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최재우 문화예술기획 제이비엠 대표

한 장의 음반을 감상한다는 것은 음악만을 듣는 일이 아니다. 표지를 바라보고, 손끝으로 재질을 느끼며, 그 안에 담긴 시대와 예술가의 정신까지 함께 만나는 일이다. 독일 그룹 포폴 부(Popol Vuh)가 1972년 발표한 세 번째 앨범 《Hosianna Mantra》는 이처럼 눈과 귀로 동시에 감상해야 온전한 아름다움에 다가설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음반에는 현대음악 작곡가 윤이상의 딸 윤정(Yun Djong)이 참여해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포폴 부의 음악은 독일 남서부 프라이부르크에서 출발한다. 오랜 대학의 전통과 가톨릭 대주교의 역사가 공존하는 이 도시는 중세 이후 학문과 종교, 상업의 중심지로 발전해왔다. 프라이부르크 음악학교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플로리안 프리케(Florian Fricke)는 이곳에서 음악적 토대를 다진 뒤 포폴 부를 결성했다.

 

그룹명 ‘포폴 부’는 프리케가 뮌헨대학교 도서관에서 접한 마야 문명의 경전에서 가져온 이름이다. 서양 기독교 문화의 중심에서 활동한 음악가가 고대 마야의 신화와 정신세계에서 그룹의 이름을 발견했다는 사실은 이들의 음악적 방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포폴 부의 음악은 특정 종교나 문화의 경계에 머물기보다 인간이 오래도록 추구해온 영성, 기도, 초월의 감각을 소리로 탐색한다.

전자음악에서 영적인 어쿠스틱 사운드로

 

포폴 부는 초기 앨범에서 전자악기와 실험적인 음향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그러나 멤버를 재정비하며 제작한 《Hosianna Mantra》에서는 전자음악 중심의 방식에서 벗어나 피아노, 현악기, 오보에와 사람의 목소리를 결합한 보다 유기적이고 영적인 음악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이 시기에 그룹에 참여한 인물이 윤정이다. 당시 아버지 윤이상과 함께 독일에서 공부하던 윤정은 포폴 부의 소프라노 보컬을 맡아 앨범의 신비롭고 장엄한 분위기를 완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의 목소리는 음악 위에 단순히 얹힌 장식이 아니다. 악기와 목소리, 기도와 호흡의 경계를 흐리며 음악 전체를 하나의 종교적 공간으로 변화시킨다.

 

앨범 제목인 ‘Hosianna’는 구원과 찬양을 향한 외침을 떠올리게 하고, ‘Mantra’는 반복되는 소리를 통해 내면의 집중과 초월에 이르는 동양의 수행 방식을 연상시킨다. 서로 다른 종교적 언어가 하나의 제목 안에서 만나는 것처럼 이 음반은 기독교적 성스러움과 동양적 명상, 서양 고전음악과 실험음악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넘나든다.

탄식에서 기도로, 기도에서 찬미로

 

앨범의 첫 곡 ‘Ah!’는 제목처럼 하나의 짧은 탄식에서 시작한다. 언어가 되기 전의 호흡과 감정, 인간이 초월적인 존재를 마주할 때 흘리는 경외의 소리가 음악으로 확장된다. 피아노와 현악기의 잔잔한 흐름은 분명한 서사를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듣는 이를 천천히 깊은 내면으로 이끈다.

 

이어지는 ‘Kyrie’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말로 ‘주님’을 뜻한다. 윤정의 소프라노는 또렷한 문장을 전달하기보다 멀리서 울려오는 기도처럼 들린다. 속삭임과 탄식, 찬송의 중간에 놓인 듯한 음성은 몽환적인 연주와 어우러져 음악을 신비로움에서 신성함의 영역으로 끌어올린다.

 

이 앨범에서 윤정의 목소리는 자신의 존재를 앞세우지 않는다. 오히려 음악 속에 스며들어 피아노와 현악, 오보에와 함께 하나의 울림을 형성한다. 그 결과 청자는 특정한 멜로디를 따라가기보다 소리가 만들어내는 공간 안에 머물게 된다.

 

음반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마지막에는 ‘Maria(Ave Maria)’에 도달한다. 피아노와 현악기, 오보에의 반주 위로 윤정의 맑고 깨끗한 소프라노가 떠오른다. 장엄하면서도 과장되지 않고, 성스럽지만 인간적인 온기를 잃지 않는 목소리다. 앨범은 화려한 절정이 아니라 고요한 찬미와 정화의 순간으로 마무리된다.

