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최재우 | 문화예술기획 제이비엠 대표

 

한 장의 음반은 소리만 담고 있지 않다. 음악이 시작되기 전, 청자는 먼저 표지를 바라본다. 색채와 인물, 상징과 구도를 눈으로 읽은 뒤 비로소 음반에 바늘을 올리거나 재생 버튼을 누른다. 그런 의미에서 앨범 커버는 음악의 입구이자, 소리를 이미지로 번역한 또 하나의 예술작품이다.

 

이번에 소개할 두 장의 음반은 영국 싱어송라이터 케이트 부쉬(Kate Bush)가 1980년에 발표한 《Never for Ever》와 프랑스 기타리스트 장 파스칼 보포(Jean Pascal Boffo)의 1988년 앨범 《Rituel》이다. 

 

두 음반은 음악적 성격은 서로 다르지만, 수많은 형상이 하나의 새로운 얼굴과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이중그림’의 묘미를 앨범 커버에 담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하나의 그림에서 두 개의 세계를 보다

 

이미지나 형태 자체는 변하지 않았는데, 보는 사람의 시각과 집중하는 지점에 따라 전혀 다른 대상으로 인식되는 현상을 ‘게슈탈트 전환(Gestalt Switch)’이라고 한다.

 

가까이에서 볼 때는 동물과 식물, 사람과 사물의 집합으로 보이던 그림이 한두 걸음 뒤로 물러서는 순간 거대한 얼굴로 변한다. 반대로 하나의 초상처럼 보이던 이미지에 시선을 가까이 가져가면, 그 얼굴을 이루고 있던 수많은 개별 형상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그림 자체가 움직이거나 변하는 것은 아니다. 눈을 통해 받아들인 정보를 뇌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하면서 지각의 대상이 달라지는 것이다. 이처럼 한 화면 안에 둘 이상의 이미지를 숨겨놓고 관람자의 시선에 따라 새로운 형상을 발견하도록 하는 것이 이중그림의 핵심이다.

주세페 아르침볼도 작품 4계

이 기법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화가가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주세페 아르침볼도(Giuseppe Arcimboldo)다. 그는 과일과 채소, 꽃, 나무, 물고기와 동물, 생활도구 등을 정교하게 배열해 사람의 얼굴을 만들어냈다.

주세페 아르침볼도 작품 4원소

각각의 사물은 본래의 모습을 유지하지만, 전체적으로 바라보면 하나의 초상이 된다. 부분과 전체가 끊임없이 교차하고, 정물과 인물이 한 화면에서 공존한다. 그의 대표적인 연작인 ‘사계’와 ‘사원소’는 이러한 이중적 지각 경험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아르침볼도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스케치와 실험적 관찰로부터 영향을 받았으며, 그의 작품이 이후 피카소와 달리, 뒤샹, 마그리트 등 후대 작가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또한 그의 작품은 빈 미술사박물관과 우피치미술관 등 유럽의 주요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아르침볼도의 그림이 흥미로운 이유는 단순히 재치 있는 조합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대상을 어떻게 보고, 기억하고, 해석하는가를 묻는다. 우리는 꽃을 보고 있는가, 사람을 보고 있는가. 새와 물고기를 보고 있는가, 아니면 그 형상들이 모여 만든 얼굴을 보고 있는가.

 

정답은 하나가 아니다. 어느 쪽도 틀리지 않으며, 두 이미지 모두 그림 안에 존재한다. 이중그림은 결국 사물보다 우리의 시선이 얼마나 유동적인지를 보여주는 예술이다.

케이트 부쉬, 몸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상상의 생명들

케이트 부쉬 1980년 앨범 앞면Illustration, Painting : Nick Price  

첫 번째 음반은 케이트 부쉬의 세 번째 정규 앨범 《Never for Ever》다.

 

케이트 부쉬는 뛰어난 작곡 능력과 감각적인 가사, 정확한 발음과 독창적인 가창으로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구축한 싱어송라이터다. 1958년에 태어나 1978년 스무 살 무렵 첫 음반을 발표했으며, 데뷔 초기부터 범상치 않은 음악적 재능으로 주목받았다. 필자는 2000년 이전 팝 음악을 기준으로 가장 좋아하는 여성 싱어송라이터를 꼽는다면 여전히 케이트 부쉬를 첫손가락에 두고 싶다고 밝힌다.

