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의 음반을 바라보는 일은 때로 음악을 듣기 전부터 시작된다. 표지에 담긴 색과 선, 그림의 질감은 아직 재생되지 않은 음악을 먼저 상상하게 한다.


이번 ‘눈으로 즐기며 듣는 이 한장의 음반’ 61회는 미국 목판화 작가 닉 브로블레프스키(Nick Wroblewski)의 작품과 캐나다 포크록 밴드 그레이트 레이크 스위머스(Great Lake Swimmers)의 2012년 앨범 ‘New Wild Everywhere’를 함께 바라본다.

닉 브로블레프스키는 미국 중서부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목판화 작가다.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예술가 공동체 속에서 성장했고, 미술 수업과 미술 고등학교 과정을 거쳐 버몬트주 베닝턴 칼리지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조각과 회화, 작곡 등 여러 예술 장르를 경험한 그는 결국 판화에서 자신만의 언어를 찾아갔다.
그의 목판화는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다. 나무를 깎는 조각의 행위와 색을 쌓아가는 회화적 감각, 화면 전체를 조직하는 구성력이 하나로 결합된 작업이다. 특히 대형 다색 목판화를 주로 제작하며 자연에 대한 경외와 수공예의 진정성을 작품 속에 담아왔다. 현재는 위스콘신주 드리프트리스 지역의 작업실을 중심으로 작업하고 있다.
이번에 함께 소개되는 작품들을 보면 그의 세계가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두 마리의 붉은 새가 날개를 크게 펼친 작품에서는 정지된 화면 속에서도 강한 운동감이 느껴진다. 서로 교차하며 날아오르는 새와 나뭇가지, 열매, 달이 어우러지면서 자연이 지닌 긴장과 생명력이 화면 전체에 흐른다.
낙엽 사이를 날아오르는 새를 담은 작품은 또 다른 계절감을 보여준다. 검은 날개와 노란 몸, 주황빛 잎이 강렬한 대비를 이루고 있으며 한 순간을 포착한 듯한 역동성이 살아 있다.
숲과 호숫가 풍경을 담은 작품에서는 분위기가 달라진다. 빽빽한 초목과 물, 멀리 이어지는 숲이 층층이 펼쳐지며 조용하고 깊은 자연의 시간을 보여준다. 판화임에도 회화처럼 다양한 녹색의 층이 만들어지고, 자연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유리병에 꽂힌 한 송이 장미를 그린 작품에서는 거대한 자연 대신 일상의 작은 풍경이 중심이 된다. 장미와 풀, 투명한 병이라는 소박한 소재가 검은 선과 절제된 색채를 통해 또렷한 존재감을 얻는다.
닉 브로블레프스키가 사용하는 제작 방식 역시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중요한 요소다. 그는 커다란 나무 블록을 직접 조각하고 한 번에 한 가지 색을 인쇄한다. 인쇄가 진행될수록 필요한 부분을 다시 깎아내는 전통적 방식을 사용하기 때문에 작업이 끝나면 처음의 판 이미지가 그대로 남지 않는다.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는 과정 자체가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의 축적이 되는 셈이다.
그래서 그의 화면에는 유난히 ‘살아 움직이는 자연’이 많다.

새는 날고, 가지는 흔들리며, 물은 흐르고, 잎은 떨어진다. 그는 손으로 직접 조각한 예술과 풍경 속의 움직임, 모든 생명체가 공유하는 역동적인 에너지에 관심을 두고 작업해왔다.
그의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선 하나에도 손의 시간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디지털 이미지에서는 매끄럽게 지워질 수 있는 흔적들이 목판화에서는 오히려 작품의 개성이 된다. 거칠게 남겨진 칼자국과 반복되는 선은 새의 깃털이 되고, 나무의 껍질이 되고, 바람의 방향이 된다.
한편 이번 음반의 주인공 그레이트 레이크 스위머스는 캐나다 온타리오주 웨인플릿 출신의 포크록 밴드로 토론토를 기반으로 활동해왔다. 이번에 소개하는 ‘New Wild Everywhere’는 이들의 다섯 번째 앨범이다.

그레이트 레이크 스위머스의 음악은 화려하게 앞서 나가기보다 조용히 곁으로 다가오는 음악에 가깝다. 차분한 반주와 부드럽게 이어지는 보컬은 깊은 숲과 호수, 바람이 지나가는 넓은 들판을 연상시킨다.
그래서 닉 브로블레프스키의 목판화와 이들의 음악은 낯설지 않게 만난다.
한쪽은 칼로 나무를 깎아 자연을 새기고, 다른 한쪽은 기타와 목소리로 자연의 정서를 노래한다. 표현 방법은 다르지만 두 세계가 바라보는 방향에는 공통점이 있다. 거대한 사건보다는 우리 주변에 오래 존재해온 나무와 새, 물과 계절,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감정에 시선을 둔다.
특히 ‘New Wild Everywhere’라는 앨범 제목은 닉 브로블레프스키의 작품세계를 떠올리게 한다.
그의 판화 속 자연은 먼 곳에만 존재하는 야생이 아니다. 숲과 호수에도 있고, 가지 위의 작은 새에게도 있으며, 유리병 속 한 송이 장미에도 있다. 우리가 무심히 지나쳤던 일상 곳곳에 여전히 살아 있는 자연의 생명력을 그의 목판화는 다시 발견하게 한다.
그레이트 레이크 스위머스의 음악도 비슷하다. 큰 소리를 내지 않으면서도 오래 귀에 머문다. 조용히 흐르는 기타와 보컬은 하나의 풍경처럼 펼쳐지고, 듣는 사람은 그 안에서 자신의 기억과 시간을 자연스럽게 꺼내보게 된다.
닉 브로블레프스키의 작품은 갤러리와 미술 전시뿐 아니라 상업 디자인과 일러스트레이션, 책 표지 등에서도 만날 수 있다. 이번 앨범을 위해서도 그의 작품이 직접 의뢰돼 사용됐다.
앨범 재킷은 음악을 담는 포장에 그치지 않는다.
Great Lake Swimmers - Think That You Might Be Wrong 파리 라이브 유튜브 링크
좋은 앨범 커버는 음악이 지닌 정서를 눈으로 먼저 들려준다. 음악을 듣고 난 뒤 다시 표지를 바라보면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의미가 새롭게 나타나기도 한다.
닉 브로블레프스키의 목판화를 바라보다 그레이트 레이크 스위머스의 음악을 듣고, 다시 그림으로 돌아오는 순간이 그렇다.
칼끝으로 새겨진 나무의 결, 날개를 활짝 편 새, 흘러가는 물과 계절의 빛이 음악 속 기타와 목소리를 만나 하나의 풍경이 된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림과 음악의 경계는 사라진다.
그것이 한 장의 음반이 우리에게 건네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앨범 개요
앨범명: New Wild Everywhere
아티스트: Great Lake Swimmers
발매연도: 2012년
장르: 포크록(Folk Rock), 인디 포크
구분: 정규 5집
출신: 캐나다 온타리오주 웨인플릿
활동 기반: 캐나다 토론토
앨범 커버 아트: 닉 브로블레프스키(Nick Wroblewski)
커버 아트 기법: 목판화(Woodcut Print)
수록곡 소개: ‘Think That You Might Be Wrong’ 등
특징: 차분한 반주와 섬세한 보컬, 자연과 내면의 정서를 담아낸 서정적인 사운드가 중심을 이루는 앨범이다. 이번 앨범의 커버는 닉 브로블레프스키가 의뢰를 받아 직접 작업한 목판화 작품으로 구성됐다.
글 ㅣ최재우 문화예술기획 제이비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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