음악을 닮은 앨범 표지

독일 그룹 포폴 부가 1972년 발표한 세 번째 앨범 《Hosianna Mantra》커버

《Hosianna Mantra》의 가치는 음악에만 머물지 않는다. 붉은 바탕 위에 자리한 은빛 장식과 성모의 이미지는 음반을 하나의 작은 성화처럼 보이게 한다. 화면 중심의 정교한 장식은 종교적 유물이나 오래된 성물함을 연상시키며, 깊은 붉은색은 숭고함과 희생, 열망과 생명력을 동시에 품는다.

 

앨범 커버는 잉고 트라우어(Ingo Trauer)와 리처드 J. 루도(Richard J. Rudow)가 디자인과 제작에 참여했다. 금속판을 손으로 섬세하게 조각한 뒤 은박으로 압연하고, 절단한 장식과 밑그림을 겹쳐 완성한 수작업 작품이다. 매끈한 산업제품과 달리 손으로 눌러 만들고 다듬은 흔적이 남아 있어 다소 투박하면서도 따뜻한 질감을 전한다.

 

표지 중앙의 여성 형상은 눈을 내리깔고 있다. 밖을 향해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내면의 고요와 기도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주변을 감싸는 은빛 장식은 하나의 제단이자 문처럼 보인다. 이 문을 열면 음악이 시작되고, 청자는 일상의 시간에서 벗어나 명상과 영성의 공간으로 들어간다.

 

이 앨범에서는 표지와 음악이 서로를 설명한다. 음악이 들리지 않는 신비를 소리로 표현한다면, 앨범 커버는 그 소리에 형상과 색을 부여한다. 붉은색과 은빛, 성모의 얼굴과 장식적인 프레임은 피아노와 현악기, 오보에와 소프라노가 만들어내는 장엄하고도 내밀한 정서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종교를 넘어 인간의 내면으로

 

《Hosianna Mantra》를 단순히 종교음악으로 분류하기는 어렵다. 구약성서를 토대로 하고 ‘Kyrie’와 ‘Ave Maria’ 같은 종교적 언어를 사용하지만, 이 음반이 궁극적으로 향하는 곳은 특정 종교의 교리보다 인간의 내면이다.

 

사람은 기쁠 때뿐 아니라 절망과 불안 속에서도 자신보다 큰 존재를 찾는다. 때로는 그것을 신이라 부르고, 자연이나 우주, 사랑 또는 침묵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포폴 부의 음악은 그 이름을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는다. 대신 사람이 자신을 내려놓고 조용히 귀를 기울이는 순간에 찾아오는 경외와 평온을 들려준다.

 

50여 년 전에 만들어진 음반이 지금도 낯설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디지털 기술과 속도의 경쟁에 둘러싸인 오늘날 우리는 끊임없이 정보를 소비하지만 정작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은 잃어가고 있다. 《Hosianna Mantra》는 서두르지 않는다. 큰 소리로 감동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천천히 반복되는 연주와 맑은 목소리로 잠시 멈추고 호흡하도록 이끈다.

 

좋은 음반은 유행하는 소리를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도 인간의 감정과 정신을 다시 움직이게 한다. 《Hosianna Mantra》는 음악과 미술, 서양과 동양, 고대의 종교성과 현대적 실험정신이 만난 보기 드문 작품이다. 손으로 완성된 앨범 커버의 온기와 윤정의 투명한 소프라노, 플로리안 프리케가 만든 명상적인 사운드는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깊고 신비로운 울림을 전한다.

 

이 음반을 감상할 때는 음악부터 서둘러 재생하기보다 먼저 표지를 천천히 바라보기를 권한다. 붉은 바탕과 은빛 장식, 눈을 내리깐 인물의 표정에 잠시 머문 뒤 음악을 들으면, 소리와 이미지가 하나의 작품으로 이어지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다.

 

눈으로 먼저 만나고 귀로 다시 마주하는 음반. 《Hosianna Mantra》는 한 장의 앨범이 얼마나 깊은 예술적 세계를 품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숭고한 기록이다. 

음반 개요

 

음반명:《Hosianna Mantra》

아티스트: 포폴 부(Popol Vuh)

발표 연도: 1972년

음반 성격: 포폴 부의 세 번째 정규 앨범

주요 참여 인물: 플로리안 프리케(Florian Fricke), 윤정(Yun Djong) – 소프라노 보컬

음악적 특징:
피아노, 현악기, 오보에와 소프라노를 중심으로 한 신비롭고 명상적인 사운드
종교적 분위기와 몽환적·교향악적 요소가 결합된 작품

 

주요 수록곡
‘Ah!’
‘Kyrie’
‘Maria(Ave Maria)’ 등

 

앨범 주제: 구약성서를 토대로 신성함과 기도, 찬미의 정서를 표현

그룹명 유래: 마야 문명의 경전 《포폴 부》에서 가져온 이름

앨범 커버 제작:
잉고 트라우어(Ingo Trauer), 리처드 J. 루도(Richard J. Rudow)

최재우 칼럼니스트

jaewooart@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