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15일, 제81주년 광복절이다.
오늘은 나라를 되찾은 역사적인 날이면서 개인적으로도 무척 특별한 선물을 받은 날이다. 초등학교 4학년인 우리 복덩이 서윤이가 오는 20일 개학을 앞두고 2박 3일 일정으로 서울나들이를 왔다. 그리고 내게 자신이 직접 그린 디지털 드로잉 자화상 한 점을 선물했다.

그림을 보는 순간 행복한 웃음이 번졌다.
“아, 서윤이다.”
누가 설명해주지 않아도 금세 알아볼 수 있었다. 둥근 안경과 머리 위 검은 리본, 가지런히 묶은 머리, 흰색 티셔츠 위에 입은 알록달록한 옷까지 실제 서윤이의 모습이 그림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그림은 단순히 사진 속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옮긴 자화상이 아니다.
서윤이는 자신을 관찰하고, 자신에게서 중요한 특징을 찾아낸 뒤, 그것을 자신의 감각과 상상으로 다시 구성했다.
바로 그 점에서 이 작은 자화상은 흥미로운 작품이 된다.
‘있는 그대로의 나’에서 ‘내가 바라본 나’로
자화상은 미술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되고 깊은 주제 가운데 하나다.
화가는 거울을 바라보며 자신의 얼굴을 그리지만, 실제로 그리는 것은 얼굴만이 아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자신의 모습까지 함께 그린다.
그래서 자화상에는 언제나 두 개의 시선이 존재한다.
‘세상이 바라보는 나’와 ‘내가 바라보는 나’다.
서윤이의 자화상에서도 그 두 시선이 흥미롭게 만난다.
실제 사진과 그림을 함께 놓고 보면 서윤이는 자신의 특징을 상당히 세심하게 관찰했다. 얼굴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둥근 안경, 머리 위의 검은 리본, 한쪽으로 내려오는 검은 머리카락, 옷의 색상까지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을 사진처럼 그대로 재현하지는 않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눈이다.
그림 속 서윤이의 눈은 크다. 커다란 눈동자 안에는 여러 개의 빛이 반짝인다. 검은 속눈썹도 강조되어 있다. 현실의 얼굴을 그대로 복사하기보다 자신의 얼굴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느낀 부분을 확대하고 강조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작품에 ‘반짝이는 나’라는 제목을 붙여주고 싶다.
그림 속 눈동자가 실제로 반짝이기도 하지만, 그 눈에는 세상을 바라보는 어린아이의 호기심과 상상력이 함께 담겨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안경과 리본, ‘나’를 설명하는 작은 기호들
좋은 자화상에는 그 사람을 설명하는 몇 가지 특징적인 기호가 등장한다.
서윤이의 그림에서는 안경과 리본이 그렇다. 실제 사진에서도 둥근 안경은 서윤이의 얼굴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특징 가운데 하나다. 자화상에서도 안경은 얼굴의 중심을 잡는 중요한 요소로 표현되어 있다.
머리 위 리본도 마찬가지다. 검은 머리카락 위에 놓인 리본은 실제 모습과 그림을 연결해주는 작은 단서다. 어린 작가는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무엇이 중요한지 이미 알고 있는 듯하다.
자화상을 그린다는 것은 결국 수많은 자신의 특징 가운데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눈을 그릴 것인가.
옷을 강조할 것인가.
머리 모양을 표현할 것인가.
표정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서윤이는 그 선택을 자신의 방식으로 해냈다.
복잡한 옷을 ‘색의 리듬’으로 바꾸다
개인적으로 눈여겨본 또 하나의 부분은 옷이다. 실제 서윤이가 입고 있는 옷에는 다양한 색과 뜨개질 무늬가 있다. 이를 똑같이 표현하려 했다면 상당히 복잡했을 것이다.
그런데 서윤이는 과감하게 단순화했다. 파랑, 분홍, 연노랑 등의 색을 넓은 띠처럼 배열했다. 세밀한 뜨개질 무늬를 모두 재현하는 대신 옷이 가진 가장 중요한 색채의 특징만 골라냈다.
이러한 ‘선택과 생략’은 그림에서 매우 중요한 능력이다.
모든 것을 그리는 것이 좋은 그림은 아니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작가의 시선이 만들어진다. 서윤이는 아직 어린 학생이지만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복사하기보다 특징을 찾아 단순화하는 감각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그 결과 실제 사진 속 옷과 그림 속 옷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표현되어 있음에도 누구나 같은 옷이라는 사실을 알아볼 수 있다.
꽃과 하트가 만들어낸 ‘서윤이의 세계’
배경에는 실제 공간이 없다.
사진 속에는 집 안의 주방과 벽, 가구가 보이지만 그림에서 서윤이는 그것들을 모두 지워버렸다. 대신 자신이 원하는 세계를 만들었다. 연한 하늘색과 따뜻한 노란빛이 얼굴 주변을 감싸고 있다. 화면 양쪽에는 파란 꽃과 분홍 꽃이 피어 있고 작은 분홍색 하트들이 떠 있다.
현실의 공간 대신 마음속 공간이 등장한 것이다.
