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즐기며 듣는 이 한장의 음반 

토와 테이(Towa Tei, 정동화) 2026년 앨범 “Zambient”

서울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친한파 네덜란드 화가
프리즈 서울 2026에 참가하는 레이먼드 렘스트라(Raymond Lemstra)

전설적인 일본 그룹 YMO(Yellow Magic Orchestra)의 맥을 잇는
재일동포 3세 테크노·전자음악가 토와 테이(Towa Tei, 정동화)

2026년 앨범 ‘Zambient’

 

글 ㅣ 최재우 문화예술기획 제이비엠 대표 

 

오늘 ‘이 한장의 음반’은 조금 특별한 자리에서 출발한다. 세계 미술계의 시선이 서울로 향하는 ‘프리즈 서울 2026’ 현장에서 만날 수 있는 한 작가와, 그 작가의 그림을 자신의 새 앨범 얼굴로 선택한 한 뮤지션의 이야기다.

 

음악과 미술은 서로 다른 감각의 예술이지만 음반 한 장을 손에 쥐는 순간 두 세계는 자연스럽게 하나가 된다. 음악을 듣기 전에 먼저 눈에 들어오는 이미지, 그리고 음악이 끝난 뒤에도 기억 속에 남는 한 장의 그림. 

 

이번에 소개하는 토와 테이(Towa Tei)의 2026년 앨범 ‘Zambient’는 바로 그 접점에서 출발한다.

 

앨범 커버를 맡은 작가는 네덜란드 출신 현대미술가 레이먼드 렘스트라(Raymond Lemstra)다. 그리고 그의 최근 작품은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고 있는 ‘프리즈 서울 2026’에서도 직접 만날 수 있다.

레이몬드 렘스트라(Raymond Lemstra) 원화

레이먼드 렘스트라는 1978년 네덜란드 흐로닝언에서 태어났다. 미네르바 예술대학교에서 공부한 뒤 2004년 졸업했고, 2005년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해 본격적으로 자신만의 작업 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연필과 물감을 주요 재료로 삼아 회화와 드로잉, 콜라주를 넘나들어 왔으며, 특히 얼굴과 머리, 인물을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로 재구성하는 독특한 조형언어로 알려져 있다.

 

그의 인물은 처음 마주하면 단순하고 때로는 어린아이의 그림처럼 친근하게 보인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표면을 이루는 연필선과 질감, 형태의 균형은 매우 세밀하고 치밀하다. 렘스트라는 이러한 조형 원리를 ‘선택적 강조(selective emphasis)’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중요한 부분은 과장하고, 중요하지 않은 요소는 과감하게 생략하는 방식이다.

 

원시시대의 조각이나 어린아이의 그림처럼 최소한의 형태만으로도 인간은 얼굴을 알아본다. 렘스트라의 작품은 바로 이러한 ‘얼굴을 인식하려는 인간의 본능’을 파고든다. 그는 사물 속에서도 얼굴을 발견하는 인간의 심리적 현상인 파레이돌리아(pareidolia)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그의 초기 그래파이트 드로잉을 보면 이러한 특징이 더욱 뚜렷하다. 멀리서 보면 단순한 캐릭터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에서는 수없이 겹친 연필선과 섬세한 세부 묘사가 나타난다. 단순성과 정교함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 렘스트라 작품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다.

 

레이먼드 렘스트라에게 서울은 특히 중요한 도시다.

 

그는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서울에 머물며 거리에서 발견한 포스터와 스티커, 인쇄물 등을 작품 재료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발전한 대표적인 작업이 ‘Facing Seoul’ 시리즈다. 이전의 정교한 연필 드로잉과 달리 서울의 거리에서 채집한 재료가 화면의 표면을 이루면서 작품의 질감과 표현방식에도 큰 변화가 나타났다. 서울은 그에게 단순히 체류했던 도시가 아니라 작업의 재료와 표현방식까지 변화시킨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이 시기 렘스트라는 한국 아티스트 장콸(Jang Koal, 장다혜)과 인연을 맺었으며, 이후 두 사람은 한국과 네덜란드를 오가며 작품 활동과 전시를 이어왔다. 이후 두 사람이 부부가 된 사실도 공식 매체를 통해 알려졌다.