 

《Never for Ever》의 표지는 일러스트레이터 닉 프라이스(Nick Price)가 제작했다. 

 

화면 왼쪽에는 케이트 부쉬가 서 있다. 그러나 그녀의 치맛자락 아래와 몸 뒤편에서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어선 수많은 생명체가 폭포처럼 쏟아져 나온다.

 

박쥐와 고양이, 새와 물고기, 괴수와 파충류를 연상시키는 존재들이 서로의 몸을 포개고, 날개와 부리, 눈과 이빨을 드러낸 채 화면을 가득 채운다. 각각의 동물은 독립된 존재이면서 동시에 더 거대한 생명체의 일부처럼 보인다.

 

표지를 얼핏 보면 기괴하고 혼란스럽다. 그러나 오래 바라보면 복잡한 형상 속에도 일정한 질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흰 새의 날개와 긴 목은 화면의 흐름을 아래로 이끌고, 어두운 박쥐와 괴수들은 중심부에 무게를 형성한다. 케이트 부쉬의 꽃무늬 의상은 현실의 인물과 환상 속 동물들을 연결하는 통로처럼 기능한다.

 

앨범 제목 ‘Never for Ever’는 표지 왼쪽 아래에 금빛 글씨로 자리한다. 영원할 것 같지만 영원하지 않은 것, 현실처럼 보이지만 꿈일 수 있는 것, 아름답지만 동시에 불안한 것들이 이 한 장의 이미지 안에서 교차한다.

 

이 표지는 케이트 부쉬를 한쪽에 두고 수많은 동물이 겹치고 숨어 있는 전체 구도를 통해 이중그림을 연상시킨다. 복잡하게 부풀려진 듯한 구성에도 불구하고 색채는 섬세하고 차분하며, 숨어 있는 동물들을 하나씩 찾아보는 재미도 크다.

내지까지 이어지는 시각적 서사

 

앨범 내지를 보면 이러한 상상의 세계가 표지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케이트 부쉬 1980년 앨범 내지Illustration, Painting : Nick Price

한쪽 내지에는 거대한 검은 박쥐의 날개와 여러 마리의 흰 새, 물고기와 기묘한 동물들이 가사를 둘러싸고 있다. 다른 면에서는 회색 생명체가 벽이나 알을 깨고 나와 나비와 마주한다. 장미와 나비, 새와 파충류는 노랫말 사이를 이동하며 각 곡의 정서를 시각적으로 확장한다.

 

음악을 들으며 가사를 읽는 행위가 곧 그림 속 생명체를 탐색하는 경험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내지는 단순한 가사 인쇄물이 아니라 음악과 회화가 결합된 하나의 서사 공간이다. 앞면과 내지의 일러스트레이션 및 페인팅이 모두 닉 프라이스가 작업했다.

케이트 부쉬 1980년 앨범 내지Illustration, Painting : Nick Price

이 앨범에서는 첫 곡 ‘Babooshka’를 비롯해 ‘Army Dreamers’, ‘Breathing’ 등이 널리 알려졌다. 세 곡 모두 서로 다른 이야기와 정서를 품고 있지만, 현실적인 사건을 낯선 목소리와 연극적인 구성으로 변형한다는 점에서 앨범 커버와 닮아 있다.

 

특히 케이트 부쉬의 음악은 하나의 감정으로 쉽게 규정되지 않는다. 아름다운 멜로디 속에 불안이 있고, 유머 속에 비극이 있으며, 어린아이 같은 상상력 속에 전쟁과 관계, 욕망과 죽음에 대한 묵직한 질문이 숨어 있다.

 

따라서 《Never for Ever》의 환상적인 동물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그것들은 케이트 부쉬의 음악 안에 공존하는 수많은 목소리와 인물, 감정과 무의식을 시각화한 존재들처럼 보인다. 그녀의 몸에서 쏟아져 나오는 생명체들은 곧 한 예술가의 내면에서 탄생한 노래들이며, 한 장의 음반을 통해 세상으로 풀려난 상상력의 형상이다.

장 파스칼 보포, 동물의 군집 속에서 나타나는 얼굴

장 파스칼 보포 1988년 앨범 표지Illustration, Painting : Paul Flickinnger

두 번째 음반은 장 파스칼 보포의 1988년 앨범 《Rituel》이다.

