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의 음반을 듣는 일은 때로 한 점의 그림을 바라보는 일과 닮아 있다. 음악은 귀로 들어오지만, 음반의 표지는 음악을 듣기 전부터 우리에게 하나의 이미지를 건넨다. 그리고 그 이미지가 음악과 절묘하게 맞물릴 때 음반은 단순한 소리의 기록을 넘어 하나의 복합예술 작품처럼 다가온다.

짐 블랙 (Jim Black)

이번에 소개할 두 장의 음반은 재즈 드러머 짐 블랙(Jim Black)이 이끄는 그룹 짐 블랙 아라스노아시스(Jim Black’s AlasNoAxis)의 2002년작 『Splay』와 2009년작 『Houseplant』다. 두 음반의 커버에는 일본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나라 요시토모(奈良美智, Yoshitomo Nara)의 작품이 사용됐다. 필자는 이를 ‘동명이작(同名二作)’이라 표현한다. 서로 다른 두 음반과 두 이미지가 하나의 미학적 흐름 안에서 만난다.

귀여움과 불안이 공존하는 나라 요시토모의 아이들

 

나라 요시토모는 일본 아오모리현 히로사키 출신의 팝아트 작가다. 아이치현립예술대학을 거쳐 독일 뒤셀도르프 예술아카데미에서 공부했고, 일본 현대미술의 2세대를 대표하는 작가 가운데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작품은 뉴욕현대미술관(MoMA)과 로스앤젤레스 지역의 주요 미술관 컬렉션에 포함되어 있으며, 국내에서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 삽화를 통해서도 친숙한 작가다.

 

나라 요시토모의 그림에서 가장 먼저 시선을 붙드는 것은 역시 아이들의 커다란 눈이다. 얼핏 보면 귀엽고 천진난만하지만, 눈매를 오래 들여다보면 단순한 순수함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낯설고 반항적인 기운이 감돈다. 그의 소녀들은 때로 악동처럼 쏘아보고, 때로는 무표정한 얼굴로 관객을 바라본다. 귀여움과 불안, 순수함과 사악함이 한 얼굴 안에 공존하는 것이다. 자료에서도 그의 전형적인 귀여운 이미지가 약간의 괴기성과 결합하며, 순수한 어린이와 인간 내면의 어두운 면이 가까이 배치된다고 설명한다.

 

그러한 이미지의 배경에는 나라 요시토모가 성장했던 시대적·문화적 경험도 자리한다. 1960년대 일본에서 만화와 애니메이션, 워너 브라더스와 디즈니, 서양 록 음악 등 대중문화의 영향을 받았고, 특히 유년기의 펑크록 경험은 그의 작품에 저항과 거친 젊음의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르네상스 회화와 문학, 일러스트레이션, 우키요에, 그래피티 등도 그가 언급한 영감의 원천이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그의 어린 시절이다. 일하는 부모 아래 외딴 시골에서 많은 시간을 혼자 보내야 했고, 그 고독 속에서 상상하는 일이 중요한 놀이가 됐다. 자료는 나라 요시토모의 독특한 인물들이 이러한 유년기의 고독한 경험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이런 점에서 『Splay』와 『Houseplant』의 커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그 커다란 눈은 마치 음반 속에서 곧 쏟아질 낯선 리듬과 소리를 미리 응시하고 있는 듯하다.

리듬의 경계를 밀어붙이는 드러머, 짐 블랙

 

이 이미지와 만나는 음악의 주인공은 드러머 짐 블랙이다.

 

짐 블랙은 “리듬 악기로서의 드럼연주가 어디까지 확장, 진보할 수 있느냐를 들려준” 연주자다. 색소포니스트 도니 맥카슬린의 음반에서 들려준 그의 드럼을 계기로 꾸준히 연주 활동을 주목해 왔다.

 

짐 블랙은 1967년 8월 3일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 태생이다. 그의 음악적 이력을 살펴보면 그가 왜 평범한 리듬 섹션의 드러머에 머물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는 트럼페터 데이브 더글러스(Dave Douglas), 색소포니스트 팀 번(Tim Berne), 존 존(John Zorn), 크리스 스피드(Chris Speed), 피아니스트 우리 케인(Uri Caine) 등 도전적이고 전위적인 성향의 연주자들과 함께해 왔다.

