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의 음반을 바라보는 일은 때로 음악을 듣는 것보다 먼저 시작된다. 
 

음반 재킷에 담긴 한 점의 그림은 음악이 흘러나오기 전부터 청자에게 어떤 시대와 정서, 예술적 분위기를 전달한다. 특히 미술사에 뚜렷한 흔적을 남긴 작품이 앨범 커버에 등장할 때 음악과 미술은 서로의 세계를 비추며 전혀 새로운 감상의 문을 연다.

그룹 더 스트록스(The Strokes)2020년 앨범 “The New Abnormal”

오늘 소개할 한 장의 음반은 미국의 록 그룹 더 스트록스(The Strokes)가 2020년 발표한 여섯 번째 정규 앨범 『The New Abnormal』이다. 그리고 이 음반의 표지를 장식한 작품은 현대미술의 전설적인 작가 장 미셸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의 1981년 작품 「Bird on Money」다.

 

뉴욕 거리에서 시작해 세계 미술사의 중심으로 올라선 바스키아와, 역시 뉴욕에서 출발해 2000년대 개러지 록과 포스트 펑크 부흥을 이끈 더 스트록스.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았지만 두 존재의 만남은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묘하게 닮아 있다. 

거리에서 태어난 예술가, 장 미셸 바스키아

 

장 미셸 바스키아는 1960년 미국에서 태어났다. 아이티계 아버지와 푸에르토리코계 어머니 사이에서 성장한 그는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예술적 재능을 보였다. 어머니는 어린 바스키아를 맨해튼의 미술관에 데려가고 브루클린 미술관 어린이 회원으로 등록시키는 등 예술에 대한 관심을 키워주었다. 그는 네 살 무렵 이미 읽고 쓰는 법을 익혔으며, 11세에는 프랑스어와 스페인어,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정도로 조숙한 소년이었다. 그러나 성장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부모의 이혼과 푸에르토리코 생활, 다시 뉴욕으로의 귀환을 경험했고 고등학교를 중퇴한 뒤에는 집을 떠나 친구와 생활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직접 만든 티셔츠와 엽서를 판매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이 시기는 훗날 세계적인 화가가 되는 바스키아에게 거리와 예술이 하나로 연결되기 시작한 출발점이었다.

그는 알 디아즈(Al Diaz)를 만나 SAMO라는 이름으로 거리 곳곳에 스프레이 낙서를 남기기 시작했다. SAMO는 ‘Same Old Shit’의 약자로 알려져 있다. 

 

뉴욕현대미술관 주변에서 자신이 그린 엽서와 티셔츠를 판매하고, 맨해튼 이스트 빌리지의 젊은 예술가들과 교류하면서 바스키아의 세계는 점차 거리의 낙서에서 회화의 영역으로 확장됐다. 이 시기에 키스 해링을 만났으며 1980년에는 그의 예술 인생에서 결정적인 인물이 된 앤디 워홀과도 인연을 맺었다.

 

1980년대 뉴욕은 펑크, 힙합, 레게, 브레이크댄스 등 새로운 하위문화가 폭발하던 공간이었다. 바스키아는 거리의 에너지와 흑인 문화, 사회적 차별과 개인적 경험을 자신의 회화 안으로 끌어들였다.

바스키아 1981년 작품 “무제-추락한 천사(Untitled-Fallen Angel)”

그의 작품에는 낙서와 문자, 해부학적 이미지, 흑인 영웅, 만화적 요소, 자전적 서사와 죽음의 이미지가 뒤섞여 등장한다. 어린아이가 그린 듯 거칠고 즉흥적인 선, 원시적인 형상, 강렬한 색채가 화면을 가득 채운다. 그러나 그 자유분방한 외형 안에는 인종과 권력, 사회적 계층, 인간의 내면에 대한 치열한 문제의식이 자리한다.

