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귀로 듣지만, 음반은 때로 눈으로 먼저 만난다. 특히 한 장의 LP 재킷에 담긴 그림은 음악을 듣기 전부터 그 음반이 지닌 분위기와 세계를 암시한다. 때로는 음악과 미술이라는 서로 다른 장르가 한 장의 앨범 안에서 절묘하게 만나 새로운 감상의 즐거움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오늘 이야기는 지난 칼럼에서 다룬 ‘동명이작(同名異作)’ 앨범 커버에서 숫자를 조금 더 확장한 ‘동명사작(同名四作)’, 즉 한 화가가 그린 서로 다른 네 작품이 각각 네 장의 앨범 커버로 사용된 이야기다. 그 주인공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나이브(Naive) 화가 앙리 루소(Henri Rousseau)다.
루소는 아마추어적인 듯한 어색한 색채와 표현 때문에 초기에는 많은 비난과 조소를 받았다. 그러나 낯선 이미지의 세계를 독특한 상상력으로 구현한 그의 작품은 환상적인 색채와 비현실적인 표현으로 입체파와 초현실주의 화가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특히 실제로 열대 정글을 여행하지 않고 상상에 의존해 그린 이국적인 열대림 연작은 오늘날 그의 대표적인 작품세계로 남아 있다.
흥미로운 것은 루소의 대표작 가운데 여러 작품이 시대와 장르가 서로 다른 음악가들의 앨범 표지로 선택됐다는 점이다. 아프리칸 록에서 프로그레시브 록, 팝재즈, 빅밴드 재즈까지 음악의 성격은 다르지만, 루소가 만들어낸 환상적인 이미지가 음악과 만나면서 또 하나의 감상 세계를 만들어냈다.
정글의 리듬과 만난 루소
오시비사(Osibisa) ― 「Osibirock」

(오시비사(Osibisa) 1974년 앨범 ”Osibirock“앙리 루소 1910년 작품 ”재규어 공격을 받는 흑인“ (스위스 바젤 미술관 소장)
첫 번째 작품은 루소가 1910년에 그린 「재규어의 공격을 받는 흑인(Negro Attacked by Jaguar)」이다. 열대림 연작 가운데 하나로, 「뱀을 부리는 여인」, 「잠자는 집시」, 「놀람」 등과 함께 루소 특유의 작품세계를 잘 보여준다. 이 작품이 그룹 오시비사(Osibisa)의 앨범 「Osibirock」의 커버다.
오시비사는 가나 출신의 영국 유학생 테디 오세이(Teddy Osei)가 1969년 런던에서 결성한 7인조 그룹으로, 가나와 캐리비언 출신 멤버들로 구성됐다. 이들은 아프리카 전통 리듬을 록 음악에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주술적 이미지를 더하면서 새로운 음악 스타일을 보여주었다. ‘아프리칸 록’이라는 표현을 떠올리게 만드는 대표적인 그룹 가운데 하나다.
국내 음악팬들에게는 인종차별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발라드 「Why」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 곡은 국내 라디오에서도 많은 신청을 받았으며, 앨범에는 아프리카 전통 리듬과 록이 어우러진 음악들이 수록돼 있다.
“킬레레 킬레레 아워 아워 킬레레”라는 구호와 함께 신나게 전개되는 「Kelele」, 국내에서 「Why」와 함께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은 연주곡 「Kangaroo」 등에서는 아프리카 정글의 분위기를 한껏 느낄 수 있다. 바로 이 점에서 울창하고 낯선 열대림을 그린 루소의 그림은 오시비사의 음악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앨범 표지를 보면 짙은 녹색 식물들 사이로 인물이 자리한 루소의 정글 이미지가 앨범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그림을 바라보고 있으면 음악 속 아프리카 리듬이 시각적으로 확장되는 듯하다. 해당 작품은 스위스 바젤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신비로운 정글과 프로그레시브 록
로랑 띠보(Laurent Thibault) ― 「Mais On Ne Peut Pas Rever Tout Le Temps」

(로랑 띠보(Laurent Thibault) 1978년 앨범”Mais On Ne Peut Pas Rever Tout Le Temps“앙리 루소 1907년 작품 ”뱀을 부리는 여인“(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
두 번째 작품은 1907년작 「뱀을 부리는 여인(The Snake Charmer)」이다.
이 작품을 앨범 커버로 사용한 음악가는 프랑스 기타리스트 로랑 띠보(Laurent Thibault)다. 그의 1978년 앨범 「Mais On Ne Peut Pas Rever Tout Le Temps」은 같은 프랑스 출신 화가인 앙리 루소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것이다.
앨범은 클래식 교향곡의 형식을 차용한 웅장한 사운드와 아트록, 즉 프로그레시브 록적인 주선율을 펼쳐 보이는 콘셉트 음반이다.
「뱀을 부리는 여인」은 어두운 정글을 배경으로 피리를 부는 듯한 인물과 뱀, 무성한 식물들이 어우러진 신비로운 작품이다. 자료 2쪽의 앨범 커버에서도 이 그림이 중심에 배치돼 있는데, 작품 자체가 지닌 몽환성과 초현실적인 분위기가 로랑 띠보의 음악적 세계와 잘 맞아떨어진다. 이 작품은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이 소장돼 있다.
폭풍 속 호랑이와 부드러운 재즈 보컬
마이클 프랭스(Michael Franks) ― 「Tiger In The Rain」

