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랜 사진 한 장을 오래 바라본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내려앉은 흑백사진 속에는 고향집이 있고, 형님과 누님, 집안 누님 두 분이 있다. 그리고 그들 뒤편에는 일을 하시던 아버지가 희미하게 서 계신다. 사진은 곳곳이 갈라지고 사람들의 얼굴도 선명하지 않지만, 그날의 햇살과 고향집 마당의 온기만큼은 어제 일처럼 되살아난다.

오늘은 그동안 마음속으로만 미뤄왔던 형님의 추모공원에 다녀왔다. 1950년에 태어난 형님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대중교통을 갈아타며 오고 가는 데 체류시간을 포함해 여덟 시간이 걸렸다. 몸은 고단했지만, 마음은 오래전부터 그곳을 향해 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추모공원 가기 전에 낯설지 않은 사진 한 장을 보았다. 어린 시절 어디선가 분명히 보았던 사진이었다. 잊고 지냈다고 생각했는데, 사진을 마주하는 순간 기억은 기다렸다는 듯 한꺼번에 밀려왔다. 고향집과 가족들, 말없이 일하시던 아버지의 뒷모습, 함께 웃고 울던 형제들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 순간, 오래된 노래 한 곡이 마음속에서 흘러나왔다. 문주란의 ‘동숙의 노래’였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아버지는 고된 일을 하시다가 잠시 허리를 펴는 휴식시간이면 이 노래를 즐겨 들으셨다. 종일 흙과 땀에 젖은 옷을 입고 일하시던 아버지에게 노래 한 곡은 유일한 위안이었을 것이다. 어린 나에게는 그저 어른들이 좋아하는 슬픈 노래였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에야 그 노래를 듣던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동숙의 노래’에는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의 깊은 슬픔과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에 대한 애달픔이 배어 있다. 문주란의 낮고 호소력 짙은 목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한 사람이 견뎌야 했던 이별과 기다림이 가슴속에 천천히 스며든다. 아버지는 그 노래에서 무엇을 떠올리셨을까. 지나온 가난한 세월이었을까, 떠나보낸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가족을 위해 묵묵히 감당해야 했던 삶의 무게였을까.

 

아버지는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그저 노래를 들으며 잠시 먼 곳을 바라보다가, 음악이 끝나면 다시 일터로 돌아가셨다. 어린 나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아버지가 노래를 듣던 그 짧은 휴식시간이 고단한 삶을 견디게 해준 작은 피난처였다는 것을.

 

세월은 사람을 데려가지만 목소리와 풍경까지 모두 가져가지는 못한다. 휴대용 측음기에서 흘러나오던 노래 한 곡, 흙 묻은 손으로 땀을 닦던 모습, 고향집 마당에 드리웠던 오후의 햇살은 마음 한편에 남아 어느 날 문득 나를 그 시절로 데려간다.

 

며칠 전에는 꿈에서 그리운 가족들을 보았다. 꿈속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너무나 생생해서 잠에서 깨어난 뒤에도 한동안 눈을 뜰 수 없었다. 오늘 추모공원에서 형님을 뵙고 빛바랜 사진을 바라보니, 어쩌면 그 꿈은 오래 미뤄둔 만남을 재촉하는 가족들의 부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오늘 나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누님, 형님을 뵈었다. 사진 속에서는 모두 젊고, 고향집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어느 누구도 돌아올 수 없고, 그때의 시간 또한 다시 붙잡을 수 없다. 그래서 사진 한 장이 더욱 아프고 소중하다.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을 붙들고 있는 마지막 창문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즐겨 들으시던 ‘동숙의 노래’를 다시 듣는다. 이제 이 노래는 단순한 옛 가요가 아니다. 아버지의 땀과 침묵, 형님과 누님의 모습, 사라진 고향 집과 어린 시절의 나를 한데 불러 모으는 나의 노래가 되었다.

 

이승에서의 삶이 비록 고통스럽고 힘겨웠을지라도, 하늘에서는 아무런 근심과 걱정 없이 평안하시기를 바란다. 그곳에서는 고된 일을 잠시 멈추고 노래를 들어야 할 만큼 삶이 무겁지 않기를, 더는 누구와도 이별하지 않기를 소망한다.

 

빛바랜 사진 속 가족들은 오늘도 말이 없다. 그러나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오래전 고향집 마당에서 흘러나오던 아버지의 노래가 들리는 듯하다. 노래가 끝나도 그리움은 끝나지 않는다. 다만 그리움이 노래가 되어, 남겨진 나의 마음속에서 오래도록 이어질 뿐이다.

 

2018년 10월 4일, 그리운 가족들을 생각하며

글 ㅣ 임만택 한국아트넷뉴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