특히 얼굴 주변을 둘러싼 노란빛은 마치 작은 후광처럼 인물을 밝게 만든다. 그림 전체에 사용된 노랑, 분홍, 하늘색은 서로 부드럽게 어울리며 따뜻하고 밝은 분위기를 만든다.
꽃과 하트 역시 단순한 장식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그것들은 이 자화상이 사진의 재현이 아니라 ‘내가 만들고 싶은 나의 세계’임을 보여주는 장치다. 사진 속 서윤이가 현실의 공간에 있다면, 자화상 속 서윤이는 자신이 만든 작은 우주 한가운데 서 있다.
디지털 속에 살아 있는 손맛
이 작품은 디지털 드로잉이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디지털 특유의 매끄럽고 완벽한 선을 추구하지 않았다. 얼굴 윤곽과 머리카락, 눈썹과 안경 주변에는 손으로 그린 듯한 거친 선이 그대로 남아 있다. 특히 머리카락 표현이 재미있다. 검은색으로 한 번에 채워 넣지 않고 수많은 선을 겹쳐 그렸다. 선이 겹치면서 머리카락의 방향과 질감이 만들어진다.
디지털 화면에서 그렸지만 연필이나 크레용으로 종이에 그린 듯한 느낌이 남아 있다.
나는 오히려 이런 선이 좋다. 완벽하게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누가 그렸는지가 느껴진다. 어린아이의 그림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완벽한 기술보다 자신의 손과 생각이 남아 있는 흔적일지도 모른다.
그림에서 가장 빛나는 것은 ‘눈’
이 작품의 중심은 역시 눈이다.
얼굴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가장 많은 표현이 들어간 곳도 눈이다. 커다란 검은 눈동자 안에 작은 빛들이 여러 개 반짝인다. 자화상에서 눈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눈은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이 나를 바라보는 지점이다.
서윤이가 그러한 미술적 의미를 생각하며 그렸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린 작가가 자신의 얼굴 가운데 눈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표현했다는 사실 자체가 흥미롭다. 그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단순히 예쁘게 그린 캐릭터의 눈을 넘어 앞으로 수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경험하게 될 어린아이의 시선이 떠오른다.
그래서 복덩이 서윤이가 선택한 ‘반짝이는 나’라는 제목이 더욱 마음에 든다.
눈동자에 찍힌 작은 흰색 점 몇 개가 마치 앞으로 펼쳐질 수많은 가능성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닮았지만 똑같지 않은 것이 자화상의 매력
사진과 그림을 나란히 놓아본다.
분명 닮았다.
그러나 똑같지는 않다.
그리고 바로 그 차이가 이 그림의 가장 좋은 점이다.
사진은 지금 이 순간의 서윤이를 기록한다.
하지만 그림은 서윤이가 생각하고 기억하며 표현한 또 하나의 서윤이다.
실제보다 커다란 눈, 살짝 올라간 입꼬리, 꽃과 하트가 있는 배경, 밝게 빛나는 노란 공간…. 그 안에는 현실의 모습과 함께 어린 작가의 상상력이 들어 있다.
말하자면 이 자화상에는 세 명의 서윤이가 동시에 존재한다.
사진 속의 서윤이,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는 서윤이, 그리고 그림 속에서 자신이 되고 싶은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 서윤이.
이 세 모습이 한 장의 그림에서 만난다.
광복절에 받은 특별한 선물
2026년 8월 15일. 제81주년 광복절에 받은 이 작은 자화상을 오래 기억하게 될 것 같다. 며칠 뒤면 서윤이는 서울나들이를 마치고 돌아가고, 8월 20일이면 다시 학교생활을 시작한다.
아이들은 참 빨리 자란다. 키도 자라고 얼굴도 변하고 생각도 달라진다. 몇 년이 지나면 지금 이 모습도 사진과 그림 속 기억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화상은 특별하다.
사진이 어른의 카메라에 의해 기록된 아이의 모습이라면, 자화상은 아이가 자기 자신을 직접 기록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나를 이렇게 보았어요.”
언젠가 서윤이가 훌쩍 자란 뒤 이 그림을 다시 보게 된다면, 자화상은 그렇게 말을 걸어올지도 모른다.
그림을 잘 그린다는 것은 꼭 사물을 사진처럼 똑같이 그리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신이 본 것을 자신의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이미 그림의 중요한 출발점에 서 있는 것이다. 나는 서윤이가 앞으로도 그림을 그릴 때 너무 빨리 ‘잘 그리는 방법’부터 배우지 않았으면 한다. 지금처럼 자유롭게 보고, 자유롭게 선을 긋고, 마음에 드는 색을 골라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어갔으면 좋겠다.
기술은 시간이 지나면서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자신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힘은 오래 간직해야 한다.
오늘 받은 작은 그림 한 장.
그 안에서 나는 복덩이 서윤이가 바라본 자신의 모습과 함께 아직 펼쳐지지 않은 수많은 내일을 본다. 커다란 안경 너머 반짝이는 두 눈처럼 앞으로의 세상도 그렇게 반짝이기를 바란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도 지금의 이 맑고 자유로운 시선만큼은 오래오래 간직하기를 바란다.
‘반짝이는 나’.
2026년 제81주년 광복절, 서울나들이에서 받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소중한 선물이다.
글 ㅣ 임만택 한국아트넷뉴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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