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극장가에서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The Odyssey)』가 관객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영화는 호메로스의 고전 서사시 『오디세이아』를 바탕으로, 트로이 전쟁을 마친 영웅 오디세우스가 수많은 신과 괴물의 시련을 거쳐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기까지의 장대한 여정을 스크린에 펼쳐 놓는다.
국내에서는 2026년 8월 5일 개봉했으며, 크리스토퍼 놀란이 각본과 연출을 맡고 맷 데이먼이 오디세우스 역을 맡았다. 톰 홀랜드, 앤 해서웨이, 로버트 패틴슨, 루피타 뇽, 젠데이아, 샤를리즈 테론 등 화려한 배우진도 함께한다. 현재 국내 극장에서도 상영되고 있다.
특히 영화 『오디세이』는 고대 신화를 현대적인 스펙터클로 재현하면서 장편영화 최초로 전편을 IMAX 필름 카메라로 촬영한 작품으로 소개되고 있다. 놀란 감독과 주요 배우들은 국내 개봉에 맞춰 서울 프리미어에도 참석해 한국 관객들과 만났다.
하지만 오늘 소개하려는 작품은 영화가 아니다.
거대한 스크린에 오디세우스의 항해가 펼쳐지기 훨씬 전, 이 고대 신화를 음악으로 다시 항해하기 시작한 작품이 있었다.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싱어송라이터이자 작곡가 호르헤 리베라 에란스(Jorge Rivera-Herrans)가 만든 『EPIC: The Musical』이다. 2022년 처음 공개된 이 작품은 『오디세이아』를 현대적인 송스루(song-through) 뮤지컬로 재해석한 대형 콘셉트 앨범 프로젝트다.
영화 『오디세이』가 신화를 압도적인 영상으로 보여준다면, 『EPIC』은 같은 신화를 목소리와 리듬, 선율과 감정으로 들려준다. 두 작품을 함께 접한다면 수천 년 된 하나의 이야기가 21세기 영화와 음악이라는 서로 다른 예술 언어를 통해 어떻게 다시 태어나는지를 비교해 보는 즐거움도 크다.
앨범 개요
작품명 : EPIC: The Musical
기획·작곡 : Jorge Rivera-Herrans
원작 : 호메로스 『오디세이아』
형식 : 송스루 뮤지컬 / 콘셉트 앨범
최초 공개 : 2022년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
전체 구성 : 총 40곡
구성 방식 : 9개의 Saga
제1막 : 5개 Saga
제2막 : 4개 Saga
주요 내용 : 트로이 전쟁 이후 오디세우스가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여정
국내 정식 앨범 발매 : 2025년 9월 11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LP·CD 등 발매
『EPIC』은 총 40곡으로 이루어진 송스루 뮤지컬이다. 이야기를 9개의 사가(Saga)로 나누고, 제1막에 5개, 제2막에 4개의 사가를 배치했다. 각각의 사가는 오디세우스의 여정에서 중요한 사건 하나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초기에는 토니상 후보 경력이 있는 프로듀서 블레어 러셀(Blair Russell)이 참여했으나 두 번째 앨범 이후 호르헤 리베라 에란스가 독자적인 노선을 걸으면서 제작과 프로듀싱까지 맡았다. 앨범들은 공개 직후 아이튠즈 사운드트랙 차트 1위에 오르는 등 해외에서 상당한 호응을 얻었고, 스포티파이에서도 빠르게 높은 재생수를 기록했다.
영화 『오디세이』와 『EPIC』, 같은 신화에서 출발한 두 번의 항해
현재 상영 중인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디세이』와 『EPIC: The Musical』은 모두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 출발한다.
『오디세이아』의 핵심은 단순하다.
전쟁을 끝낸 한 남자가 집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 귀환에는 무려 10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 키클롭스와 맞서고, 마녀 키르케를 만나며, 죽음의 세계를 통과하고, 포세이돈의 분노를 견디며 끝없이 바다를 떠돈다. 이번 영화에서 맷 데이먼이 연기하는 오디세우스 역시 바로 그 인물이다.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지만 전쟁이 끝난 순간 새로운 전쟁과도 같은 귀향길에 들어서는 인간이다. 영화는 이를 대규모 로케이션과 IMAX 이미지로 구현한 신화적 액션 대서사시로 제작됐다.
반면 『EPIC』은 오디세우스의 내면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간다.
음악이라는 형식은 한 인물이 내리는 선택과 후회, 두려움과 분노를 직접 목소리에 실을 수 있다. 『EPIC』을 듣다 보면 신화 속 영웅의 이야기를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보다 오디세우스의 머릿속에 들어가 그의 갈등을 함께 경험하고 있다는 느낌에 가까워진다.
그래서 영화를 본 뒤 『EPIC』을 듣거나, 반대로 『EPIC』을 먼저 들은 뒤 영화를 본다면 같은 신화가 전혀 다르게 다가올 수 있다.
제1막 ― 전쟁은 끝났지만 진짜 시련은 이제 시작된다

