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Sportin’ Life》와 1988년 《In the City of Angels》의 음악과 미술
오래전 음반을 수집하던 중, 1985년에 발표된 한 앨범의 표지에서 독특하고 인상적인 현대 회화를 만났다. 밝고 선명한 색채, 매끄럽게 정리된 외곽선,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기하학적 이미지가 오랫동안 뇌리에 남았다.
그리고 3년 뒤인 1988년, 또 다른 앨범의 표지에서 낯익은 화풍을 다시 마주했다. 처음 보는 그림이었지만 한눈에 3년 전의 앨범 커버가 떠올랐다. 확인해 보니 두 작품은 실제로 같은 작가가 그린 서로 다른 그림이었다.
오늘 ‘눈으로 즐기며 듣는 이 한 장의 음반’에서 소개할 이야기는 ‘동명이작(同名異作)’이다. 여기서 동명이작은 같은 제목의 서로 다른 작품이라는 일반적 의미보다, 한 명의 작가가 서로 다른 음악가의 앨범을 위해 그린 두 작품이라는 의미로 풀어보고자 한다.
그 주인공은 미국의 일러스트레이터이자 화가인 제리 맥도날드(Jerry McDonald)다. 그가 표지 작품을 그린 두 음반은 퓨전재즈 그룹 웨더 리포트(Weather Report)의 1985년 앨범 《Sportin’ Life》와 프로그레시브록 그룹 예스(Yes)의 보컬 존 앤더슨(Jon Anderson)이 1988년에 발표한 솔로 앨범 《In the City of Angels》다.
현대미술의 여러 흐름을 품은 제리 맥도날드의 그림
제리 맥도날드의 작품에는 20세기 후반까지 이어진 모던아트의 다양한 흐름이 투영돼 있다. 그의 그림은 뉴욕을 중심으로 발전한 모던 그래픽 일러스트레이션과 팝아트의 영향을 보여주는 한편, 르네 마그리트와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비현실성과 기하학적 비정형성을 떠올리게 한다.
그림 속 인물과 사물은 현실에서 출발하지만, 실제 세계의 비례와 질서에서 자유롭게 벗어난다. 도시의 건물과 자연, 인체와 기계, 동물과 식물이 서로 낯선 방식으로 결합하면서 하나의 초현실적인 무대를 구성한다.
밝고 깨끗한 색채와 정돈된 외곽선, 선명하면서도 화려한 색면에서는 구아슈 물감 특유의 효과와 함께 샤갈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서정성이 느껴진다. 매끄러운 기하학적 형태와 양식화된 인물, 건축적인 화면 구성에는 20세기 초 프리시저니즘과 아르데코의 조형 감각도 배어 있다.
거친 붓질을 전면에 드러내기보다는 에어브러시를 세밀하게 활용한 듯한 균질한 색감이 특징이다. 이 때문에 그의 작품은 상업적인 인쇄 이미지의 명료함을 지니면서도, 단순한 미디어 프린팅과는 다른 몽환적인 깊이를 만들어낸다.
웨더 리포트 《Sportin’ Life》, 선명하고 생동감 넘치는 퓨전재즈
제리 맥도날드가 표지 그림을 맡은 첫 번째 음반은 웨더 리포트가 1985년에 발표한 《Sportin’ Life》다.
웨더 리포트는 마일스 데이비스와 함께 연주했던 색소폰 연주자 웨인 쇼터(Wayne Shorter)와 키보디스트 조 자비눌(Joe Zawinul)이 의기투합해 결성한 그룹이다. 재즈와 록, 펑크, 월드뮤직을 결합한 퓨전재즈 시대를 연 대표적인 밴드이며, 퓨전재즈의 3대 명그룹 가운데 하나로 자주 거론된다.
웨더 리포트는 활동 기간 모두 15장의 앨범을 발표했다. 《Sportin’ Life》는 해산 전 마지막 앨범을 앞두고 발표한 14번째 정규 음반이다. 그룹의 말기에 해당하지만 음악에서는 쇠퇴의 기색을 찾아보기 어렵다. 아프리카계 리듬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역동적인 연주와 정교한 앙상블이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있다.
이 그룹을 거쳐 간 연주자들의 면면 역시 화려하다. 중기에 베이스를 연주한 자코 파스토리우스(Jaco Pastorius)는 일렉트릭 베이스의 가능성을 새롭게 확장한 전설적인 연주자다. 오늘날의 수많은 베이시스트도 그의 영향에서 자유롭기 어렵고, 연주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한 번쯤 그의 주법을 따라 하게 된다.
필 콜린스의 라이브 무대에서도 활약한 드러머 체스터 톰슨(Chester Thompson), 자코 파스토리우스의 뒤를 이어 뛰어난 베이스 연주를 들려준 빅터 베일리(Victor Bailey), 재즈 드럼의 원로 거장으로 존경받는 피터 어스킨(Peter Erskine), 그리고 그 뒤를 이은 오마 하킴(Omar Hakim) 등 웨더 리포트를 거쳐 간 멤버들은 저마다 진주처럼 빛나는 연주자들이었다.
《Sportin’ Life》의 첫 곡 ‘Corner Pocket’은 상큼하고 경쾌한 사운드로 청자의 귀를 단번에 사로잡는다. 마빈 게이(Marvin Gaye)의 대표곡 ‘What’s Going On’은 웨더 리포트만의 독특한 리듬과 색채로 재해석됐다.
