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보고 손끝으로 느끼는 페이퍼아트, 음악과 문화의 기억을 품다

 

음반은 귀로 듣는 예술이다. 그러나 어떤 음반은 음악이 시작되기 전, 손에 드는 순간부터 이미 하나의 작품이 된다. 표지를 바라보고, 종이의 질감을 손끝으로 느끼고, 커버를 펼쳐 안쪽을 들여다보는 과정 자체가 음악 감상의 일부가 된다.

그룹 쿠바소닉스 앨범 앞면

이번에 소개할 한 장의 음반은 우크라이나 민속음악 그룹 쿠바소닉스(Kubasonics)가 2022년 발표한 앨범 『Kubasongs』다. 

그룹 쿠바소닉스 앨범 뒷면

이 음반은 음악도 인상적이지만 무엇보다 페이퍼아트(Paper Art)를 이용해 만든 정교한 앨범 커버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 작품은 이전의 페이퍼아트 앨범 커버보다 한층 더 정교하고 치밀하게 설계됐으며, 그룹과 사전 기획을 거쳐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완성한 작품이다.

 

한 장 한 장 종이를 쌓아 만든 또 하나의 음악

 

앨범 커버를 기획하고 제작한 이는 캐나다 출신 디자이너 주드 하인스(Jud Haynes)다. 프리랜서 디자이너이자 아티스트로 활동해 온 그는 쿠바소닉스의 요청을 받아 그룹과 함께 전체 구도와 설계를 잡았다.

페이퍼아트 앨범 커버 작품 완성된 결과물

특히 주목할 점은 단순히 디자이너 한 사람이 완성한 상업용 패키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룹 멤버들도 종이를 한 장 한 장 자르고 조립하는 수작업 과정에 참여했다. 얇게 잘라낸 종이 조각들이 여러 층으로 포개지면서 인물과 동물, 식물, 악기와 장식적 문양이 모습을 드러낸다.

 

앨범 앞·뒷면을 보면 전면에는 별 모양을 중심으로 민속적 이미지와 장식 요소가 방사형으로 펼쳐지고, 뒷면에는 수록곡 목록을 중심으로 닭과 동물 형상의 캐릭터들이 배치돼 있다. 근접 사진에서는 종이가 단순히 평면 인쇄된 것이 아니라 여러 겹으로 잘리고 포개져 입체적인 깊이를 만들어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게이트폴드 앨범 외부 Full Cover

게이트폴드 커버 전체를 펼치면 이러한 이미지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 화면처럼 연결된다. 자료에서도 종이의 결과 촉감, 은은하게 배어 있는 색감이 작품 완성에 중요한 요소가 됐다.

 

게이트포드 앨범 내부 Full Cover

앨범을 펼쳤을 때의 내부 구성도 흥미롭다. 게이트폴드 내부 전체를 보면, 중앙에는 악기를 연주하는 동물 캐릭터들이 무대처럼 배치되고 좌우에는 곡 소개와 텍스트가 자리한다. 음악가와 악기를 직접 묘사하면서도 동화책을 펼쳐놓은 듯한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이 음반은 단순히 ‘보는 음반’을 넘어 ‘만지는 음반’이라 할 만하다.

근접 세부 확대 사진

페이퍼아트 특유의 가장 큰 매력은 손끝으로 느끼는 입체감이다. 매끈한 인쇄물에서는 얻기 어려운 종이의 두께, 잘린 단면, 층층이 겹쳐진 구조가 촉각을 자극한다. 눈으로 감상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손끝의 촉감까지 더해지는 새로운 경험이다. 여기에 동심을 불러일으키는 동화적 표현이 더해지면서 『Kubasongs』의 앨범 커버는 음악을 담는 포장지를 넘어 하나의 독립된 미술작품으로 다가온다.

뉴펀들랜드에서 만난 우크라이나의 리듬

 

이 아름다운 앨범 커버의 주인공 쿠바소닉스는 캐나다 뉴펀들랜드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우크라이나계 민속음악 그룹이다. 전통 악기와 유머러스한 무대, 빠른 속도의 스피드 포크를 결합한 음악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의 음악은 매우 빠른 속도를 뜻하는 ‘마일 어 미닛(mile-a-minute)’ 스피드 포크다. 그러나 단지 빠르고 흥겨운 음악만을 들려주는 밴드는 아니다. 오래된 선율과 이야기를 통해 우크라이나 문화의 장면을 현재의 무대 위에 다시 펼쳐 보인다.

 

쿠바소닉스의 음악이 특별한 이유는 서로 다른 두 지역의 음악적 전통이 만난다는 데 있다. 한쪽에는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동유럽 민속음악의 강렬한 리듬과 선율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캐나다 뉴펀들랜드 지역의 전통 피들 음악과 로컬 음악 감각이 있다. 이들이 만나면서 우크라이나 민속음악, 월드뮤직, 집시 펑크, 스피드 포크의 성격을 두루 지닌 독특한 사운드가 만들어진다.

 

빠른 템포의 바이올린과 만돌린, 아코디언, 기타, 타악기와 여러 전통 악기가 뒤섞이고 그 위에 오래된 이야기와 선율이 흘러간다. 공연에서는 이러한 음악적 특성이 높은 에너지와 해학적 퍼포먼스로 이어진다. 자료 역시 쿠바소닉스의 음악을 ‘빠른 템포, 오래된 선율, 이야기 중심의 곡 구성’으로 정리한다.

전쟁 속에서 더 절실해진 문화의 존재

 

『Kubasongs』를 단순한 월드뮤직 음반으로만 볼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이 앨범은 팬데믹 기간에 준비됐으며,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비극적 현실을 배경으로 세상에 나왔다. 그룹의 리더 브라이안 처윅(Brian Cherwick)은 CBC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와 우크라이나 사람, 그리고 우크라이나 문화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뜻을 밝혔다고 전한다.
 

