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즐기며 듣는 한 장의 음반
 

한 장의 음반을 듣는 즐거움은 반드시 음악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손에 든 음반의 재킷을 바라보고, 그 그림 속 풍경과 색을 천천히 음미하다 보면 어느 순간 시각과 청각의 경계가 사라진다. 그림이 음악을 부르고 음악이 다시 그림의 풍경을 움직이게 하는 경험이다.

 

이번에 소개할 음반은 뉴욕 출신의 베이시스트이자 작곡가, 다중 악기 연주자 윌리암 파커(William Parker)가 이끄는 윌리암 파커 쿼텟(William Parker Quartet)의 2008년 앨범《Petit Oiseau》다. 이 음반은 음악뿐 아니라 미국 화가 데이비드 크롤(David Kroll)의 회화를 앞뒤 재킷에 사용했다는 점에서도 특별하다.

 

‘Petit Oiseau’는 프랑스어로 ‘작은 새’를 뜻한다. 제목처럼 음반의 중심에는 새가 있다. 그리고 그 작은 생명체가 품고 있는 자유, 움직임, 자연의 숨결은 윌리암 파커의 음악과 데이비드 크롤의 회화를 잇는 하나의 통로가 된다.

 

자연과 인간 사이의 낯설고 아름다운 순간, 데이비드 크롤

 

데이비드 크롤은 1956년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태어나 1980년 샌프란시스코 예술대학에서 회화·드로잉·판화를 공부해 미술학사 학위를 받았으며, 1986년 시카고 예술대학에서 회화와 드로잉으로 미술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시카고 예술대학에서 약 20년간 교수로 재직하며 미국 여러 갤러리와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이어왔다.

데이비드 크롤(David Kroll) 작품
데이비드 크롤(David Kroll) 작품
데이비드 크롤(David Kroll) 작품

그의 작품에는 자연이 있지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풍경화와는 다르다. 새와 물고기, 작은 동물과 곤충, 꽃과 나뭇가지가 유럽이나 아시아의 화려한 도자기와 그릇, 컵 등과 함께 정물처럼 놓인다. 극도로 사실적인 사물과 생명체가 비현실적으로 고요한 공간 안에 존재하면서 묘한 초현실적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크롤이 그리고자 하는 것은 단순한 자연의 아름다움이 아니다. 그의 회화는 개인적인 안식처와 내면의 풍경을 보여주는 동시에 인간과 자연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질문한다. 그의 그림은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기보다는 역설을 드러내고, 우리가 자연과 얼마나 멀리 떨어져 살아가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데이비드 크롤(David Kroll) 작품
데이비드 크롤(David Kroll) 작품
데이비드 크롤(David Kroll) 작품

그림 속 생명체들은 살아 있으면서도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하다. 벌은 허공에 머물고, 나비는 날갯짓하는 한순간에 정지하며, 새들은 경계와 호기심이 뒤섞인 모습으로 주변을 응시한다. 자료에서도 이러한 제한된 공간 속 절제된 움직임이 크롤 작품의 중요한 시각적 특징으로 설명된다.

 

바로 이 ‘정지된 순간 속의 움직임’이 윌리암 파커의 음악과 만나는 지점이다.

 

250장이 넘는 녹음, 프리재즈의 중심에 선 윌리암 파커

윌리암 파커 ( William Parker )

1952년 뉴욕 브롱크스에서 태어난 윌리암 파커는 베이시스트이면서 작곡가이고 다양한 악기를 다루는 연주자다. 그는 250장이 넘는 음반을 녹음했고, 그 가운데 60여 장에서는 공동 리더로 활동했다. 솔로 베이스에서부터 4중주와 6중주, 대형 앙상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편성으로 자신의 음악 세계를 구축해 왔다.

 

그의 활동 범위는 재즈의 일반적인 틀을 훌쩍 넘어선다. 브로츠와프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위한 음악과 크고 작은 앙상블을 위한 작품을 작곡했으며, 수많은 성악곡과 멀티미디어 오페라의 음악과 대본에도 참여했다. 그의 음악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개념이 이른바 ‘유니버설 톤(Universal Tone)’이며, 여기에는 즉흥의 언어와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그의 음악관이 담겨 있다.