 

서울에서의 작업 이후 렘스트라는 더욱 회화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아크릴 물감과 기하학적인 형태를 활용한 대형 인물화가 중요한 작업으로 자리 잡았으며, 2022년 ‘HEAD I’, ‘HEAD II’, ‘HEAD III’, ‘HEAD V’, ‘HEAD VI’ 등이 대표작으로 소개된다.

 

그리고 2026년, 렘스트라의 작품은 다시 서울의 중심에 서 있다.

 

9월 2일 프리뷰를 시작으로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프리즈 서울 2026’에서 그의 최근 작품을 직접 감상할 수 있다. 코엑스 3층 Hall C의 C13 부스, 일본 도쿄의 난주카(Nanzuka) 갤러리가 그의 작품을 선보인다.

프리즈 서울 2026 전시 작품 Nanzuka 홈페이지 전시 안내 페이지 발취

프리즈 서울 2026에 소개되는 ‘Personnage Fictionnel’ 작품들은 렘스트라 특유의 조형언어를 잘 보여준다. 인물의 얼굴이 절제된 방식으로 표현되면서도 특정한 존재를 떠올리게 하는 묘한 친숙함을 만들어낸다.

프리즈 서울 2026 전시 작품 Nanzuka 홈페이지 전시 안내 페이지 발취

그래파이트로 제작된 작품에서는 렘스트라 특유의 정교한 드로잉이 드러나며, 한지를 나무 패널에 마운트한 유화 작품에서는 보다 회화적으로 확장된 인물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서로 다른 재료와 표현방식이지만 ‘얼굴을 어떻게 인식하는가’라는 작가의 오랜 관심은 그대로 이어진다.

프리즈 서울 2026 전시 작품 Nanzuka 홈페이지 전시 안내 페이지 발취

올해 프리즈 서울이라는 국제적인 미술 무대에서 렘스트라를 바라보면 ‘서울’이라는 도시가 그의 작업에서 갖는 의미가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서울에 머물며 ‘Facing Seoul’을 발전시켰던 작가가 다시 세계적인 아트페어의 참가 작가로 서울에 돌아온 셈이다.

 

과거의 서울이 그의 작업을 변화시킨 ‘재료의 도시’였다면, 2026년의 서울은 그 변화 이후 확장된 작품 세계를 세계의 관객에게 보여주는 ‘전시의 도시’가 됐다.

 

그리고 바로 그 렘스트라의 그림이 이번에는 음악의 얼굴이 됐다.

 

오늘 소개할 뮤지션은 토와 테이(Towa Tei, 정동화, 鄭東和)다. 재일동포로 알려져 우리에게도 친숙한 그는 이제 세계적인 테크노·전자음악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뮤지션이다.

토와 테이(Towa Tei, 정동화)

흥미로운 점은 그 역시 처음부터 음악가만을 꿈꾸었던 사람이 아니라 디자인을 공부하려 했던 예비 디자이너였다는 점이다. 1964년 일본 요코하마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대한 꿈을 놓지 않았다. 16세 때 자신의 첫 신시사이저인 Korg MS-10을 구입해 데모 테이프를 만들기 시작했다.

 

무사시노예술디자인대학에서 공부하던 시절에는 류이치 사카모토(Ryuichi Sakamoto)의 라디오 프로그램 ‘Sound Street’에 자신의 녹음테이프를 보내기도 했다.

 

1987년 미국으로 건너가 파슨스 스쿨(Parsons School of Design)에 입학했고, 뉴욕의 클럽에서 DJ로 활동하며 자신만의 사운드를 구축해 나갔다.

 

토와 테이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87년 더 정글 브라더스(The Jungle Brothers)의 앨범 작업에 프로듀서로 참여하면서부터다. 이후 레이디 미스 커버(Lady Miss Kirby), DJ 드미트리(DJ Dmitry)와 함께 3인조 그룹 디 라이트(Deee-Lite)를 결성했다.

