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을 수집하다 보면 음악을 듣기 위해 선택했던 한 장의 앨범이 어느 날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순간이 있다. 처음에는 연주자와 음악에 이끌려 손에 넣었던 음반이지만, 시간이 지나 앨범 커버를 만든 작가의 이력과 작품 세계를 알게 되면서 비로소 표지가 또 하나의 예술작품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번에 소개하는 한 장의 음반이 바로 그런 경우다. 브라질의 대표적인 퓨전재즈 그룹 아지무스(Azymuth)가 1982년에 발표한 앨범 『Telecommunication』이다. 음악 자체도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이 음반을 다시 들여다보게 만드는 또 하나의 주인공은 앨범 커버를 담당한 사진작가이자 비디오 아티스트 짐 와이즈만(Jim Wiseman)이다.
백남준과 함께 비디오아트의 가능성을 탐구한 짐 와이즈만
짐 와이즈만은 하와이를 기반으로 활동하며 태평양 섬 문화의 디지털 사진과 민속학적 비디오 기록에 오랫동안 전념해 온 사진작가이자 비디오 아티스트다. 약 50년에 걸쳐 전문 비디오그래퍼와 사진작가로 활동해 왔으며, 그의 예술적 출발점은 196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1967년 말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학교 재학 당시 본격적으로 사진 작업을 시작했고, 이듬해 여름 콜로라도주 아스펜의 ‘센터 오브 더 아이(Center of the Eye)’ 사진 워크숍에 참가했다. 이곳에서 세계적인 사진작가들과 교류하면서 컬러 인화와 적외선 필름을 이용한 가색 촬영에 관심을 기울였고, 무작위 이중노출 기법도 적극적으로 실험했다.
우연과 중첩을 활용해 만들어낸 강렬한 이미지는 훗날 와이즈만이 구축하게 되는 다층적인 비디오 작업의 전조가 됐다.
그의 예술세계에서 특히 주목할 대목은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과의 만남이다.
알타몬트 페스티벌에 사진작가로 참여한 뒤 와이즈만은 로스앤젤레스의 캘리포니아예술대학(CalArts)에 진학했고, 그곳에서 ‘비디오아트의 아버지’로 불리는 백남준을 만났다. 그는 백남준, 아베 슈야와 약 2년간 함께 작업했으며, 백남준과 아베가 개발한 비디오 신시사이저를 직접 제작하기도 했다.
이 장치는 여러 겹의 비디오 이미지를 실시간으로 조작하고 추상화하며 색채를 변화시킬 수 있었던 혁신적인 장치였다. 영상 이미지를 마치 악기를 연주하듯 다룰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초기 비디오아트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도구이기도 했다.
와이즈만은 1972년 캘리포니아예술대학에서 비디오아트와 비디오 시스템 디자인으로 미술학사(BFA) 학위를 받았다. 이후 시카고예술대학(School of the Art Institute of Chicago)에 진학해 댄 샌딘과 함께 작업하며 이미지 프로세서를 제작했고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의 작품은 뉴욕 현대미술관, 파리 현대미술관, 롱비치 미술관, 미니애폴리스 워커아트센터 등에서 소개됐으며 프랑스 아를, 독일 쾰른,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여러 페스티벌에도 참가했다. 수차례 개인전과 라이브 퍼포먼스를 선보였고, 시카고 PBS에서 방송된 30분 프로그램 ‘TV Song’에도 출연했다.
브라질의 자연을 품은 비디오아트
『Telecommunication』의 앨범 커버에 사용된 이미지 역시 와이즈만의 비디오아트 작품이다.
백남준과 함께 작업하며 축적한 비디오 이미지 합성과 변형의 경험이 앨범 표지에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표지를 자세히 바라보면 아지무스의 고향인 브라질을 연상시키는 요소들이 숨어 있다. 브라질의 해변을 떠올리게 하는 풍경과 열대 나무, 그리고 앵무새를 연상시키는 두 마리의 새가 화면 속에 자리한다.
단순한 풍경사진이 아니라 전자 영상의 변형과 중첩을 통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흐려 놓은 이미지다. 음악을 듣기 전부터 청자는 이미 브라질의 열기와 색채, 그리고 1980년대 전자문화가 뒤섞인 독특한 세계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자료에서도 이 앨범 커버를 “짐 와이즈만의 비디오아트 작품”으로 설명하며 브라질의 해변과 열대 나무, 새의 이미지를 주요 요소로 짚고 있다.
