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의 음반에는 음악만 담겨 있지 않다. 때로는 한 시대의 미술과 철학, 사회적 불안, 인간이 감당해야 했던 고통까지 함께 들어 있다. 영국 웨일스 출신 록 밴드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Manic Street Preachers)가 1994년 발표한 세 번째 앨범 『The Holy Bible』은 그런 음반이다.

이 앨범의 표지를 처음 마주하면 음악을 듣기도 전에 강렬한 시선이 붙잡힌다. 세 방향에서 바라본 거대한 여성의 육체. 이상화된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무게와 살, 피부와 중력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앨범 커버에 사용된 작품은 영국 현대 구상회화를 대표하는 작가 제니 사빌(Jenny Saville)의 대형 3면화 〈Strategy〉다. 이 작품은 속옷 차림의 여성을 세 방향에서 바라본 거대한 회화로, 미디어가 만들어낸 여성미의 기준에 맞서 개별 신체가 지닌 물질성과 존재감을 드러내는 작품으로 해석한다.
제니 사빌, 아름다움보다 ‘몸 그 자체’를 그리다

제니 사빌은 1970년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태어나 글래스고 예술대학 등에서 공부한 작가다. 대형 화면에 여성의 몸을 확대해 그린 작품으로 주목받았으며, 기존 미술사에서 반복되어 온 이상화된 여성 누드와는 전혀 다른 방향을 선택했다. 그녀는 어머니, 어린이, 트랜스젠더, 화상 환자, 성형수술 환자 등 다양한 몸을 작품의 대상으로 삼아왔으며, 여성의 몸을 둘러싼 사회적 시선과 미의 기준을 끊임없이 흔들어 왔다.
사빌의 그림에서 몸은 매끈하지 않다. 무겁고, 접히고, 눌리고, 팽창한다. 피부는 때로 상처처럼 보이고, 살은 풍경처럼 펼쳐진다. 그녀는 여성의 몸을 관람자의 욕망에 맞춘 대상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크게, 너무 가까이, 너무 직접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관객이 몸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을 의식하게 만든다.

