히려 디지털 사운드가 일상이 된 시대에 사람의 목소리와 악기, 느긋한 그루브가 지닌 따뜻함을 새삼 발견하게 한다.

 

추천 감상곡 | Durand Jones & The Indications – ‘Flower Moon’

《Flowers》를 듣고 있으면 습기를 머금은 여름밤의 느린 공기가 떠오른다. 하루 동안 달아올랐던 도시가 서서히 식어가고, 지나간 사랑과 오래된 추억이 어둠 속에서 하나둘 피어나는 듯하다. 앨범 제목처럼 각각의 곡은 서로 다른 빛깔과 향기를 지닌 꽃이 되어 청자의 기억 속에 자리 잡는다.

 

처서는 여름이 물러가고 가을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절기다. 계절은 어느 날 갑자기 바뀌지 않는다. 뜨거운 공기 사이로 조금씩 서늘한 바람이 스며들며 다음 시간을 준비한다. 듀랜드 존스 앤 더 인디케이션스의 《Flowers》 역시 과거와 현재, 여름과 가을, 깊은 바리톤과 맑은 하이톤 사이를 천천히 오가며 계절의 경계를 아름답게 물들인다.

 

올여름 뜨겁게 타올랐던 기억을 억지로 붙잡을 필요는 없다. ‘Flower Moon’을 비롯한 이들의 음악에 몸을 맡기고, 지나가는 여름을 조용히 떠나보내는 것도 좋겠다. 안드레아 피터슨의 짙푸른 그림과 듀랜드 존스 앤 더 인디케이션스의 따뜻한 빈티지 소울이 어우러진 《Flowers》는 여름의 끝에서 가을을 기다리며 듣기에 더없이 어울리는 한 장의 음반이다.

 

글 | 최재우 문화예술기획 제이비엠 대표

 

KANN 블로그 바로가기
https://blog.naver.com/kanlimmtaik/224387384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