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의 음반을 바라보다 보면 음악보다 먼저 눈길을 붙드는 이미지가 있다. 때로는 그 이미지가 음반의 시대를 말해주고, 음악의 성격을 암시하며, 전혀 다른 예술 장르를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준다. 

앨범 “Alivemutherforya”

이번에 소개할 음반은 그런 점에서 유난히 흥미롭다. 19세기 회화의 대표적 이미지 가운데 하나인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의 ‘어머니 초상’이 1978년 퓨전 재즈 프로젝트 앨범 『Alivemutherforya』의 표지 위에서 기묘하고도 유쾌하게 변주되기 때문이다.

 

앨범 커버의 출발점은 미국 태생의 화가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James Abbott McNeil Whistler, 1834~1903)다. 

 

그는 1855년 유럽으로 건너가 파리에서 미술을 공부했고, 귀스타브 쿠르베의 사실주의에 영향을 받는 한편 마네와 모네 등 인상파 화가들과 교류하며 자신의 화풍을 개척했다. 1858년에는 런던으로 옮겨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예술을 위한 예술’을 표방하며 회화를 서사와 주제 묘사에서 해방시키려 했다. 1860년 작품 ‘피아노 앞에서’가 영국 왕립아카데미에 전시되면서 그의 이름은 점차 알려지기 시작했다.

 

휘슬러를 세계 미술사에 각인시킨 작품은 1871년에 완성한 ‘회색과 검은색의 배열 1번(Arrangement in Grey and Black No.1)’이다. 

 

오늘날에는 원래 제목보다 ‘휘슬러의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원화 “휘슬러의 어머니”

 

애초 모델로 예정됐던 사람이 나타나지 않자 휘슬러는 자신의 어머니를 대신 그리게 됐다. 처음에는 서 있는 자세로 작업하려 했지만 긴 포즈를 견디기 힘들어하는 어머니를 위해 앉은 자세로 변경했고,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수십 차례 포즈를 잡아야 했다.

 

그림은 화려하지 않다. 검은 드레스와 회색 벽, 커튼과 바닥, 벽에 걸린 그림이 절제된 색조 속에 배치되어 있다. 그러나 단순해 보이는 화면에는 치밀한 균형감이 숨어 있다. 커튼과 벽면, 바닥의 직선과 사각형은 어머니의 얼굴과 드레스, 의자가 만들어내는 곡선을 안정시키며 전체 화면을 긴장감 있게 묶는다. 휘슬러가 그림의 서사나 ‘이야기’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해도, 이 작품은 결과적으로 그의 독실한 어머니를 향한 경의와 인간적 애정까지 담아내게 됐다.

 

흥미로운 것은 이 작품이 처음부터 걸작으로 환영받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감상적이고 장식적인 미술이 선호되던 당시 영국 사회에서 휘슬러의 극단적으로 절제된 구성은 낯설게 받아들여졌다. 일부 비평가들은 이 작품을 하나의 실패한 ‘실험’처럼 보았고, 왕립아카데미 역시 처음에는 출품을 거부했다. 이후 어렵게 전시가 성사됐지만 좋은 위치에 걸리지 못했다. 그럼에도 시간이 흐르면서 작품은 전혀 다른 운명을 맞는다. 조롱과 패러디, 숭배가 동시에 이어졌고 마침내 ‘모성’을 상징하는 세계적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미국에서 발행된 우표

실제로 ‘휘슬러의 어머니’는 미술관 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인사말 카드와 잡지, 각종 패러디에 활용됐고 만화 캐릭터로 변형되기도 했다. 미국 대공황 시기에는 ‘백만 달러짜리 그림’으로 홍보됐으며 1933~1934년 시카고 만국박람회에서도 큰 인기를 누렸다. 1934년에는 미국에서 이 그림을 변용한 우표까지 발행됐다. 결국 작품은 프랑스 정부에 구입되어 공공 컬렉션에 편입된 최초의 휘슬러 작품이 되었고, 현재는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그런 세계적인 명화가 1978년 재즈 음반 표지에서 뜻밖의 모습으로 다시 등장한다.

 

『Alivemutherforya』 표지를 보면 ‘휘슬러의 어머니’ 원작 구도를 그대로 떠올릴 수 있지만, 한 가지 결정적인 변화가 있다. 의자 옆 벽에서 전기 코드가 길게 늘어져 있다. 자료에는 이 패러디 이미지가 디자이너 폴라 쉐어(Paula Scher)의 작업이라고 소개돼 있다. 엄숙하고 정적인 19세기 회화에 20세기 후반의 전기적이고 대중적인 감각을 끌어들인 것이다.

 

이 작은 전기 코드 하나는 앨범의 성격을 절묘하게 상징한다. 고전적인 회화의 정적 이미지와 전기로 증폭되는 현대 음악, 엄숙함과 유머, 19세기와 1970년대가 한 화면에서 부딪힌다. 마치 “이 그림은 아직 살아 있다”고 선언하는 듯하다.