앨범 커버가 단순히 음악을 포장하는 장식물이 아니라 그 시대의 시각예술과 음악이 만나는 접점임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브라질이 자랑하는 장수 퓨전재즈 트리오, 아지무스
이제 음반의 또 다른 주인공인 아지무스로 시선을 옮겨보자.

아지무스는 브라질 출신 연주자 세 명이 1972년 결성한 퓨전재즈 트리오다. 키보드 호세 로베르토 베르트라미(Jose Roberto Bertrami), 베이스 알렉스 말헤이로스(Alex Malheiros), 드럼 이반 콘티(Ivan Conti)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1977년 스위스 몽트뢰 재즈페스티벌에 참가하면서 국제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며, 초기 앨범들이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브라질을 대표하는 퓨전재즈 그룹으로 자리 잡았다. 제공 자료는 아지무스를 약 50년에 걸쳐 꾸준히 활동해 온 장수 그룹으로 평가하고 있다.
아지무스 음악의 매력은 복잡한 연주를 과시하는 데만 있지 않다.
세 멤버의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한 번 들으면 기억할 수 있을 만큼 명료한 멜로디를 만들고, 간결하면서도 강한 임팩트를 주는 리듬과 탄력 있는 사운드를 구축한다. 재즈의 즉흥성과 브라질 음악 특유의 리듬 감각, 그리고 당시 새롭게 확장되던 전자악기의 음색이 자연스럽게 결합돼 있다.
이번에 소개하는 『Telecommunication』은 1982년 발표된 아지무스의 초기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특히 큰 인기와 평가를 받은 앨범이다.
앨범의 음악과 와이즈만의 표지를 함께 바라보면 묘한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와이즈만이 여러 영상 이미지를 겹치고 변형해 새로운 시각적 리듬을 만들어냈다면, 아지무스는 키보드와 베이스, 드럼을 중심으로 재즈·펑크·브라질 리듬을 겹쳐 독자적인 음악적 풍경을 만든다. 한쪽은 이미지의 레이어이고, 다른 한쪽은 소리의 레이어다.
서로 다른 예술 장르가 한 장의 LP에서 절묘하게 만난 셈이다.
‘Last Summer In Rio’, 리오의 마지막 여름을 상상하다
이 음반과 함께 들어볼 곡으로는 ‘Last Summer In Rio’를 권하고 싶다.
아지무스의 곡들 가운데 특히 많은 사랑을 받은 연주곡으로, 제목에서부터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한 계절을 떠올리게 한다. 연주는 서두르지 않는다. 부드럽고 여유로운 흐름 속에서 리듬이 몸을 움직이고, 멜로디는 뜨거운 여름 오후의 공기처럼 천천히 번져간다.
이 곡은 “릴렉스하게 전개되는 연주”로 음악을 들으면서 제목처럼 ‘리오에서의 마지막 여름’을 상상해보길 권한다.
한 장의 음반을 듣는 즐거움은 때로 음악을 넘어선다.
『Telecommunication』을 턴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짐 와이즈만의 커버를 바라보며 ‘Last Summer In Rio’를 듣고 있으면 브라질의 해변과 열대의 빛, 1980년대의 전자영상, 그리고 백남준으로 이어지는 비디오아트의 역사까지 한꺼번에 겹쳐진다.
음악은 귀로 듣지만 음반은 눈으로도 듣는다.
우리가 오래된 LP 한 장을 다시 꺼내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한 사람의 예술세계가 표지 안에서 되살아나고, 그 이미지를 알고 난 뒤 듣는 음악은 이전과는 또 다른 색채를 갖게 된다.
짐 와이즈만의 비디오아트와 아지무스의 브라질 퓨전재즈가 만난 1982년 『Telecommunication』.
오늘은 이 한 장의 음반과 함께 잠시 리오의 마지막 여름으로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좋겠다.
글 | 최재우 문화예술기획 제이비엠 대표
앨범 개요
아티스트: Azymuth(아지무스)
앨범: Telecommunication
발표: 1982년
장르: 퓨전재즈
주요 멤버: Jose Roberto Bertrami(키보드), Alex Malheiros(베이스), Ivan Conti(드럼)
앨범 커버 작품: Jim Wiseman 비디오아트
추천 감상곡: Last Summer In 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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