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의 음반을 바라보는 즐거움은 음악에만 있지 않다. 음반의 표지를 장식한 그림과 사진, 그 안에 담긴 미술과 시대의 이야기를 함께 읽어낼 때 음악은 또 다른 풍경으로 다가온다.
이번에 소개할 한 장의 음반은 미국 그룹 스틸리 댄(Steely Dan)이 1980년 발표한 《Gaucho》다. 재즈와 블루스를 바탕으로 록과 팝을 세련되게 융합한 스틸리 댄의 음악뿐 아니라, 앨범 커버의 모티브가 된 아르헨티나의 탱고 벽화도 함께 살펴볼 만하다.

그룹 스틸리 댄 (Steely Dan)1980년 앨범 커버 페인팅 작가 수잔 월쉬(Susanne Walsh)
음반 개요
앨범명: Gaucho
아티스트: Steely Dan(스틸리 댄)
발매연도: 1980년
구분: 스틸리 댄 7번째 스튜디오 앨범
음악적 특징: 재즈와 블루스를 기반으로 록과 팝을 결합한 정교하고 세련된 사운드
대표곡: ‘Hey Nineteen’, ‘Time Out of Mind’
주요 참여 연주자: Jeff Porcaro, Steve Khan, Michael Brecker, Randy Brecker, Tom Scott, Steve Gadd 등
앨범 커버 페인팅: Susanne Walsh
커버 모티브: Israel Hoffmann의 〈Guardia Vieja Tango(Old Guard Tango)〉
원작 소재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인근 라보카 지역 카미니토 박물관 거리
원작 특징: 탱고를 추는 남녀를 부조 조각과 원색적 채색으로 표현한 공공미술 작품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거리에서 만나는 탱고
《Gaucho》의 앨범 커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아르헨티나의 조각가 이스라엘 호프만(Israel Hoffmann, 1896~1971)의 작품을 만나야 한다.
호프만은 아르헨티나 여러 도시의 공공장소를 장식한 작품으로 알려진 유대계 아르헨티나 조각가다. 이번 음반과 연결되는 작품은 부에노스아이레스 인근 라보카 지역의 유명한 카미니토 박물관 거리 산책로 건물 벽면에 자리한 작품이다.

작가 : Israel Hoffmann작품 : Guardia Vieja Tango( Old Guard Tango ) 소재지 : 아르헨티나부에노스아이레스인근 라보카 지역카미니토 박물관 거리산책로 건물 벽면
작품의 제목은 〈Guardia Vieja Tango〉, 영어로는 〈Old Guard Tango〉다.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음악과 춤인 탱고를 소재로, 춤을 추는 평범한 남녀의 모습을 부조 형식으로 조각한 뒤 그 위에 색을 입혔다.
화려하거나 귀족적인 춤이 아니다. 서로 몸을 밀착시킨 남녀가 탱고의 한순간을 살아내고 있다. 남성의 한 손은 여인의 허리를 감싸고 있고, 다른 손은 여인의 손을 잡고 있다. 여인의 긴 치마와 남녀의 옷자락에 새겨진 주름은 금방이라도 움직일 듯 역동적이다.
특히 부조 조각이 만들어내는 입체적인 굴곡과 원색적인 채색의 대비가 인상적이다. 붉은색과 푸른색을 중심으로 한 단순하고 간결한 색채 위에서 손과 팔, 옷주름과 신체의 움직임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입체적 굴곡과 단순한 채색이 작품의 명암과 역동성을 돋보이게 한다.
카미니토는 오늘날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찾는 관광객들이 즐겨 방문하는 명소이기도 하다. 거리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미술관처럼 느껴지는 곳에서 호프만의 탱고 커플은 아르헨티나 서민 문화의 흥겨움과 정서를 전한다.
거리의 탱고가 《Gaucho》의 표지로
스틸리 댄의 《Gaucho》 앨범 표지를 바라보면 호프만의 작품과 매우 유사한 탱고 커플을 발견할 수 있다.
앨범 커버의 그림을 제작한 작가는 수잔 월쉬(Susanne Walsh)다. 월쉬는 호프만의 벽화 작품을 모티브로 삼아 앨범 커버를 페인팅했다.
원작의 남녀가 붉은색과 푸른색 의상을 입고 있다면 《Gaucho》의 커버에서는 여성의 옷이 강렬한 푸른색으로 변한다. 남성은 검은색에 가까운 실루엣으로 처리됐다. 그러나 서로를 끌어안은 자세와 탱고 특유의 몸짓은 그대로 살아 있다.
거리의 벽면을 장식하던 서민들의 춤이 미국의 세련된 재즈 록 밴드의 음반 표지로 옮겨온 것이다. 그 점에서 《Gaucho》의 커버는 단순한 장식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아르헨티나 거리의 문화와 미국 대중음악이 한 장의 음반에서 조우한다.
