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현대미술사를 이야기할 때 박수근(1914~1965)은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다. 

 

화강암처럼 거친 화면 위에 시장의 여인과 아이들, 나무와 골목길을 그려낸 그의 작품은 전쟁과 가난을 견뎌낸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한국적인 미감으로 승화시켰다.

그 거장의 곁에서 그림을 보고 자란 아들이 있다. 박성남 화백이다.

박성남 화백

1947년 강원도에서 태어난 박성남은 평생 자신의 이름 앞에 따라붙은 ‘박수근의 장남’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살아왔다. 그러나 그의 예술 여정은 유명 화가의 자녀라는 단순한 계보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는 1970년대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1986년 호주로 이주한 이후 한국과 호주를 오가며 자신만의 회화 언어를 구축했다. 

 

박성남의 예술을 이해하는 중요한 두 개의 열쇳말은 그래서 ‘계승’과 ‘독립’이다.

 

아버지 박수근의 화실에서 시작된 예술의 기억

 

박성남에게 박수근은 미술사 속의 거장이기에 앞서 한 가정의 아버지였다.

박수근 화가가 그린 아들 박성남의 초상화

그는 어린 시절 서울 창신동 집에서 아버지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1953년에는 박수근이 어린 아들 박성남의 모습을 직접 초상화로 남기기도 했다. 박성남은 훗날 당시를 회고하며 그 그림이 단순한 자기 한 사람의 초상이 아니라 전쟁의 혼란 속에서 헤어지고 다시 만나기를 기다렸던 수많은 가족과 아이들의 모습을 담은 것처럼 느낀다고 이야기했다. 

 

박수근이 평생 강조했던 것은 화려한 기교보다 인간이었다.

 

시장에 앉아 있는 여인, 빨래하는 사람, 아이를 업은 소녀, 나목과 골목길처럼 당시에는 너무나 평범했던 삶의 장면들이 그의 화폭에서는 인간의 존엄성을 보여주는 존재로 다시 태어났다.

 

박성남에게 이러한 아버지의 예술관은 하나의 거대한 유산이었다.

 

그러나 거장의 아들이 화가가 된다는 것은 동시에 넘어야 할 벽을 갖는 일이기도 했다.

 

“대가의 아들”이라는 무게

 

유명 예술가의 자녀가 같은 길을 선택할 경우 작품보다 먼저 부모의 이름으로 평가받기 쉽다.

 

박성남 역시 오랜 시간 이런 시선과 마주해야 했다.

 

2006년 공개된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이 박수근의 2세라는 이유 때문에 오랜 시간 전면에 나서지 않았음을 털어놓으며, 이제는 독립된 화가로 자신의 작품을 보여주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그는 호주에서 생활하며 생계를 위한 일을 하는 동시에 그림을 놓지 않았다. 

 

여기에서 박성남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지점이 나타난다.

 

그에게 아버지는 피해야 할 존재도, 그대로 모방해야 할 대상도 아니었다.

박수근에게서 정신을 이어받되 박수근과 다른 그림을 그리는 것.

그것이 박성남에게 주어진 가장 어려운 예술적 과제였다고 볼 수 있다.

 

박수근의 화강암에서 박성남의 현대적 인간으로

 

박수근 작품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독특한 표면 질감이다.

여러 층의 물감이 쌓이며 만들어낸 화면은 한국의 화강암이나 오래된 돌벽을 떠올리게 한다. 그 위에서 단순화된 인물과 나무가 등장하고, 회색과 황갈색을 중심으로 한 절제된 색채가 한국인의 삶을 담담하게 전한다.

 

박성남의 그림에서도 아버지를 연상시키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그의 관심은 다른 방향으로 확장됐다.

달밤ㅡ독서하는소녀 mixed media 121x95cm 2024

박성남은 자연과 인간의 생성과 소멸, 현대인의 욕망과 고독, 인간관계의 단절과 상처 등에 관심을 두어왔다. 그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아버지가 당대의 ‘선함과 진실함’을 화두로 삼았다면 자신은 현대사회에서 자연과 인간이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과정과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내는 변화를 바라보고 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따라서 두 작가의 작품에는 공통점과 차이가 동시에 존재한다.