 

바스키아는 부와 가난, 통합과 분리, 내면과 외면처럼 서로 대립하는 개념을 작품 속에서 끊임없이 충돌시켰다. 이미지와 텍스트, 추상과 구상, 역사적 정보와 동시대 사회비평을 동시에 끌어들이며 자신만의 시각언어를 구축했다. 그의 작업은 거리의 낙서를 단순한 하위문화가 아니라 미술사의 중요한 표현 방식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왕관, 바스키아가 남긴 하나의 상징

 

바스키아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대표적인 상징 가운데 하나가 왕관이다.

 

1982년 작품 「Crown」에 등장한 왕관은 특정 예술가와 흑인 인물들에 대한 존경에서 출발한 이미지로 설명된다. 이후 왕관은 바스키아 자신의 서명처럼 반복적으로 사용되면서 권위와 소유, 존재의 선언을 상징하는 표식이 되었다.

바스키아 1982년 작품 ”왕관(Crown)“

단순한 세 개의 꼭짓점을 가진 왕관이지만 그것은 바스키아에게 “누가 예술의 주인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기도 했다. 미술 제도 바깥에서 출발했던 젊은 흑인 예술가가 자신의 화면 위에 왕관을 그려 넣는 행위는 스스로의 존재와 예술적 권리를 선언하는 행위처럼 읽힌다.

 

그의 작품 가치는 사후 더욱 급격히 상승했다. 바스키아의 한 「무제」 작품은 소더비 경매에서 일본 기업가 마에자와 유사쿠에게 1억1,050만 달러에 낙찰되며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하지만 천문학적 작품 가격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도 바스키아의 작품이 젊은 예술가와 음악가, 패션 디자이너, 그래픽 아티스트들에게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찰리 파커에게 바친 「Bird on Money」

 

더 스트록스의 『The New Abnormal』 표지를 장식한 작품은 바스키아가 1981년에 제작한 「Bird on Money」다.

바스키아 1981년 작품 “무제-추락한천사(Untitled-Fallen Angel)”

위 작품 이미지를 보면 화면에는 청색과 검정, 흰색, 붉은색, 노란색이 거칠게 충돌하고 있다. 중앙의 검은 형상과 끊임없이 반복되는 선, 문자, 낙서 같은 흔적들이 마치 도시의 벽에 여러 시간이 겹겹이 쌓인 듯한 인상을 만든다. 「Bird on Money」의 이미지는 바스키아 특유의 즉흥성과 긴장감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 작품은 전설적인 재즈 색소폰 연주자 찰리 파커(Charlie Parker)를 기리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Bird’는 찰리 파커의 별명이기도 하다. 재즈 역사에서 비밥의 혁신을 이끈 파커와 바스키아 사이에는 시대를 뛰어넘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기존의 질서에 순응하기보다 자신만의 언어를 창조했다는 점이다.

 

찰리 파커가 재즈의 리듬과 즉흥연주의 문법을 새롭게 바꾸었다면, 바스키아는 거리의 낙서와 문자, 도시의 이미지와 흑인 문화의 기억을 캔버스 안으로 끌어들였다. 따라서 「Bird on Money」는 한 재즈 음악가를 기리는 초상 이상의 작품이다. 음악과 도시, 흑인 문화와 예술, 성공과 소외가 복잡하게 교차하는 바스키아의 세계관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뉴욕, 더 스트록스

 

바스키아가 1980년대 뉴욕 미술계의 상징이었다면, 더 스트록스는 2000년대 뉴욕 록의 부활을 상징하는 밴드 가운데 하나다.

 

더 스트록스는 1998년 뉴욕에서 결성됐다. 2000년대 초 개러지 록과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을 대표했던 그룹으로, 2001년 EP 『The Modern Age』를 발표하면서 음반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RCA 레코드와 계약하고 같은 해 첫 정규 앨범 『Is This It』을 발표했다. 이 음반은 평단의 높은 평가와 대중적인 성공을 동시에 거두며 더 스트록스를 새로운 세대의 록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그들의 음악은 화려한 기교를 앞세우기보다 건조한 기타 사운드와 반복되는 리듬, 무심한 듯한 보컬을 통해 뉴욕 특유의 도시적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과거의 록 사운드를 그대로 복원한 것이 아니라 2000년대 젊은 세대의 감각으로 다시 해석했다는 점에서 더 스트록스는 수많은 후배 밴드에게 영향을 미쳤다. 