 

그가 다른 리더의 밴드에서 리듬을 담당하는 역할을 넘어 자신의 음악세계를 펼치기 위해 결성한 그룹이 바로 아라스노아시스(AlasNoAxis)다. 이 그룹은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연주와 전위적이고 도전적인 사운드를 들려준다. 하지만 완전히 난해한 프리재즈로만 흐르지는 않는다. 자료의 표현을 빌리자면 “정형화된 하드밥 스타일은 아니지만 아방가르드나 프리재즈보다는 접근이 쉽”고, 일종의 ‘순한 맛 프리재즈’라 부를 만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나라 요시토모의 미술과 짐 블랙의 음악은 의외의 접점을 만든다.

 

나라 요시토모의 그림은 겉으로는 단순하다. 아이 한 명, 단색에 가까운 배경, 몇 개의 선과 강렬한 눈. 하지만 그 단순함 속에는 불안과 반항, 고독, 익살과 공격성이 겹겹이 숨어 있다.

 

짐 블랙의 음악 또한 그러하다. 드럼은 박자를 지키는 도구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리듬을 부수고 다시 조립하며, 기타·색소폰·베이스와 대등하게 움직인다. 재즈이면서 록의 질감을 품고 있고, 즉흥연주이면서도 강한 구조적 긴장을 가진다.

 

『Splay』, 녹색 바탕 위에서 쏘아보는 두 눈

JimBlack'sAlasnoaxis-Splay-FrontCover

첫 번째 음반은 2002년 발표된 『Splay』다. 표지에는 녹색 프레임 안에 검은 단발머리를 한 아이가 등장한다. 커다란 두 눈은 사람의 눈이라기보다는 고양이나 맹수의 눈처럼 보인다. 붉은색으로 놓인 ‘SPLAY’라는 글자와 녹색 배경, 그리고 인물의 노란빛 눈이 강렬한 대비를 이룬다.

JimBlack'sAlasnoaxis-Splay-BackCover

앨범 뒷면에는 당시 연주자와 수록곡이 적혀 있다. 멤버는 짐 블랙(드럼), 힐마르 옌손(Hilmar Jensson, 기타), 크리스 스피드(테너 색소폰·클라리넷), 스쿨리 스베리손(Skúli Sverrisson, 베이스)이다.

 

수록곡은 다음과 같다.

 

  1. Aloe Evra

  2. iCratic

  3. Cheepa vs. Cheep

  4. You Were Out

  5. war again error

  6. Ble

  7. Myndir Now

  8. Ant Work Song

  9. Awkwarder

  10. Blissed (Sellchatter Mix)

  11. Total Time

이 가운데 ‘Aloe Evra’를 들어보자.

 

‘Aloe Evra’를 비롯한 이들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드럼이 단순히 곡의 뒤에서 박자를 정리하는 악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곧 깨닫게 된다. 소리는 서로 밀치고 끌어당기며, 때로는 리듬이 멈춰버릴 것처럼 비틀거리다가 다시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낸다.

 

『Splay』라는 제목처럼 음악 자체가 한 방향으로 가지 않고 사방으로 펼쳐지는 듯하다.

『Houseplant』, 화분을 든 아이와 기묘한 생명력

 

또 하나는 2009년 앨범 『Houseplant』다. 

JimBlack'sAlasnoaxis-Houseplant-FrontCover

앞표지의 아이는 『Splay』보다 훨씬 연약하고 슬픈 모습이다. 한쪽 눈을 머리카락으로 가린 채 정면을 바라보는데, 드러난 눈에는 커다란 눈물이 고여 있다. 초록색 옷과 둥글게 부풀어 오른 갈색 머리, 무표정한 입이 오묘한 정서를 만든다.

JimBlack'sAlasnoaxis-Houseplant-BackCover

반면 뒷표지에는 작은 식물을 손에 들고 서 있는 소녀가 등장한다. 이 이미지는 제목인 ‘Houseplant’, 즉 실내에서 기르는 식물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작고 연약한 식물을 손에 든 아이의 모습은 성장과 고독, 돌봄과 불안이라는 상반된 감정을 동시에 환기한다.