앨범 전체에 흐르는 음악은 활달하고 에너지가 넘친다. 복잡한 연주를 들려주면서도 소리는 혼탁하지 않고, 각 악기의 움직임은 또렷하게 살아 있다. 제리 맥도날드의 표지 작품이 보여주는 깨끗한 선과 선명한 색채처럼, 이 음반의 연주 역시 정교하고 명료하다.
표지와 음악은 서로 다른 감각의 영역에 존재하지만, 《Sportin’ Life》에서는 시각과 청각이 하나의 인상을 향해 나아간다. 앨범 커버의 생동감과 음악의 에너지가 자연스럽게 맞물리는 것이다. 이 앨범은 이듬해 그래미상 베스트 재즈 퓨전 연주 부문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존 앤더슨 《In the City of Angels》, 천상의 목소리로 부른 도시의 하루
제리 맥도날드가 표지 그림을 맡은 두 번째 음반은 존 앤더슨이 1988년에 발표한 솔로 앨범 《In the City of Angels》다.
존 앤더슨은 영국의 대표적인 프로그레시브록 그룹 예스에서 리드보컬을 맡은 음악가다. 프로그레시브록을 대표하는 보컬리스트를 꼽을 때 빠지지 않는 인물이며, 맑고 고운 음색과 청량한 목소리로 오랫동안 사랑받아 왔다.
그의 발음은 정확하고 표현은 섬세하다. 독특한 음색이 지나치게 강조된 나머지 가창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평가도 있지만, 실제로는 성량과 호흡이 안정돼 있고 음악적 표현력도 뛰어나다.
존 앤더슨은 장장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예스의 얼굴이자 목소리로 존재했다. 특히 남성 보컬임에도 ‘천사의 목소리’라고 불릴 만큼 맑고 순수한 음색이 그의 가장 큰 특징이다.
그의 목소리에는 어린아이와 같은 천진난만함과 고고한 순수성이 공존한다. 때로는 모성애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여리고 따뜻하지만, 결코 힘이 부족하지 않다. 맑고 투명한 목소리 안에 단단한 호흡과 깊은 표현력을 지닌 보컬리스트다.
《In the City of Angels》는 이러한 존 앤더슨의 개성이 잘 드러나는 솔로 보컬 앨범이다. 첫 곡 ‘Hold on to Love’는 경쾌한 리듬과 밝은 분위기로 시작하며 그의 청량한 목소리를 단번에 드러낸다. 당시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던 곡이다.
“사랑을 붙잡으세요”라고 노래하던 뮤직비디오의 장면을 넋을 놓고 바라보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밖에도 ‘Is It Me’, ‘In a Lifetime’, ‘For You’ 등 생기발랄하고 따뜻한 곡들이 앨범을 채우고 있다.
마지막 곡 ‘Hurry Home’은 제목처럼 “어서 집으로” 돌아오라고 말하는 듯 포근하고 따뜻하게 앨범을 마무리한다. 전체적으로 존 앤더슨의 맑고 청량한 목소리가 가득한, 듣는 사람의 기분을 편안하게 만드는 음반이다.
같은 화가, 다른 음악…표지는 음악의 또 다른 입구가 된다
웨더 리포트의 《Sportin’ Life》와 존 앤더슨의 《In the City of Angels》는 장르부터 다르다. 한쪽은 치밀하고 역동적인 퓨전재즈이고, 다른 한쪽은 맑은 목소리를 중심으로 한 밝고 서정적인 팝·프로그레시브록 계열의 앨범이다.
그러나 두 음반은 제리 맥도날드의 그림을 통해 묘하게 연결된다.


《Sportin’ Life》의 커버에는 자연과 인간, 기계적인 구조물이 혼재하며 웨더 리포트의 복합적인 리듬과 실험성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반면 《In the City of Angels》의 커버에는 건축물과 도로, 야자수, 하늘을 나는 형상들이 등장하며 현대 도시의 일상과 꿈을 동시에 담아낸다.


《Sportin’ Life》의 앞·뒷면 커버는 청록색과 붉은색을 중심으로 한 선명한 화면 안에서 인물과 식물, 도시적 형상이 교차한다. 《In the City of Angels》 커버는 노란색과 주황색의 따뜻한 색조 속에 도시 건축과 비현실적인 이미지가 배치돼 있다. 두 작품은 서로 다른 장면을 보여주면서도, 제리 맥도날드 특유의 기하학적 구성과 밝은 색채, 초현실적인 상상력을 공유한다.
앨범 커버는 단순한 포장지가 아니다. 음악을 듣기 전에 청자를 작품의 세계로 안내하는 첫 번째 입구다. 때로는 한 장의 그림이 음악에 대한 기억을 오래 붙잡아두고, 시간이 흐른 뒤 또 다른 음반과의 뜻밖의 인연을 발견하게 한다.
1985년의 웨더 리포트와 1988년의 존 앤더슨. 서로 다른 음악가와 서로 다른 음악이지만, 제리 맥도날드의 그림을 통해 두 장의 음반은 하나의 미술적 계보 안에서 만난다.
눈으로 먼저 감상하고, 귀로 다시 음미하는 음악. 그것이 바로 한 장의 앨범이 줄 수 있는 복합적인 예술 경험이다. 오늘은 제리 맥도날드가 그린 두 개의 작품, 그리고 그 그림 속에서 다시 만난 두 장의 음반을 꺼내 들어본다.
글|최재우 문화예술기획 제이비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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