(마이클 프랑스(Michael Franks) 1979년 앨범 ”Tiger In The Rain“앙리 루소 1891년 작품 ”열대성 폭풍속의 호랑이-놀람“(영국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
세 번째 작품은 1891년작 「열대성 폭풍 속의 호랑이-놀람(Tiger In A Tropical Storm-Surprised!)」이다.
이 그림은 남성 팝재즈 싱어 마이클 프랭스(Michael Franks)의 1979년 앨범 「Tiger In The Rain」에 사용됐다. 마이클 프랭스는 국내에서도 「Antonio’s Song」, 「Vivaldi’s Song」 등으로 친숙한 싱어송라이터다. 이 앨범에서도 그의 잔잔하면서 포근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앨범 재킷을 보면 짙은 녹색 바탕의 중앙에 루소의 그림이 마치 창문처럼 자리하고 있다. 폭풍우 치는 열대림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호랑이의 긴장감과 마이클 프랭스 특유의 부드러운 음악이 언뜻 상반돼 보이지만, 바로 그 차이가 색다른 매력을 만들어낸다.
작품 「열대성 폭풍 속의 호랑이-놀람」은 영국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돼 있다.
달 아래 잠든 집시와 빅밴드 재즈
길 골드스테인(Gil Goldstein) ― 「Under Rousseau’s Moon」
마지막 네 번째 작품은 1897년작 「잠자는 집시(The Sleeping Gypsy)」다.

길 골드스테인(Gil Goldstein) 2006년 앨범 ”Under Rousseau’s Moon“앙리 루소 1897년 작품 ”잠자는 집시“
(미국 뉴욕 현대 미술관 소장)
이 작품을 앨범 커버로 사용한 음반은 재즈 작·편곡가이자 빅밴드 리더인 길 골드스테인(Gil Goldstein)의 2006년 앨범 「Under Rousseau’s Moon」이다. 앨범 제목부터 ‘루소의 달 아래’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어 앙리 루소에 대한 음악적 오마주가 더욱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길 골드스테인은 오랫동안 활동해온 재즈 작곡가이자 편곡가다. 얼마 전 자신의 재즈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내한했던 마리아 슈나이더(Maria Schneider)를 보다, 골드스테인이 그보다 훨씬 전부터 활동해온 작곡가다.
또한 뛰어난 빅밴드 리더 주변에 걸출한 연주자들이 모이듯 이 음반에도 이름난 연주자들이 대거 참여했다. 돈 앨리아스, 리차드 보나, 랜디 브레커, 크리스 포터, 마이크 마이니에리 등 일급 연주자들이 참여해 빅밴드 연주의 진수를 들려준다.
루소의 「잠자는 집시」는 사막처럼 보이는 공간에 잠든 인물과 그 곁을 서성이는 사자, 그리고 밤하늘의 달이 만들어내는 묘한 긴장과 평온을 동시에 품은 작품이다. 그 이미지가 ‘Under Rousseau’s Moon’이라는 제목과 만나면서 회화와 음악의 관계를 더욱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작품은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그림을 듣고, 음악을 바라보다
앙리 루소는 생전에 자신의 그림이 훗날 아프리칸 록과 프로그레시브 록, 팝재즈, 빅밴드 재즈의 앨범 표지에 등장하리라고 상상했을까.
그가 그린 열대림과 호랑이, 뱀을 부리는 여인, 달빛 아래 잠든 집시는 각각 서로 다른 시대와 장르의 음악가들에게 새로운 영감의 이미지가 됐다. 흥미로운 점은 네 장의 음반이 모두 같은 화가의 작품을 사용하면서도 전혀 다른 음악적 분위기를 만들어낸다는 데 있다.
오시비사의 강렬한 아프리카 리듬에서는 루소의 정글이 살아 움직이는 듯하고, 로랑 띠보의 프로그레시브 록에서는 「뱀을 부리는 여인」의 신비가 음악적으로 확장된다. 마이클 프랭스의 부드러운 목소리와 폭풍 속 호랑이는 의외의 대비를 이루며, 길 골드스테인의 재즈는 「잠자는 집시」의 달빛 아래에서 또 다른 밤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오래된 LP 한 장은 단순히 음악을 담아놓은 매체만은 아니다. 표지를 바라보고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알고 난 뒤 음악을 들으면 이전에는 들리지 않던 정서와 풍경이 새롭게 다가오기도 한다.
눈으로 그림을 즐기며 귀로 음악을 듣는 것.
한 화가의 네 작품과 네 장의 음반이 보여주는 ‘동명사작(同名四作)’의 재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앙리 루소의 붓끝에서 태어난 환상의 세계가 시간과 장르를 넘어 음악과 만나고, 우리는 한 장의 음반을 통해 미술과 음악을 동시에 여행한다.
오시비사의 「Why」: 듣고 즐겨보시기 바랍니다.
한 장의 그림을 바라보며 그 음악까지 함께 들어본다면, ‘눈으로 즐기며 듣는 이 한 장의 음반’이라는 말의 의미를 조금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글 ㅣ최재우 문화예술기획 제이비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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