사빌은 1994년 뉴욕에서 성형외과 수술을 관찰했고, 이후 작품에서 왜곡된 살과 성형수술의 흔적 등을 적극적으로 다루었다. 사진가 글렌 러치퍼드와 함께 제작한 〈Closed Contact〉 연작에서는 자신의 몸을 투명한 판에 밀착시켜 극단적으로 변형된 신체 이미지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녀에게 몸은 아름다움을 증명하는 대상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장소다.
〈Propped〉, 몸을 바라보는 시선을 뒤집다
제니 사빌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Propped〉(1992) 역시 그런 문제의식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작품 속 여성은 몸을 감추지 않는다. 거대한 허벅지와 무릎, 가슴과 팔이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관람자는 그녀를 내려다보거나 멀리서 감상할 수 없다. 오히려 작품 속 인물이 관객의 시선을 되돌려 주는 듯한 압도적인 존재감을 만들어낸다.
〈Propped〉가 2018년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950만 파운드에 낙찰돼 당시 경매에서 거래된 생존 여성작가 작품 가운데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고 적혀 있다. 가격보다 중요한 것은 이 작품이 던지는 질문일 것이다.
우리는 어떤 몸을 아름답다고 판단하는가.
그리고 그 기준은 과연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는가.
『The Holy Bible』, 아름답지 않은 현실을 노래하다
이제 그림에서 음악으로 넘어가 보자.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는 1986년 결성된 웨일스 록 밴드다. 초기에는 펑크와 글램록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지만 점차 보다 어둡고 정치적이며 문학적인 사운드로 나아갔다. 제공된 원고는 이들의 초기 음악이 문화, 소외, 지루함, 절망 등의 주제를 다루며 충성도 높은 팬층을 형성했다고 설명한다. (59)이한장의음반-제니사빌-매닉스트리트프리처스
1994년에 발표된 『The Holy Bible』은 이들의 세 번째 정규 앨범이다.
특히 이 음반은 기타리스트이자 주요 작사가였던 리치 에드워즈(Richey Edwards)가 마지막으로 참여한 정규앨범이라는 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는 앨범 발표 이후 실종됐고, 이후 법적으로 사망 처리됐다.
『The Holy Bible』의 세계는 무겁다.
거식증, 자기파괴, 전쟁, 폭력, 권력, 소비사회, 소외, 정신적 고통 같은 주제가 반복해서 등장한다. 음악 역시 화려하게 포장되지 않는다. 날카로운 기타와 긴장된 리듬, 불편할 정도로 직접적인 가사가 서로 부딪친다.
그래서 이 앨범에 제니 사빌의 〈Strategy〉가 사용된 것은 단순한 시각적 장식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회화의 살점과 록 음악의 기타가 만나는 순간
제니 사빌의 회화와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의 음악에는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인간을 미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빌은 붓과 물감으로 육체를 확대한다.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는 기타와 언어를 통해 인간 내면의 불안과 사회의 모순을 확대한다.
이 둘의 관계를 특히 인상적으로 연결한다. 사빌이 거침없는 붓질로 인간 육체의 취약성을 캔버스 위에 드러낸다면, 리치 에드워즈는 거식증과 정신적 고통, 현대사회의 폭력을 가사로 해부한다고 설명한다. 또한 사빌의 겹겹이 쌓인 유화의 질감과 앨범의 거칠게 축적된 기타 사운드를 각각 ‘시각적 질감’과 ‘청각적 질감’으로 대응시킨다.
이것이 『The Holy Bible』의 커버와 음악이 놀라울 만큼 잘 어울리는 이유다.
〈Strategy〉의 육체는 편안하지 않다.
『The Holy Bible』의 음악 역시 편안하지 않다.
그러나 바로 그 불편함 때문에 우리는 시선을 돌리기 어렵다.
‘Holy Bible’이라는 역설적인 제목
앨범 제목 『The Holy Bible』 역시 흥미롭다.
‘성서’라는 말에는 절대적 진리와 구원의 이미지가 따라붙는다. 그러나 이 음반에서 펼쳐지는 세계는 구원보다는 인간의 불완전함과 고통에 더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제목은 오히려 역설적으로 들린다.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가 보여주는 것은 인간이 만든 이상적인 세계가 아니다.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싶은 현실의 모습이다.
제니 사빌의 그림도 마찬가지다.
몸을 이상화하는 대신 몸의 무게와 상처, 살의 물질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결국 그림과 음악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으며, 그 불완전함 역시 인간 존재의 일부라는 것.
「She Is Suffering」과 「Revol」
이번 기고에서 함께 소개한 곡은 「She Is Suffering」과 「Revol」이다.
「She Is Suffering」은 제목부터 고통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긴장된 기타와 음울한 분위기는 『The Holy Bible』 전체를 지배하는 불안과 절망의 정서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Revol」은 보다 공격적이고 빠르다. 반복적인 기타와 날카로운 리듬 속에서 정치와 권력, 역사에 대한 밴드 특유의 비판적 태도가 드러난다.
이 곡들을 들으면서 앨범 표지의 〈Strategy〉를 다시 바라보면 흥미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림 속 몸이 더 이상 정지된 몸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기타의 소음 속에서 몸은 흔들리고, 무게를 갖고, 살아 움직인다.
아름답지 않기에 오래 남는 한 장의 음반
음반 커버는 음악을 포장하는 장식일 수도 있다. 그러나 뛰어난 앨범에서는 표지와 음악이 서로를 해석한다. 『The Holy Bible』이 바로 그런 경우다.
제니 사빌의 거대한 육체는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의 음악을 눈으로 보여준다. 반대로 밴드의 날카로운 음악은 사빌의 그림을 귀로 듣게 한다. 둘 사이에는 ‘아름다움’이라는 안전한 장치가 없다. 대신 살과 상처, 불안과 소외, 욕망과 자기파괴라는 인간의 불편한 현실이 존재한다.
그래서 이 음반은 듣기 편한 음반도 아니고, 표지만 보고 지나칠 수 있는 음반도 아니다. 하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1994년에 발표된 이후에도 『The Holy Bible』은 여전히 강렬하게 남아 있다.
한쪽에서는 제니 사빌의 붓이 인간의 몸을 해부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의 기타와 언어가 인간의 내면과 시대를 해부한다. 한 장의 음반 위에서 회화와 록 음악이 만나, 인간이라는 존재의 가장 불편하면서도 솔직한 초상을 완성한다.
음반 개요
Artist: Manic Street Preachers
Album: 『The Holy Bible』
Released: 1994
Cover Art: Jenny Saville, 〈Strategy〉
추천곡: 「She Is Suffering」, 「Revol」
글 | 최재우 문화예술기획 제이비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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