 

음악 역시 평범하지 않다. 『Alivemutherforya』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대형 공연장의 ‘콘서트 실황’이라기보다는 뉴욕의 스튜디오에 초대 관객을 모아놓고 라이브 방식으로 연주·녹음한 프로젝트 앨범이다. 단 한 번의 라이브 연주를 위해 정상급 연주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참여 멤버는 화려하다. 파나마 출신의 세계적인 드러머 빌리 코브햄(Billy Cobham)을 중심으로 기타리스트 스티브 칸(Steve Khan), 색소폰 연주자 탐 스코트(Tom Scott), 베이시스트 알퐁소 존슨(Alphonso Johnson), 키보디스트 마크 소스킨(Mark Soskin)이 참여했다. 훗날 각자의 영역에서 이름을 떨친 연주자들이 한자리에서 즉흥성과 정교한 앙상블을 동시에 펼쳐 보인다.

이 음반에서 특히 눈에 띄는 곡은 ‘Some Punk Funk’다. 브레커 브라더스의 연주로도 널리 알려진 곡으로, 퓨전 재즈 특유의 날카로운 리듬과 팽팽한 긴장감이 살아 있다. 빌리 코브햄의 강력하고도 정밀한 드럼, 스티브 칸의 기타, 탐 스코트의 색소폰, 알퐁소 존슨의 베이스, 마크 소스킨의 키보드가 서로 공간을 주고받으며 음악을 밀고 나간다. 자료에는 빌리 코브햄의 솔로 앨범에 실렸던 두 곡도 이 프로젝트에서 새로운 해석으로 연주된다고 소개돼 있다.

 

여기에 앨범 제목 자체도 이 음반의 장난기와 에너지를 더한다. 

 

‘Alivemutherforya’는 일반적인 영어 단어가 아니다.  ‘Alive’와 비표준적 철자의 ‘muther’, 그리고 ‘for ya’를 이어 붙인 거친 구어적 표현이다. 의미를 정확하게 번역하기보다는 “우리가 아직 살아 있다”, “여기 살아 있는 연주가 있다”는 식의 도발적이고 익살스러운 뉘앙스로 받아들이는 편이 자연스럽다. ‘mother’를 일부러 ‘muther’로 비틀어 적은 것 역시 제목 전체를 하나의 발음과 리듬처럼 느끼게 한다.

 

이 제목을 앨범 표지와 함께 바라보면 재미는 더욱 커진다. ‘Mother’라는 단어가 ‘휘슬러의 어머니’라는 미술사적 이미지와 은근히 겹쳐지고, ‘Alive’는 정적인 명화를 1978년의 생생한 라이브 연주 속으로 다시 불러낸다. 그래서 『Alivemutherforya』의 표지는 단순히 유명한 그림을 패러디한 디자인이라기보다, 고전예술과 현대 대중음악 사이에 놓인 하나의 시각적 언어처럼 읽힌다.

 

휘슬러는 회화를 문학적 이야기에서 해방시키려 했고, 빌리 코브햄을 비롯한 연주자들은 악보의 경계를 넘어 즉흥적인 에너지와 앙상블을 만들어냈다. 시대와 장르는 다르지만 두 세계 모두 ‘내용’보다 색채와 구성, 리듬과 질감 자체를 중요하게 여겼다는 점에서 묘한 공통점을 갖는다.

 

원작 ‘휘슬러의 어머니’에서는 검정과 회색의 절제된 색조, 직선과 곡선의 균형이 음악처럼 화면을 구성한다. 반대로 『Alivemutherforya』의 음악에서는 드럼과 베이스, 기타, 색소폰, 키보드가 서로 다른 색채를 내면서도 하나의 회화적인 장면처럼 겹쳐진다.

 

그래서 이 한 장의 음반은 눈으로 먼저 보고 귀로 다시 확인하게 되는 앨범이다.

 

19세기 한 화가가 어머니를 바라보며 만들어낸 고요한 화면. 그리고 약 100년 뒤, 다섯 명의 뛰어난 연주자들이 스튜디오에서 만들어낸 뜨겁고 생생한 퓨전 재즈.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장면이 한 장의 앨범 표지 위에서 만난다.

 

의자 옆에 슬쩍 놓인 전기 코드처럼, 예술의 역사에도 보이지 않는 선이 이어져 있는 것은 아닐까. 회화에서 디자인으로, 디자인에서 음악으로, 그리고 다시 우리의 기억 속으로.

 

『Alivemutherforya』는 바로 그 선을 따라가며 듣는 재미가 있는 음반이다. 그림은 조용히 앉아 있지만 음악은 거침없이 움직인다. 그리고 100년의 시간을 건너온 ‘휘슬러의 어머니’는 그렇게 다시 한번 살아 움직인다.

 

글 ㅣ최재우 문화예술기획 제이비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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