이 말은 『Kubasongs』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다.

 

전쟁은 도시와 건물만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한 민족이 오랫동안 간직해온 언어와 음악, 기억과 이야기도 위협한다. 그렇기에 전쟁 속에서 민속음악을 연주한다는 것은 오래된 노래를 반복하는 행위를 넘어선다. ‘우리는 여전히 존재한다’는 문화적 선언이 될 수 있다.

 

쿠바소닉스는 러시아의 침공 당시 앨범 발표를 결정했고, 우크라이나 문화의 지속성과 연대를 보여주는 활동과 함께 전쟁 종식을 요구하는 반전·평화 운동도 펼쳤다. 흥미롭게도 이런 무거운 메시지를 담고 있음에도 쿠바소닉스의 음악은 침잠하지 않는다. 오히려 빠르고, 신나고, 유머러스하다.

 

어쩌면 이것이 민속음악이 가진 힘일지도 모른다. 슬픔을 슬픔으로만 말하지 않고 춤으로 바꾸고, 고난 속에서도 노래를 이어가며 공동체의 기억을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것이다.

가족과 동료들이 함께 이어가는 음악

 

2022년 CBC 보도를 바탕으로 소개된 쿠바소닉스의 다섯 멤버는 리드 싱어 브라이안 처윅, 그의 딸 마리아(Maria)와 아들 야콥(Jacob), 기타리스트 다런 브라운(Darren Browne), 베이시스트 매트 헨더(Matt Hender)다.

 

브라이안 처윅은 리드 싱어이자 멀티 악기 연주자로 소개되며, 멤버들은 각각 다른 그룹에서 활동하다 쿠바소닉스에서 만나 우크라이나 민속음악이라는 공통된 소재를 중심으로 협업하고 있다. 이 점에서 쿠바소닉스의 음악은 단순한 복원이 아니다. 과거의 음악을 박물관 속 유물처럼 보존하는 대신 현재의 삶과 가족, 새로운 지역문화 속에서 끊임없이 변형하고 다시 연주한다.

 

우크라이나의 오래된 선율이 캐나다 뉴펀들랜드에서 울리고, 그 음악에 북미 지역의 피들 전통이 합쳐진다. 문화는 그렇게 이동하고 섞이며 살아남는다.

앨범 내부 우측면

앨범 내부 좌측면

앨범 개요

아티스트 : Kubasonics
앨범명 : 『Kubasongs』
발표연도 : 2022년
기반 장르 : 우크라이나 민속음악, 월드뮤직, 집시 펑크, 스피드 포크
지역적 색채 : 뉴펀들랜드 전통 선율과 우크라이나 전통음악의 결합
사운드 특징 : 빠른 템포, 오래된 선율, 이야기 중심의 곡 구성
주요 악기 : 바이올린, 만돌린, 아코디언, 기타, 타악기 및 다양한 전통 악기
공연 특징 : 에너지 넘치는 라이브 쇼와 해학적인 퍼포먼스
앨범 아트 : Jud Haynes
특징 : 종이를 여러 겹으로 커팅하고 조립해 제작한 입체적 페이퍼아트 게이트폴드 커버

음악을 듣기 전에 이미 시작되는 이야기

 

오늘날 음악 대부분은 휴대전화 화면 속 작은 정사각형 이미지와 함께 소비된다. 재생 버튼을 누르는 순간 음악은 시작되지만, 음반을 꺼내고 표지를 펼치며 크레딧을 읽던 시간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런 시대이기에 쿠바소닉스의 『Kubasongs』는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

 

이 음반은 우리에게 음악을 듣는 행위가 반드시 귀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종이를 자르고 겹친 흔적을 눈으로 따라가고, 손끝으로 표면의 질감을 느끼고, 커버 안쪽에 숨은 그림과 이야기를 하나씩 발견하다 보면 아직 음악을 재생하지 않았는데도 이미 하나의 공연이 시작된 듯하다.

작업 과정을 보여주는 레코드 보호 내지 - 슬리브커버

특히 레코드 보호 슬리브에는 앨범 커버가 만들어지는 작업 과정이 담겨 있다. 완성된 결과물뿐 아니라 가위와 종이, 잘려나간 조각과 제작 장면까지 디자인의 일부로 보여준다는 점이 재미있다. 한 장의 음반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손과 시간이 모여 탄생했는지를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그리고 그 정교하게 잘린 종이 사이로 우크라이나의 오래된 음악과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전쟁은 국경을 바꾸고 도시를 파괴할 수 있지만 한 민족이 간직해온 노래까지 완전히 없애기는 어렵다. 누군가 다시 연주하고, 누군가 듣고, 또 다음 사람이 그 노래를 이어 부르는 한 문화는 계속 살아 있기 때문이다.

 

쿠바소닉스의 『Kubasongs』는 바로 그런 음반이다.

 

빠른 리듬과 유머러스한 무대 뒤에는 고향과 문화에 대한 애정이 있고, 화려한 페이퍼아트의 종이 한 겹 한 겹에는 음악과 기억을 소중히 보존하려는 마음이 포개져 있다.

그래서 이 한 장의 음반은 귀로만 듣기에는 조금 아깝다. 눈으로 바라보고, 손끝으로 느끼고, 마지막으로 귀를 열어 들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음반. 『Kubasongs』는 음악과 미술, 그리고 한 민족의 문화적 기억이 얼마나 아름답게 한 장의 레코드 안에서 만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글 ㅣ최재우 문화예술기획 제이비엠 대표

KANN 블로그 바로가기
https://blog.naver.com/kanlimmtaik/224384852779

최재우 칼럼니스트

jaewooart@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