첫 번째 The Troy Saga(#1~#5)는 트로이 전쟁이 끝난 지점에서 시작한다.
오디세우스는 오랜 전쟁의 종전을 이끌고 마침내 고향을 향한다. 그러나 트로이에서 이타카까지의 길은 평범한 귀향길이 아니다.

두 번째 The Cyclops Saga(#6~#9)에서는 오디세우스와 그의 일행이 키클롭스 폴리페모스가 사는 섬에 상륙한다.『오디세이아』에서도 가장 유명한 장면 가운데 하나다. 압도적인 힘을 가진 괴물과 인간의 지략이 맞서는 순간이며, 동시에 오디세우스의 영리함과 오만함이 함께 드러나는 사건이다.

세 번째 The Ocean Saga(#10~#13)에서 오디세우스의 운명은 더욱 거칠어진다. 그는 해신 포세이돈의 진노를 사고 수많은 부하를 잃은 채 바다를 표류한다. 여기서부터 바다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인간을 시험하는 운명 자체가 된다. 영화 『오디세이』가 거대한 바다와 인간의 작은 존재를 스크린의 규모로 체험시키는 작품이라면, 『EPIC』은 그 바다에서 느끼는 공포와 절망을 음악의 긴장으로 전달한다.

네 번째 The Circe Saga(#14~#17)에서는 마법사 여신 키르케가 나타난다. 키르케는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을 돼지로 변신시키고 오디세우스까지 유혹하려 한다. 하지만 오디세우스가 이를 물리치자 그에게 깊은 인상을 받고, 명계에 있는 예언자를 찾아 고향으로 돌아갈 방법을 알아내도록 도와준다.

다섯 번째 The Underworld Saga(#18~#20)에서 오디세우스는 살아 있는 인간으로서 명계로 내려간다. 그곳에서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를 만나 자신의 운명에 관한 예언을 듣는다.
제1막은 결국 한 가지 사실을 보여준다.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바다뿐 아니라 자신의 두려움과 욕망까지 통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2막 ― 영웅인가, 살아남기 위해 선택하는 인간인가

제2막의 첫 번째 장인 The Thunder Saga(#21~#25)에서 이야기는 한층 어두워진다.
오디세우스는 바다 괴물 스킬라의 영역을 통과하기 위해 선원 여섯 명을 희생시킨다. 이에 남은 선원들의 신뢰를 잃고 쿠데타를 당한다. 굶주림과 절망에 빠진 선원들은 결국 태양신 헬리오스의 소를 잡아먹고, 제우스의 벌을 받아 모두 죽는다. 살아남은 사람은 오디세우스 한 명뿐이다.
여기에서 『EPIC』은 영웅담의 익숙한 틀을 흔든다.
모두를 구할 수 없는 순간에 영웅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목표를 위해 동료의 희생을 선택했다면 그는 여전히 영웅일까.
아니면 살아남기 위해 타인을 희생시킨 또 한 명의 인간일 뿐일까.
『오디세이아』가 오랜 세월 살아남은 이유 역시 이런 질문이 시대마다 새로운 의미를 얻기 때문일 것이다.
아테나, 텔레마코스 그리고 귀환