 

장 파스칼 보포는 재즈의 영향을 받은 기타리스트다. 이 앨범에는 프로그레시브 록과 클래식 음악의 장엄함이 결합된 심포닉 록의 성향이 담겨 있다. 수록곡은 연주곡 중심이며, 각각의 곡이 따로 떨어지기보다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어 특정한 한 곡만 골라 듣기보다는 첫 곡부터 순서대로 감상하게 되는 음반이다.

 

《Rituel》의 표지는 케이트 부쉬의 앨범보다 훨씬 어둡고 밀도 높다. 중앙에는 한 여성의 얼굴이 자리하고, 그 주변을 사자와 새, 물고기, 파충류, 늑대와 고양이를 연상시키는 수많은 동물 형상이 빼곡하게 둘러싸고 있다.

 

가까이에서 보면 각각의 동물과 얼굴이 먼저 보인다. 그러나 그림에서 조금 떨어져 전체를 바라보면, 중앙의 여성과 주변 동물들이 합쳐져 또 하나의 거대한 얼굴을 형성한다.

 

화면 오른쪽 위의 사자는 거대한 얼굴의 이마와 머리카락 일부가 되고, 여러 동물의 눈과 부리는 눈썹과 눈 주변의 윤곽으로 변한다. 중앙 여성의 얼굴은 큰 얼굴의 코와 뺨을 구성하며, 아래쪽의 인물과 동물들은 입과 턱의 형태를 만들어낸다.

 

바로 이 순간 게슈탈트 전환이 일어난다. 관람자는 더 이상 개별 동물만 볼 수 없고, 그렇다고 거대한 얼굴만 바라볼 수도 없다. 시선은 부분과 전체 사이를 끊임없이 왕복한다.

표지의 일러스트레이션과 페인팅은  ‘Paul Flickinnger’이 작업했다.

 

이 작품은 어두운 갈색과 회색, 녹색 계열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색채는 화려하게 튀기보다 서로 스며들며 오래된 벽화나 신화 속 제의 장면 같은 분위기를 만든다. 제목인 ‘Rituel’, 즉 ‘의식’이라는 단어와도 잘 어울린다.

 

표지 속 동물들은 단순한 자연의 생명체라기보다 인간의 기억과 욕망, 공포와 본능을 상징하는 토템처럼 느껴진다. 중앙의 여성은 그 모든 존재를 품고 있는 사제이거나, 의식을 통해 나타난 신화적 인물처럼 보인다.

 

이 표지는 “여성 주인공을 중심으로 동물들이 둘러싸고 있으며, 약간 떨어져서 보면 전체 그림에서 큰 얼굴이 엿보이는 전형적인 이중그림”이다. 또한 어두운 색조 안에서 오밀조밀하게 표현된 동물들의 배열과 전체적인 평형, 짜임새 있는 구도를 높이 평가한다.

두 앨범, 서로 다른 방식으로 구현된 이중성

 

《Never for Ever》와 《Rituel》은 모두 동물과 인간, 부분과 전체를 한 화면 안에서 결합하지만 그 정서는 뚜렷하게 다르다.

케이트 부쉬 1980년 앨범 앞면Illustration, Painting : Nick Price  

케이트 부쉬의 표지가 몸 밖으로 분출되는 상상력을 보여준다면, 장 파스칼 보포의 표지는 수많은 존재가 한 인물 안으로 수렴하는 장면에 가깝다.

 

《Never for Ever》에서 동물들은 케이트 부쉬의 내면으로부터 세상 밖으로 튀어나온다. 형상들은 움직이고 날아오르며 서로를 밀어낸다. 음악 역시 노래와 연극, 문학과 퍼포먼스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장 파스칼 보포 1988년 앨범 표지Illustration, Painting : Paul Flickinnger

반면 《Rituel》의 동물들은 화면 안쪽으로 응축된다. 각 존재가 제자리를 지키면서 하나의 거대한 얼굴과 질서를 만든다. 음악도 개별 곡의 즉각적인 인상보다 앨범 전체가 이어지며 만드는 구조와 흐름이 중요하다.