 

박수근이 전후 한국인의 삶을 바라봤다면, 박성남은 그 이후 현대사회 속 인간의 존재를 바라본다. 시대는 다르지만 두 사람 모두 결국 ‘사람’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부자의 작품세계는 연결된다.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박성남의 조형세계

 

박성남은 1986년 호주로 이주했다. 공개된 작가 자료에 따르면 그는 이후 호주 한인미술협회장을 역임하고 문화예술 관련 아트디렉터로도 활동했다. 이주 경험은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배경이다. 고향을 떠나 다른 문화권에서 살아가는 경험은 필연적으로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인간이 돌아갈 곳은 어디인가’라는 질문과 만나게 된다.

 

박성남의 회화에는 서양회화의 조형적인 구성과 동양적인 정서가 동시에 나타난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화면은 때로 추상과 구상의 경계를 넘나들고, 인간과 자연의 형상은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는 작가 내면의 기억과 감정을 담는 기호처럼 등장한다.

 

이는 아버지의 그림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박수근에게 물려받은 인간에 대한 관심을 자신의 시대와 삶의 경험 속에서 새롭게 번역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Kenosis-귀로’…돌아간다는 것의 의미

박성남_kenosis ㅡ그리움 mixed media 91x97cm 2024

박성남 작품세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키워드 가운데 하나가 ‘귀로(歸路)’다.

 

2023년 공개된 작품 가운데에는 〈Kenosis-귀로〉가 있다. 박성남은 이 작품에 대해 동서양의 화법이 어우러진 조형세계 속에서 생성과 소멸, 현대인의 외로움과 불감증 등을 표현해왔다고 설명한다. 

 

‘귀로’는 단순히 집으로 돌아가는 길만을 뜻한다고 보기 어렵다.

 

인간이 자신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길일 수도 있고, 어린 시절과 가족에게로 돌아가는 기억의 길일 수도 있다. 나아가 오랜 해외생활을 경험한 작가에게 귀로는 고향과 정체성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정신적인 여정으로도 읽힌다.

 

이 지점에서 박성남의 그림은 박수근과 다시 만난다.

 

박수근의 그림에 등장했던 골목과 나무, 가족과 서민의 모습이 당시 한국인의 생활공간이었다면 박성남에게 그 기억은 시간이 흐르면서 ‘돌아가고 싶은 정신적 고향’으로 변모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호주에서 그림을 놓지 않았던 시간

 

박성남의 생애에서 호주 시절은 중요하다.

호주생활_푸른 수국 앞의 행복한 가족사진

그는 1986년 호주로 이주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그림을 그렸다. 2006년 인터뷰 당시에는 호주에서 약 18년 동안 생업과 작품 활동을 병행했던 삶이 소개됐다.

 

화가에게 이러한 경험은 결코 작품과 분리되지 않는다.

 

미술시장의 중심에서 화려하게 활동하기보다는 낯선 땅에서 생활을 이어가면서도 그림을 놓지 않았다는 사실은 박성남이 예술을 직업 이상의 것으로 받아들였음을 보여준다. 그의 화면에서 나타나는 고독과 상처, 생성과 소멸이라는 주제 역시 이러한 생의 경험과 완전히 무관하다고 보기 어렵다.

 

박수근의 예술을 지켜온 아들이기도 하다

 

박성남은 자신의 작품세계뿐 아니라 아버지 박수근의 예술을 지키고 알리는 일에도 참여해 왔다.

 

그는 2002년부터 2009년까지 박수근미술관 운영자문위원으로 활동했으며 박수근미술상 심사에도 참여했다. 그에게 박수근의 작품은 미술사적 문화유산이면서 동시에 가족의 기억이다. 따라서 박성남의 삶에는 서로 다른 두 역할이 공존한다.

 

하나는 ‘박수근을 가장 가까이에서 기억하는 증언자’이고, 다른 하나는 ‘박수근과는 다른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독립된 화가’다. 이 두 역할은 때때로 서로 충돌하지만 동시에 박성남의 예술적 정체성을 형성한다.

 

2026년, 다시 만난 박수근과 박성남

 

2026년에는 박수근과 박성남 부자의 작품을 함께 보여주는 기획전이 열리며 두 작가의 관계가 다시 조명됐다.

박성남 작 ‘Kenosis_기도하는 손(박수근)

전시는 한 공간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작품을 비교하며 두 세대가 인간과 삶을 어떻게 서로 다른 조형언어로 바라보았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자리로 소개됐다.