 

1970년대 초부터 뉴욕 창작 음악의 중심에서 활동한 파커는 돈 체리(Don Cherry), 세실 테일러(Cecil Taylor), 헨리 쓰레드길(Henry Threadgill), 빌리 뱅(Billy Bang), 밀포드 그레이브스(Milford Graves), 빌리 히긴스(Billy Higgins), 써니 머레이(Sunny Murray), 키드 조던(Kidd Jordan) 등과 공연하고 녹음했다. 유럽의 자유즉흥음악을 대표하는 데릭 베일리(Derek Bailey), 피터 브뢰츠만(Peter Brötzmann), 한 베닝크(Han Bennink) 등과도 작업했다.

 

특히 1974년 카네기홀에서 세실 테일러와 공연했고, 1980년부터 1991년까지 세실 테일러 유닛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1994년에는 리틀 휴이 크리에이티브 뮤직 오케스트라를 설립했으며, 2013년 도리스 듀크 공연예술가상을, 2024년에는 비전 페스티벌 평생공로상을 수상했다.

 

이처럼 파커의 베이스는 단순히 리듬을 받치는 악기가 아니다. 그에게 베이스는 음악의 뼈대이자 또 하나의 목소리이고, 때로는 하나의 오케스트라처럼 움직이는 거대한 음향의 중심이다.

 

작은 새 한 마리가 열어주는 음악의 풍경

 

《Petit Oiseau》의 매력은 제목부터 재킷 이미지, 음악까지 하나의 세계를 공유한다는 데 있다.

윌리암 파커 쿼텟(William Parker Quartet) 2008년 앨범 앞면  원작 : 데이비드 크롤(David Kroll) 2008년 작품 작품명 : 허밍버드(Hummingbird)oil on linen , 16 x 20 inches

음반 앞면을 장식한 그림은 데이비드 크롤이 2008년에 제작한 〈Hummingbird〉다. 리넨에 유채로 그린 16×20인치 작품으로, 화면 오른쪽에 작은 벌새 한 마리가 날개를 펼친 채 꽃과 녹음이 뒤섞인 공간으로 날아드는 순간이 포착돼 있다.

 

새는 아주 작지만 그림의 시선을 지배한다. 흐릿하고 부드러운 녹색 공간과 꽃들의 덩어리 사이에서 벌새는 분명한 생명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그것은 마치 소리 없는 즉흥연주처럼 보인다. 정해진 선을 따라 움직이기보다는 허공의 가능성을 선택하며 순간마다 새로운 방향을 만들어낸다.

 

이 모습은 윌리암 파커가 추구해온 즉흥음악의 정신과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프리재즈에서 즉흥은 무질서가 아니다. 연주자들은 서로의 소리를 듣고, 반응하고, 때로 충돌하며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길을 순간 순간 만들어낸다. 작은 새가 허공에서 자유롭게 방향을 바꾸면서도 자신만의 비행 원리를 잃지 않는 것처럼, 파커와 동료들의 연주 역시 자유와 질서 사이를 쉼 없이 이동한다.

 

베이스와 드럼, 색소폰과 트럼펫이 만드는 네 개의 목소리

 

《Petit Oiseau》에 참여한 연주자는 네 명이다.

 

윌리암 파커(William Parker) – Bass, Cedar Flute
하미드 드레이크(Hamid Drake) – Drums, Balafon, Frame Drum
롭 브라운(Rob Brown) – Alto Saxophone, B-flat Clarinet
루이스 반스(Lewis Barnes) – Trumpet

 

앨범 뒷면에는 이들의 이름과 함께 수록곡이 적혀 있다.

  1. Groove Sweet

  2. Talaps Theme

  3. Petit Oiseau

  4. The Golden Bell

  5. Four for Tommy

  6. Malachi’s Mode

  7. Dust From a Mountain

  8. Shorter for Alan

 

앨범에 수록된 곡들은 윌리암 파커가 작곡했으며, 이 음반을 통해 그가 베이시스트뿐 아니라 작곡가로서 지닌 위상과 연주력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평가된있다.

 

파커의 깊고 탄력적인 베이스는 음악의 중심을 붙잡지만 다른 연주자를 속박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미드 드레이크의 타악기와 함께 넓은 공간을 만들고, 그 위를 롭 브라운의 알토색소폰과 클라리넷, 루이스 반스의 트럼펫이 자유롭게 오간다.

 

네 연주자는 하나의 정해진 목적지로 달려가기보다 서로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음악의 풍경을 만들어간다. 때로는 거칠고 강렬하지만, 또 어느 순간에는 제목처럼 작은 새의 날갯짓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가볍고 섬세하다.