완벽주의자들이 만든 세련된 사운드
스틸리 댄은 도널드 페이겐(Donald Fagen)과 월터 베커(Walter Becker)를 중심으로 1971년 결성된 그룹이다. 이들은 무엇보다 음악 제작에서의 완벽주의로 유명했다.
작곡과 편곡은 물론 연주, 레코딩, 믹싱에 이르기까지 높은 수준의 완성도를 추구하며 스튜디오에서 치밀하게 음악을 만들어냈다. 재즈와 블루스를 토대로 팝과 록의 요소를 결합해 스틸리 댄만의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사운드를 완성했다. 이러한 음악적 성취를 토대로 스틸리 댄이 미국 대중음악에 끼친 영향이 매우 컸다고 평가된다. 이들은 2000년 그래미 올해의 앨범상을 받았으며, 2001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1980년 발표된 일곱번째 스튜디오 앨범
《Gaucho》는 스틸리 댄의 일곱 번째 스튜디오 앨범으로 1980년에 발표됐다. 스틸리 댄의 앨범 가운데 특히 높은 인기와 판매를 기록한 작품이다.
대표곡은 단연 ‘Hey Nineteen’이다. 발표 당시 큰 인기를 얻었으며, ‘Time Out of Mind’ 역시 사랑받았다.
스틸리 댄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최고의 세션 연주자들을 녹음에 참여시키는 방식이었다. 《Gaucho》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토토(Toto)의 드러머 제프 포카로(Jeff Porcaro)를 비롯해 기타리스트 스티브 칸(Steve Khan), 색소폰 연주자 마이클 브레커(Michael Brecker), 트럼펫 연주자 랜디 브레커(Randy Brecker), 톰 스코트(Tom Scott), 드러머 스티브 개드(Steve Gadd) 등 일급 연주자들이 앨범 제작에 참여했다.
이름만으로도 당시 스튜디오 음악계의 정상급 연주자들이 한자리에 모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귀에 감기는 멜로디, 빈틈없이 채워진 사운드
스틸리 댄의 음악은 한 번 들으면 편안하게 흘러가는 듯하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결코 단순하지 않다.
유려한 멜로디 아래에는 치밀한 편곡이 깔려 있고, 리듬 파트는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간다. 그 위에 세밀한 레코딩과 믹싱이 더해지면서 각 악기의 소리가 서로 침범하지 않고 또렷하게 살아난다.
《Gaucho》의 사운드는 “귀에 착착 붙는 꽉 찬 사운드와 유려한 멜로디 라인”, 뛰어난 리듬 파트와 이를 받쳐주는 믹싱이 어우러진 음악이다. 한마디로 ‘알차고 찰진 음악’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이다. 《Gaucho》의 매력을 알 수 있다.
겉으로는 부드럽고 세련되지만 그 안에는 재즈의 복잡한 화성과 블루스의 감각, 록의 리듬과 팝의 친숙함이 정교하게 배치돼 있다. 무엇 하나 우연히 놓인 것처럼 들리지 않는 음악이다.
탱고의 한순간과 스틸리 댄의 음악
호프만이 라보카 거리에서 포착한 것은 탱고를 추는 남녀의 한순간이었다. 손을 맞잡고 몸을 기대며 음악에 따라 움직이는 두 사람의 모습은 정지된 조각임에도 움직임을 품고 있다.
《Gaucho》의 음악 역시 그렇다.
스튜디오에서 한 음 한 음 정교하게 만들어진 음악이지만 지나치게 차갑거나 기계적으로 들리지 않는다. 세밀한 연주와 편곡 속에서도 리듬은 살아 움직이고 멜로디는 자연스럽게 흐른다.
어쩌면 그래서 탱고를 추는 남녀의 모습이 《Gaucho》의 표지에 더욱 잘 어울리는지도 모른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하나의 리듬을 만들어가는 탱고처럼, 《Gaucho》 역시 수많은 뛰어난 연주자와 악기, 복잡한 편곡과 스튜디오 기술이 하나의 완성된 음악으로 맞물려 돌아가기 때문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 거리의 소박한 벽화에서 출발해 한 시대를 대표하는 음반의 표지가 된 탱고 커플.
한 장의 음반을 눈으로 먼저 감상하고 음악을 귀로 이어 듣다 보면 미술과 음악이 서로 다른 예술이 아니라 하나의 감각 속에서 이어지고 있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무더운 여름날, 스틸리 댄의 대표곡 ‘Hey Nineteen’을 들으며 잠시 더위를 잊어보자.
글 | 최재우 문화예술기획 제이비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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