『The New Abnormal』, 익숙하면서도 낯선 세계

 

2020년 발표된 『The New Abnormal』은 더 스트록스의 여섯 번째 정규 앨범이다. 이 앨범은 평단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제63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최우수 록 앨범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앨범 제목 ‘The New Abnormal’은 우리말로 옮기면 ‘새로운 비정상’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제목과 바스키아의 「Bird on Money」가 만나는 순간 음반 커버는 특별한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바스키아의 화면에는 정돈된 질서보다 불안정한 선과 파편화된 이미지가 존재한다. 더 스트록스의 음악 역시 과거 록의 익숙한 문법을 유지하면서도 전자음과 새로운 질감, 성숙해진 감정을 더해 이전과는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앨범의 첫 곡 「The Adults Are Talking」부터 그러한 변화를 느낄 수 있다. 반복되는 기타 리프와 절제된 리듬 위로 줄리안 카사블랑카스의 보컬이 흐른다. 겉으로는 담담하지만 그 안에는 불안과 냉소, 긴장이 공존한다.

 

더 스트록스는 2023년 8월 5일 인천 송도 달빛축제공원에서 열린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무대에 올라 한국 관객들에게도 라이브 공연을 선보였다. 

바스키아의 그림을 ‘듣는’ 방법

 

『The New Abnormal』을 감상하면서 다시 앨범 커버를 바라보면 바스키아의 그림이 이전과는 조금 다르게 보인다.

 

엉켜 있는 선들은 기타의 노이즈처럼 느껴지고, 화면 곳곳에 흩어진 글자들은 짧게 끊어지는 보컬의 문장처럼 다가온다. 색채의 충돌은 드럼과 베이스가 만들어내는 반복적인 리듬과 닮았으며 화면 중앙을 가로지르는 검은 형상은 하나의 강렬한 멜로디처럼 시선을 붙잡는다.

 

바스키아의 회화와 더 스트록스의 음악은 모두 ‘완벽하게 정돈된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있다.

 

오히려 거칠고 불안하며 때로는 불완전하다.

그러나 바로 그 불완전함 때문에 살아 있다.

 

바스키아는 거리의 언어를 캔버스로 옮겼고 더 스트록스는 뉴욕의 무심하고 건조한 공기를 기타 사운드로 바꾸었다. 두 예술은 서로 다른 시대에서 태어났지만 모두 도시의 속도와 피로, 젊음의 반항과 고독을 품고 있다. 

한 장의 음반이 하나의 작은 미술관이 될 때

 

음반 재킷은 음악을 포장하는 장식물이 아니다.

 

때로는 음악보다 먼저 한 시대의 미학을 설명하고, 음악이 끝난 뒤에도 오래 기억되는 하나의 이미지가 된다.

 

『The New Abnormal』의 표지는 그런 의미에서 특별하다. 1981년 바스키아가 그린 「Bird on Money」가 약 40년 뒤 뉴욕의 록 밴드 더 스트록스의 음반과 만나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재즈 색소폰 연주자 찰리 파커에게 보내는 바스키아의 헌정이 다시 록 음악의 세계로 이어진 셈이다.

 

찰리 파커의 재즈에서 바스키아의 회화로, 그리고 바스키아의 회화에서 더 스트록스의 록으로.

 

한 장의 앨범 커버 안에서 음악과 미술의 시간이 서로 이어진다.

 

오늘은 음악을 먼저 듣지 말고 잠시 앨범 표지를 바라보는 것은 어떨까.

 

바스키아의 거칠게 얽힌 선과 색을 충분히 바라본 뒤 더 스트록스의 「The Adults Are Talking」을 들어보자. 어쩌면 그 순간 우리는 한 장의 음반을 단순히 ‘듣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하나의 시대를 함께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글 ㅣ최재우 문화예술기획 제이비엠 대표

KANN 블로그 바로가기
https://blog.naver.com/kanlimmtaik/2244098428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