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의 음반은 때로 음악을 듣기 전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재킷을 바라보는 순간 음악의 색채와 정서, 그리고 그 시대의 미감이 먼저 마음속으로 들어온다. 오늘 소개하는 그룹 점보(Jumbo)의 1972년 앨범은 음악과 시각예술이 하나의 작품처럼 만나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 음반의 표지를 장식한 것은 이탈리아 화인아트 디자이너 지아니 론코(Gianni Ronco)의 페이퍼 아트(Paper Art) 작품이다. 이 표지는 “종이 위로 흐르는 눈물이 마음을 정화하는 순간”으로 표현한다. 종이를 자르고 겹쳐 만든 단순한 형식 속에 인간의 감정이 놀랄 만큼 직접적으로 전달되는 작품이다.
표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 사람의 얼굴이 화면 전체를 가득 채운다. 그러나 사실적인 초상이라기보다는 여러 겹의 종이가 만들어내는 굴곡과 선, 그리고 색채를 통해 인간의 내면을 형상화한 추상적 얼굴에 가깝다.
지아니 론코의 작업은 단순히 종이를 잘라 붙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커팅 라인은 리드미컬하게 이어지고, 집중된 끝선과 여백을 적절히 활용함으로써 각각의 형태가 서로 대화하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특히 이 작품에서는 여러 층으로 쌓아 올린 종이가 콧등과 얼굴의 굴곡을 입체적으로 만들어내고, 눈과 눈물에는 강렬한 원색을 사용해 감정의 중심을 강조한다.
한쪽 눈은 크게 떠 있다. 둥근 눈동자는 노랑과 붉은색, 자주색이 겹겹이 포개지며 강한 시선을 만들어낸다. 그 아래에서는 커다란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진다. 반대편 눈은 조용히 감겨 있다.
뜨고 있는 눈과 감고 있는 눈.
바라보는 시선과 외면하는 시선.
그리고 그 사이에서 흐르는 한 방울의 눈물.
이 대비는 음반 표지를 단순한 장식에서 하나의 심리적 풍경으로 바꾸어 놓는다.
눈물은 슬픔의 표시이지만 동시에 정화의 상징이기도 하다. 마음 깊은 곳에 쌓인 감정이 눈물을 통해 밖으로 흘러나올 때 사람은 오히려 새로운 평온을 경험한다. 그래서 이 표지의 눈물은 단순한 비탄이라기보다는 억눌렸던 감정이 마침내 외부로 드러나는 순간처럼 보인다.
회색과 짙은 녹색 계열이 지배하는 얼굴 속에서 눈동자와 눈물만이 선명한 색채를 띤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절제된 화면에서 원색의 눈물은 자연스럽게 시선을 끌어당긴다. 그것은 마치 음악 속에서 어느 순간 돌연 솟구치는 플루트나 보컬의 외침처럼 강렬하다.
이탈리아 프로그레시브 록의 한 장면, Jumbo
이 인상적인 표지의 주인공인 점보(Jumbo)는 1969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결성된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다. 리더이자 보컬리스트인 알바로 ‘점보’ 펠라(Alvaro “Jumbo” Fella)를 중심으로 활동했으며, 복잡하고 거친 블루지 사운드와 강렬한 플루트 연주를 특징으로 한다.
점보의 음악적 출발점에는 블루스 록이 자리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단순한 블루스 록의 문법을 넘어 보다 복잡한 구성과 실험성을 가진 프로그레시브 록으로 발전해갔다. 특히 플루트를 전면에 내세운 음악적 구성 때문에 영국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 제스로 툴(Jethro Tull)을 떠올리게 한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여기에 재즈 록적인 구성과 파워풀한 연주가 더해지면서 점보만의 개성을 형성했다.
이탈리아 프로그레시브 록은 1970년대 초반 독특한 음악적 꽃을 피웠다. 클래식 음악의 구조와 재즈의 즉흥성, 록의 강렬함을 결합하면서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록과는 또 다른 정서를 만들어냈다.
그 가운데 점보의 음악은 유난히 거칠고 인간적이다. 정교하게 계산된 아름다움만을 추구하기보다, 블루스에서 출발한 원초적인 에너지와 불안, 긴장감을 그대로 끌어안는다.
그 점에서 지아니 론코의 앨범 표지는 점보의 음악과 절묘하게 어울린다.