 

앨범 뒷면까지 이어지는 데이비드 크롤의 세계

 

음반의 시각적 이야기는 앞면에서 끝나지 않는다.

리암 파커 쿼텟(William Parker Quartet) 2008년 앨범 뒷면  원작 : 데이비드 크롤(David Kroll) 2008년 작품 작품명 : 꽃병과 꽃나무가지(Vase and Branch)oil on linen , 24 x 24 inches

뒷면에는 역시 데이비드 크롤의 2008년 작품 〈Vase and Branch〉가 사용됐다. 리넨에 유채로 제작된 24×24인치 작품이다.

 

초록빛을 띤 길쭉한 꽃병 옆으로 가느다란 나뭇가지가 뻗어 있고 그 위에 작은 새가 앉아 있다. 꽃병이라는 인간이 만든 사물과 나뭇가지와 새라는 자연이 하나의 화면 안에서 기묘한 균형을 이룬다.

 

크롤의 여러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꽃병과 새, 알, 둥지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인간이 만든 공간과 자연, 정지와 움직임, 안전함과 불안, 현실과 상상 사이에서 작은 생명들은 조용히 존재한다.

 

그의 작품이 단순한 정물화로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낯선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이유다.

 

《Petit Oiseau》 역시 그러하다.

 

처음에는 베이스, 드럼, 색소폰, 트럼펫이라는 익숙한 재즈 쿼텟의 모습으로 시작하지만 음악이 진행될수록 연주자들은 익숙한 형식을 벗어나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낸다. 그 순간 음반은 하나의 장르를 듣는 경험에서 벗어나 소리로 만들어진 또 하나의 풍경이 된다.

 

그림을 듣고 음악을 바라보다

 

좋은 음반 재킷은 음악을 설명하는 장식이 아니라 음악을 듣는 또 하나의 입구가 된다.

데이비드 크롤의 그림 속 새는 작다. 그러나 광대한 풍경과 꽃, 도자기 사이에서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작은 존재 때문에 주변 공간 전체가 살아난다.

 

윌리암 파커의 음악도 닮아 있다.

 

큰 소리와 작은 소리, 정돈된 리듬과 자유로운 즉흥, 침묵과 폭발이 끊임없이 교차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지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각각의 소리는 자신만의 생명력을 가지고 존재하면서 다른 소리와 관계를 맺는다.

 

그것은 크롤이 그림을 통해 보여주려 했던 자연의 독립적인 생명망과도 맞닿아 있다. 그의 작품이 관람자와 풍경, 그리고 자연 사이에 정서적이고 지적인 연결고리를 만들어낸다는 설명처럼, 《Petit Oiseau》 역시 우리를 연주자들의 자유로운 소리와 그 사이에서 태어나는 생명력에 귀 기울이게 한다.

 

작은 새 한 마리가 꽃 사이를 날아간다.

 

그 날갯짓은 한순간이지만 데이비드 크롤은 그 찰나를 캔버스 위에 붙잡았다. 그리고 윌리암 파커는 음악이라는 또 다른 언어로 그 자유를 풀어놓는다.

 

그래서 《Petit Oiseau》는 단순히 듣는 음반이 아니다.

 

재킷의 그림을 오래 바라본 뒤 음악을 들어보기를 권한다. 그러면 어느 순간 그림 속 새의 날개가 움직이고, 꽃과 나뭇가지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며, 파커의 베이스와 드레이크의 리듬 사이에서 작은 새 한 마리가 자유롭게 날아오르는 듯한 순간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한 장의 음반

 

윌리암 파커 쿼텟의 《Petit Oiseau》는 회화와 음악이 서로 다른 언어로 이야기하면서도 결국 자연, 생명, 자유 그리고 순간의 아름다움이라는 하나의 세계에서 만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매혹적인 앨범이다.

앨범 개요

앨범명 : Petit Oiseau
아티스트 : William Parker Quartet
발표연도 : 2008년
장르 : 재즈·프리재즈·즉흥음악
리더·작곡 : William Parker
연주 : William Parker(Bass, Cedar Flute), Hamid Drake(Drums, Balafon, Frame Drum), Rob Brown(Alto Saxophone, B-flat Clarinet), Lewis Barnes(Trumpet)
수록곡 : Groove Sweet / Talaps Theme / Petit Oiseau / The Golden Bell / Four for Tommy / Malachi’s Mode / Dust From a Mountain / Shorter for Alan
 

글 | 문화예술기획 제이비엠 대표 최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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