 

1990년 발표된 첫 앨범 ‘World Clique’의 싱글 ‘Groove Is In The Heart’는 빌보드 싱글 차트에 23주간 머물며 최고 4위까지 오르는 큰 성공을 거뒀다.

 

1991년에는 자신의 오랜 우상이었던 류이치 사카모토의 앨범 ‘Heartbeat’에 참여했고 이후 ‘Sweet Revenge’에도 연이어 참여했다. 류이치 사카모토는 1970년대 말부터 활동한 전설적인 일본 전자음악 그룹 YMO(Yellow Magic Orchestra)의 멤버였다.

토와 테이의 음악을 이야기할 때 YMO에서 류이치 사카모토를 거쳐 이어지는 일본 전자음악의 계보가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이유다.

 

1992년 디 라이트의 두 번째 앨범 ‘Infinity Within’을 끝으로 토와 테이는 솔로 활동을 선언했다. 브라질에서 디 라이트와 함께 공연하던 중 무대에서 떨어져 허리 부상을 입었고, 회복하는 동안 다른 음악 스타일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1994년 뉴욕에서의 7년을 정리하고 일본으로 돌아온 그는 같은 해 첫 솔로 앨범 ‘Future Listening!’을 발표한다. 전자음악과 보사노바, 하우스, 재즈, 팝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작품이었다. 피치카토 파이브(Pizzicato Five)의 보컬 마키 노미야(Maki Nomiya), 브라질 보사노바 대가 호아오 질베르토(João Gilberto)의 딸 베벨 질베르토(Bebel Gilberto) 등과의 협연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1998년 두 번째 솔로 앨범 ‘Sound Museum’에서는 힙합 사운드를 보다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 카일리 미노그(Kylie Minogue)를 게스트 보컬로 초빙한 ‘GBI(German Bold Italic)’도 큰 인기를 얻었고, Hall & Oates의 히트곡 ‘Private Eyes’를 보사노바로 편곡해 들려주기도 했다.

 

이어 1999년 세 번째 앨범 ‘Last Century Modern’을 발표하면서 세계적인 컬트 팬층을 형성했다. 이후에도 토와 테이는 클럽 전자음악과 어반 일렉트릭 사운드를 꾸준히 발전시키며 테크노·전자음악계의 독창적인 음악가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토와 테이의 음악 세계를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현대미술과 디자인이다.

 

미술과 디자인을 공부했던 그는 자신의 앨범을 단순히 음악을 담는 매체가 아니라 하나의 시각예술 프로젝트로 확장해왔다. 현대미술가들과 함께 앨범 커버를 기획해 왔으며, 대표적인 협업 작가로 샌프란시스코의 그래피티·현대미술가 배리 맥기(Barry McGee), 점과 호박 이미지로 잘 알려진 일본의 설치미술가 쿠사마 야요이(Yayoi Kusama) 등이 있다.

 

그리고 2026년 새로운 앨범에서 그 바통을 이어받은 작가가 바로 레이먼드 렘스트라다.

 

새 앨범의 제목은 ‘Zambient’.

 

글로벌 스트리밍 서비스 스포티파이(Spotify) 기준 앨범 발표일은 2026년 9월 25일이다. 일본에서는 바이닐(LP 레코드)로 먼저 발매됐으며, 국내에서는 한남대로에 있는 카페 갤러리에서 렘스트라의 원화 전시와 함께 앨범도 판매하고 있다.

 

‘Zambient’의 앨범 커버와 렘스트라의 원화를 나란히 보면 음악과 미술의 연결을 더욱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원화 부분 근접 확대

푸른빛 머리와 절제된 얼굴선, 붉은 입술을 가진 인물이 앨범의 전면을 차지하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매우 단순하고 명료한 초상처럼 보이지만 원화를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모습이 나타난다.

원화 부분 근접 확대

눈 주변에는 미세한 색채 변화가 겹겹이 쌓여 있고 피부의 질감과 붉은 입술 위로 번지는 빛까지 세밀하게 표현돼 있다. 멀리에서 느껴지는 단순성과 가까이에서 드러나는 정교함이 한 화면 안에 공존한다.

 

바로 이 지점이 렘스트라의 작품을 가장 잘 설명한다.