 

하나는 확산이고 다른 하나는 응집이다. 하나는 이야기와 인물이 연속적으로 등장하는 음악극에 가깝고, 다른 하나는 반복과 변화가 축적되는 기악적 의식에 가깝다. 그러나 두 작품은 공통적으로 관객과 청자의 적극적인 참여를 요구한다. 그림 속에 어떤 동물이 숨어 있는지 찾아야 하고, 가까이와 멀리에서 번갈아 보아야 하며, 부분과 전체 사이에서 스스로 의미를 구성해야 한다.

 

음악 감상도 마찬가지다. 한 번 듣고 곧바로 결론을 내리기보다 여러 차례 반복해 들을 때, 처음에는 들리지 않던 악기와 목소리, 리듬과 감정의 층위가 새롭게 드러난다.

 

이중그림이 시선의 습관을 흔든다면, 좋은 음악은 청각의 습관을 흔든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고, 한 번 들은 것을 다르게 듣게 한다는 점에서 시각예술과 음악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음반 한 장이 완성하는 작은 종합예술

 

디지털 음원 시대에는 음악이 재생 목록 속 작은 제목과 아이콘으로 소비되는 경우가 많다. 앨범을 손에 들고 앞면과 뒷면을 살피며, 내지를 펼쳐 가사를 읽고, 제작자와 연주자의 이름을 확인하던 경험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Never for Ever》와 《Rituel》 같은 음반을 바라보면 앨범 커버와 내지가 음악 감상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케이트 부쉬의 앨범은 표지와 내지, 노랫말과 일러스트레이션이 결합해 하나의 환상적인 세계를 만든다. 장 파스칼 보포의 앨범은 어두운 동물 군상과 거대한 얼굴을 통해 심포닉 록의 장엄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먼저 예고한다.

 

표지는 음악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음악이 시작되기 전에 청자의 감각을 특정한 세계로 이끈다. 그림을 먼저 본 사람은 그 이미지를 마음에 품은 채 음악을 듣고, 음악을 들은 뒤 다시 표지를 바라보며 처음과는 다른 형상을 발견한다. 그때 음반은 단순한 소리의 저장 매체를 넘어선다. 회화와 디자인, 문학과 음악이 결합한 작은 종합예술이 된다.

 

주세페 아르침볼도의 그림에서 과일과 꽃이 인간의 얼굴로 변하듯, 케이트 부쉬의 앨범에서는 수많은 생명체가 한 예술가의 상상력으로 변한다. 장 파스칼 보포의 표지에서는 서로 다른 동물과 인물이 하나의 거대한 얼굴과 의식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그림은 그대로지만 우리가 바라보는 방식은 달라진다. 음악도 그대로지만 우리의 경험과 시간에 따라 다르게 들린다.

 

열대야로 쉽게 잠들지 못하는 밤, 두 장의 음반을 차례로 꺼내 들어보는 것도 좋겠다. 표지 속에 숨어 있는 동물과 얼굴을 천천히 찾아보고, 케이트 부쉬의 목소리와 장 파스칼 보포의 기타가 만들어내는 서로 다른 세계에 귀를 기울여보자.

 

눈으로 음악을 듣고, 귀로 그림을 바라보는 순간, 한 장의 음반은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또 하나의 얼굴을 조용히 드러낼 것이다.

앨범 개요 1

케이트 부쉬 《Never for Ever》

  • 앨범명: 《Never for Ever》

  • 아티스트: 케이트 부쉬(Kate Bush)

  • 발표 연도: 1980년

  • 앨범 구분: 세 번째 정규 앨범

  • 음악 성격: 케이트 부쉬 특유의 연극적 보컬과 독창적인 작곡, 감각적인 가사가 돋보이는 팝·아트록 성향의 앨범

  • 대표 수록곡:
    ‘Babooshka’, ‘Army Dreamers’, ‘Breathing’

  • 앨범 커버 작가: 닉 프라이스(Nick Pr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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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개요 2

장 파스칼 보포 《Rituel》

  • 앨범명: 《Rituel》

  • 아티스트: 장 파스칼 보포(Jean Pascal Boffo)

  • 발표 연도: 1988년

  • 아티스트 구분: 프랑스 기타리스트

  • 음악 성격:
    재즈의 영향을 바탕으로 프로그레시브 록과 클래식 음악의 장엄함을 결합한 심포닉 록 성향의 연주 앨범

  • 수록곡 구성:
    보컬곡보다는 연주곡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으며, 각각의 곡이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최재우 칼럼니스트

jaewooart@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