The Wisdom Saga(#26~#30)에서는 시간이 흐른 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는 어느덧 성장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는다.
오디세우스는 여신 칼립소의 고립된 섬에 붙잡혀 있고, 이를 알아낸 아테나는 제우스를 찾아가 그를 풀어 줄 것을 간청한다.

이어지는 The Vengeance Saga(#31~#35)에서 오디세우스는 마침내 칼립소의 섬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마지막 장애물이 남았다. 오랫동안 자신의 귀향을 가로막았던 포세이돈이다. 오디세우스는 포세이돈과 마지막 복수전을 벌인 뒤 마침내 이타카로 돌아간다.

그리고 대서사의 마지막인 The Ithaca Saga(#36~#40). 오디세우스는 마침내 20년 만에 아들 그리고 아내와 재회한다.
결국 모든 오디세이는 ‘집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다
『EPIC: The Musical』과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오디세이』를 함께 바라보면 흥미로운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겉으로는 신과 괴물, 전쟁과 폭풍이 등장하는 거대한 모험담이다. 그러나 이야기의 중심에는 의외로 평범한 한 문장이 놓여 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오디세우스가 그토록 원했던 것은 또 하나의 승리도, 더 큰 권력도 아니었다. 아내 페넬로페가 기다리고 있고 아들 텔레마코스가 살아가는 고향 이타카였다. 그렇기에 『오디세이아』의 진정한 주제는 모험보다 귀환에 가깝다.
20년의 세월 동안 오디세우스는 수많은 사람을 잃고 자신도 변한다. 그가 돌아가는 이타카 역시 떠날 때의 이타카와 똑같을 수 없다. 그럼에도 그는 돌아간다. 인간에게는 결국 돌아가야 할 곳이 있기 때문이다.
2,800년 전 신화가 다시 유행하는 이유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가 만들어진 지 수천 년이 지났다. 그런데 2020년대에 이 고대 이야기가 한쪽에서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초대형 영화로, 다른 한쪽에서는 젊은 싱어송라이터가 만든 인터넷 기반 뮤지컬 프로젝트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놀란은 신화를 스크린의 이미지로 되살렸다.
호르헤 리베라 에란스는 신화를 음악과 목소리로 되살렸다.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결국 두 사람이 바라보는 대상은 같다. 수없이 실패하면서도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인간이다. 어쩌면 오늘의 우리가 『오디세이아』에 다시 매료되는 까닭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우리 역시 삶이라는 바다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풍랑을 만나고, 잘못된 선택을 하고, 소중한 것을 잃으며 살아간다. 때로는 키클롭스보다 무서운 현실을 만나고, 키르케의 유혹과 같은 선택 앞에 서고, 포세이돈의 바다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시간을 지나기도 한다.
그럼에도 각자의 이타카를 향해 나아간다.
그래서 『EPIC: The Musical』을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고대 그리스 신화를 음악으로 감상하는 것만은 아니다. 한 인간이 수없이 무너지고 다시 일어나며 끝내 돌아가야 할 곳을 향해 가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현재 극장에서 상영되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디세이』를 본 관객이라면, 이번에는 화면을 잠시 내려놓고 음악으로 그 바다를 다시 건너보는 것도 좋겠다.
영화의 오디세우스와 음악의 오디세우스.
두 번의 항해가 끝나는 곳은 결국 하나다.
이타카,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기다리는 집이다.
『EPIC: The Musical』 제1막 The Troy Saga를 감상해 보자
글 ㅣ 최재우 문화예술기획 제이비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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