 

멀리서 보면 단순하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새로운 세계가 나타난다. 흥미롭게도 이 말은 토와 테이의 음악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토와 테이의 음악은 전자음악이라는 분명한 골격을 가지고 있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면 보사노바, 재즈, 하우스, 힙합, 팝과 도시적인 감각이 여러 층으로 겹쳐 있다.

 

새 앨범 ‘Zambient’ 역시 당돌하고 도발적인 전자 사운드를 보여주면서도 토와 테이 특유의 유연함과 세련된 감각을 이어간다. 그래서 ‘Zambient’의 표지에 레이먼드 렘스트라의 그림이 놓인 것은 단순한 앨범 재킷 디자인 이상의 의미로 다가온다.

 

렘스트라는 얼굴을 최소화하면서도 인간이 그 안에서 존재를 읽어내도록 한다. 토와 테이는 전자음이라는 인공적인 재료를 사용하면서도 그 안에 인간적인 리듬과 감각을 남긴다.

 

한 사람은 눈으로, 다른 한 사람은 귀로 ‘단순함 속의 복잡함’을 만들어낸다.

 

더욱이 올해는 그 연결고리가 ‘프리즈 서울 2026’이라는 공간과 맞닿아 있다.

코엑스 Hall C의 난주카 갤러리 C13 부스에서는 렘스트라의 최근 작품을 볼 수 있고, 그의 그림은 동시에 토와 테이의 새 음악을 상징하는 앨범 커버가 되어 또 다른 관객과 만나고 있다.

 

갤러리 벽에 걸리는 현대미술 작품이 음반이라는 매체를 통해 전 세계 음악 청취자들의 손과 화면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프리즈 서울 2026의 의미도 이런 지점에서 한층 넓어진다.

 

세계 각국의 갤러리와 작가들이 서울에 모이는 프리즈 서울을 단순히 작품을 사고파는 아트페어로만 바라볼 필요는 없다. 한 작가가 어떤 도시에서 영향을 받았는지, 서로 다른 문화와 어떤 방식으로 만났는지, 그리고 그 이미지가 어떻게 디자인과 음악, 대중문화로 확장되는지를 함께 살펴보면 현대미술이 움직이는 훨씬 넓은 지형이 보인다.

 

레이먼드 렘스트라는 서울에서 자신의 작업 방식을 변화시켰고, 다시 서울에서 프리즈라는 국제적인 무대를 통해 관객과 만나고 있다. 토와 테이는 디자인에서 출발해 전자음악가가 되었고, 오랫동안 현대미술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음악의 시각적 얼굴을 만들어왔다.

 

2026년 두 사람은 ‘Zambient’라는 한 장의 음반에서 만났다.

 

이번 ‘이 한장의 음반’은 그래서 음반 한 장을 듣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프리즈 서울 2026에서 렘스트라의 작품을 먼저 보고, ‘Zambient’의 앨범 커버 원화를 가까이에서 들여다본 뒤 토와 테이의 음악을 들어본다면 조금 다른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눈으로 확인한 질감이 음악의 소리로 연결되고, 전자음 속에서 다시 그 그림의 얼굴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함께 들어볼 음악으로는 토와 테이의 ‘The Source’와 ‘Nothing Else 2’가 있다.

 

세계 미술의 현재가 서울에 모이는 프리즈 서울 2026.

 

그 한복판에서 만난 레이먼드 렘스트라의 그림과 토와 테이의 전자음악은 현대예술에서 장르의 경계가 얼마나 자연스럽게 허물어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한 장의 그림이 한 장의 음반이 되고, 한 도시에서 받은 영감이 다시 그 도시의 국제 아트페어로 돌아온다.

 

이번 ‘이 한장의 음반’은 토와 테이의 ‘Zambient’다.

 

그러나 이 음반은 귀로만 듣기에는 조금 아깝다.

 

 

프리즈 서울 2026에서 레이먼드 렘스트라의 작품을 바라본 뒤 앨범 커버를 다시 펼쳐보자. 그때 비로소 ‘눈으로 즐기며 듣는 이 한장의 음반’이라는 말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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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우 칼럼니스트 jaewooart@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