 

이러한 전시의 의미는 단순한 ‘부자전’에 그치지 않는다.

 

박수근을 기준으로 박성남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두 작가가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가면서 인간을 어떻게 바라봤는지를 비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수근의 화면에는 전쟁 이후 가난한 시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이 있다.

박성남의 화면에는 산업화와 도시화, 이주와 단절을 경험한 현대인의 내면이 있다.

 

아버지는 시대 속 인간의 삶을 그렸고, 아들은 시대 속 인간의 내면으로 들어갔다.

그렇기에 두 사람의 그림은 닮아 있으면서도 다르다.

 

박성남 주요 전시 활동

 

박성남의 주요 국내 활동으로 2007년 KIAF, 2009년 한국구상대전 및 ART STAR 100인전, 2010년 장은선갤러리와 대학로갤러리 전시, 2012년 인사미술제, 2015년 한가람아트갤러리 초대전과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 갤러리 전시, 2016년 COAF 오렌지아트페어 및 멘토포럼 전시, 2017년 서울 갤러리 고도 초대전 등이 있다.

 

이를 통해 박성남은 호주 생활 이후에도 꾸준히 국내 미술계와 연결되며 활동을 이어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박수근의 아들’에서 ‘화가 박성남’으로

 

박성남 화백의 삶을 돌아보면 하나의 질문에 도달한다.

박성남_달밤 산책, mixed media, 121x91cm, 2024

거대한 예술적 유산을 물려받은 사람은 어떻게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는가.

누군가는 부모의 이름을 이용하고, 누군가는 그것을 부정한다.

 

박성남이 선택한 길은 조금 달랐다. 그는 박수근을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버지가 추구했던 인간에 대한 애정과 진실성을 자신의 예술적 뿌리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 위에 자신의 삶을 쌓았다.

 

호주에서의 오랜 이주생활, 생계를 이어가면서도 놓지 않았던 붓, 현대인의 고독과 욕망에 대한 고민, 그리고 생성과 소멸과 귀로에 대한 사유가 한 겹씩 그의 화면을 만들었다. 그래서 박성남의 그림에서 박수근이 보인다는 것은 반드시 한계를 의미하지 않는다. 한 세대의 예술이 다음 세대에서 어떻게 변형되고 다시 태어나는지를 보여주는 예술적 DNA의 흔적일 수도 있다.

 

아버지와 아들, 두 개의 시대를 잇는 그림

 

박수근은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의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아름다움을 찾았다.

박성남 역시 결국 인간을 바라본다.

그러나 그 인간을 둘러싼 시대가 달라졌다.

박성남 作

박수근이 전쟁과 가난 속에서도 살아가는 사람들의 선함과 진실함을 화폭에 남겼다면, 박성남은 현대사회 속에서 고립되고 상처받으며 자신의 근원을 찾아가는 인간을 이야기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두 작가의 관계는 단순한 혈연적 계승보다 넓다. 박수근에서 박성남으로 이어지는 것은 화풍이 아니라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거장의 이름을 등에 업은 아들이 아니라, 그 거대한 이름과 평생 대화하며 자기 언어를 찾아온 화가.

 

박성남의 예술세계를 바라볼 때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바로 그 지점이다.

 

‘박수근의 아들 박성남’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화가 박성남’을 바라보는 것.

 

그때 비로소 아버지와 아들, 두 세대를 관통하며 이어져 온 한국 회화의 또 다른 이야기가 보이기 시작한다.

박성남 화백

박성남(Park Sung-nam) 프로필
 

1947년 강원도 출생. 서양화가이자 박수근 화백의 장남이다. 1970년대 국전과 구조전 등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1986년 호주로 이주한 이후 한국과 호주를 오가며 창작활동을 이어왔다. 호주 한인미술협회장을 역임했으며 문화예술 관련 아트디렉터로도 활동했다. 작품에서는 자연과 인간의 생성과 소멸, 현대인의 욕망과 고독 등을 지속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주요 활동

박수근미술관 운영자문위원, 박수근미술상 심사, 호주한인미술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국내외 개인전과 아트페어 및 기획전에 참여해왔다.

 

작품세계 주요 키워드
인간과 자연 / 생성과 소멸 / 현대인의 고독 / 기억 / 귀로 / 동서양 조형언어의 융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