 

연주자는 Chris Speed, Hilmar Jensson, Skúli Sverrisson, Jim Black이다. 수록곡으로는 ‘Inkionos’, ‘Calmae’, ‘Houseplant’, ‘FYR’, ‘Malomice’, ‘Littel’, ‘Eight’, ‘Naluk’, ‘Cadenium Waits’, ‘Aldear’, ‘Lowered a Nine Sense’, ‘Downstrum’ 등이다.

 

두 앨범은 7년의 시간차를 두고 발표됐지만 나라 요시토모의 그림을 사용함으로써 시각적으로 강한 연속성을 갖는다.

 

나라 요시토모와 짐 블랙, 서로 다른 예술이 만나는 지점

 

나라 요시토모의 그림과 짐 블랙의 음악이 함께 놓인 것은 우연 이상으로 느껴진다. 나라 요시토모의 인물들은 말을 하지 않는다. 대신 눈으로 감정을 드러낸다. 쏘아보거나, 울거나, 무표정하게 바라본다. 감정을 설명하지 않기 때문에 관객은 그 눈 안에 자신의 감정을 투사하게 된다.

 

짐 블랙의 드럼 역시 음악을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정해진 박자 위에서 단순히 시간을 나누기보다는 리듬을 흔들고, 끊고, 비틀고, 다시 조립한다. 그 과정에서 듣는 사람은 익숙한 재즈의 질서에서 잠시 벗어나게 된다.

 

두 예술가 모두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든다.

 

나라 요시토모는 ‘귀여운 아이’라는 익숙한 이미지를 통해 불안과 반항을 드러낸다. 짐 블랙은 ‘리듬을 지키는 드럼’이라는 익숙한 역할을 깨뜨리며 드럼을 하나의 독립적인 목소리로 확장한다.

 

그래서 이 두 장의 음반을 보고 듣다 보면 묘한 일치감을 느끼게 된다. 나라 요시토모의 아이가 가진 커다란 눈과 짐 블랙의 드럼이 만들어내는 불규칙한 박동은 서로 다른 감각의 영역에 있으면서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익숙한 것은 과연 정말 익숙한가.

음반 개요

 

『Splay』

  • 아티스트: Jim Black’s AlasNoAxis

  • 리더: Jim Black

  • 발표: 2002년

  • 주요 연주자: Jim Black, Hilmar Jensson, Chris Speed, Skúli Sverrisson

  • 커버 아트: 나라 요시토모 작품

  • 레이블 표기: Winter & Winter

  • 특징: 재즈·록·아방가르드적 요소가 교차하는 자유로운 앙상블, 리듬의 해체와 재구성

  • 자료 수록 추천곡: ‘Aloe Evra’

 

『Houseplant』

  • 아티스트: Jim Black’s AlasNoAxis

  • 발표: 2009년

  • 주요 연주자: Chris Speed, Hilmar Jensson, Skúli Sverrisson, Jim Black

  • 커버 아트: 나라 요시토모 작품

  • 특징: 『Splay』와 시각적·음악적 연속성을 이루며, 나라 요시토모 특유의 아이 이미지와 아라스노아시스의 자유로운 음악세계가 다시 결합된 작품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한 장의 예술

 

좋은 음반은 음악이 끝난 뒤에도 무엇인가를 남긴다.

 

『Splay』와 『Houseplant』는 짐 블랙의 드럼과 아라스노아시스의 자유로운 연주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운 음반이다. 그러나 나라 요시토모의 그림이 더해지면서 두 작품은 한층 더 특별해진다.

 

커다란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아이들.

그리고 그 눈빛 뒤에서 끊임없이 형태를 바꾸는 리듬.

 

나라 요시토모의 그림에는 펑크의 반항성이 숨어 있고, 짐 블랙의 음악에는 재즈의 자유가 살아 있다. 한 사람은 붓으로 익숙한 이미지를 흔들고, 다른 한 사람은 드럼 스틱으로 익숙한 박자를 흔든다.

 

그래서 이 두 장의 음반은 단순히 ‘그림이 예쁜 재즈 음반’이 아니다.

 

눈으로 먼저 듣고, 귀로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음반이다.

 

나라 요시토모의 커다란 동심의 눈과 짐 블랙의 해체적인 리듬이 만나는 순간, 음악과 미술의 경계 역시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그것이 『Splay』와 『Houseplant』를 다시 꺼내 들어야 할 이유다.

 

글 ㅣ최재우 문화예술기획 제이비엠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