종이로 만들어진 얼굴은 부드러우면서도 날카롭다. 곡선과 직선이 충돌하고, 회색빛 침묵 속에서 붉고 노란 눈물이 떨어진다. 음악 역시 마찬가지다. 블루스의 무게감 위로 플루트가 날카롭게 치고 올라오고, 자유롭게 전개되는 연주 속에서 인간적인 고뇌와 긴장감이 모습을 드러낸다.
처음보다 시간이 흐른 뒤 발견된 음악
점보가 데뷔 당시부터 대중적 성공을 거둔 밴드는 아니었다. 당시 대중과 비평가들의 반응은 크지 않았지만, 이후 1970년대 이탈리아 록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면서 점보 역시 실력 있는 그룹으로 새롭게 인정받았다. 오늘날에는 당시 이탈리아 프로그레시브 록을 탐구하는 마니아들 사이에서 꾸준히 언급되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예술의 가치는 때로 처음 등장했을 때보다 시간이 흐른 뒤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유행의 중심에 있던 작품들이 어느 순간 잊히는 반면, 당대에는 충분한 평가를 받지 못했던 음악과 미술이 수십 년 뒤 다시 발견되기도 한다. 점보의 음악 역시 그런 경우라 할 수 있다.
1972년이라는 시간 속에 머물러 있던 한 장의 음반을 오늘 다시 꺼내 들으면, 우리는 음악만을 듣는 것이 아니다. 그 시대의 디자인과 미술, 젊은 음악가들의 실험정신까지 함께 만난다.종이를 자르는 손, 음악을 자르는 연주
페이퍼 아트는 ‘잘라낸다’는 행위를 통해 새로운 형태를 만든다. 불필요한 부분을 덜어내고, 서로 다른 모양을 겹치며 하나의 이미지를 완성한다. 흥미롭게도 프로그레시브 록 역시 비슷하다. 전통적인 록의 구조를 해체하고, 블루스와 재즈, 클래식 등 서로 다른 음악적 요소를 연결해 새로운 음악적 세계를 만들어낸다.
지아니 론코가 종이를 잘라 얼굴의 굴곡을 만들었다면, 점보는 기존 록 음악의 문법을 잘라내고 다시 조립하며 자신들의 음악을 만들었다. 그래서 이 음반에서 표지와 음악은 별개의 작품이 아니다. 종이 위의 선과 음악 속의 리듬이 서로를 닮아 있다.
겹겹이 포개진 종이의 층처럼 악기들이 겹쳐지고, 날카롭게 잘려나간 종이의 윤곽처럼 플루트가 음악의 공간을 가른다. 그리고 거칠게 토해내는 보컬은 화면 속 커다란 눈물처럼 내면의 감정을 밖으로 끌어낸다.
한 방울의 눈물이 남기는 여운
우리는 슬플 때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때로는 너무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때도 눈물이 난다. 눈물은 인간이 가진 가장 솔직한 언어 가운데 하나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한 방울의 물이 되어 얼굴 위를 흐른다. 지아니 론코는 바로 그 찰나를 종이라는 재료로 포착했다.
한쪽 눈은 세상을 바라보고, 다른 눈은 감겨 있다. 그 사이로 흐르는 눈물은 현실과 내면의 경계를 오가는 듯하다. 그리고 그 이미지 뒤에서 1970년대 이탈리아 프로그레시브 록의 거칠고 실험적인 음악이 울려 퍼진다. 반세기가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이 음반이 여전히 흥미로운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음악과 미술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동일한 인간의 감정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이를 겹쳐 만든 얼굴, 그 얼굴을 타고 흐르는 한 방울의 눈물.
그리고 턴테이블 위에서 회전하는 한 장의 음반.
눈으로 먼저 음악을 만나고, 귀로 다시 이미지를 바라보게 만드는 것. 그것이야말로 ‘눈으로 즐기며 듣는 이 한장의 음반’이 우리에게 주는 특별한 즐거움이다.
글 | 최재우 문화예술기획 제이비엠 대표
음반 개요
아티스트 : Jumbo
앨범 : Jumbo
발표 : 1972년
국가 : 이탈리아
장르 : Progressive Rock / Blues Rock
레이블 : Philips
주요 특징 : 블루스 록을 기반으로 한 프로그레시브 록, 강렬한 플루트와 파워풀한 연주, 재즈 록적 구성
앨범 커버 : Gianni Ronco의 Paper Art
감상곡 : Jumbo – 〈Che Senso 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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