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편 | BTS와 그래미, 〈오디세이〉는 왜 같은 질문을 남겼나
이 글에는 영화 〈오디세이〉의 일부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알고도 낯설었다
나는 알고 갔다.
헬레네를 흑인 배우가 연기한다는 것도,
그것을 두고 사람들이 다툰다는 것도.
별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화면에 그녀가 나타났을 때,
무언가 맞지 않았다.
영화와 맞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내 안에 있던 얼굴과 맞지 않았다.
헬레네는 그리스 신화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라 불린다.
후대에는 그녀를
천 척의 배를 띄운 얼굴이라 불렀다.
그러나 호메로스는
우리가 떠올리는 그 얼굴까지 그려주지는 않았다.
나는 그 얼굴을 이미 가지고 있었다.
가지고 있는 줄도 모르고 가지고 있었다.
놀란이 보여준 것은 낯선 헬레네였다.
그러나 그 순간 들킨 것은
내가 오래 품어온 헬레네였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방금 얼굴 하나를 떠올렸을 것이다.
나는 당신이 어떤 얼굴을 떠올렸는지 모른다.
오백쯤 되겠군
그녀의 얼굴에는 큰 흉터가 남아 있었다.
메넬라오스는 아내를 바라보며 말한다.
천 척의 배를 띄운 얼굴.
지금은 오백쯤 되겠군.
극장 안에서 웃음이 났다.
나도 웃었다.
웃고 나서 조금 이상했다.
배의 숫자로 얼굴을 세고 있었다.
그는 그 상처를
아픔이 아니라 값의 하락으로 읽었다.
전쟁은 그녀를 되찾겠다고 시작되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자
가장 먼저 그녀의 값을 깎았다.

액자가 다 담지 못했는데,
아무도 액자를 고치지 않았다.
새로 놓인 의자
그래미는
‘베스트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 부문을 새로 만들었다.
주요 부문의 문도
여전히 열려 있다고 설명했다.
문을 닫은 것은 아니었다.
의자를 하나 더 놓은 것이었다.
벽은 막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의자는 배려처럼 보인다.
앉으라고 권하는 손과
앉을 자리를 정해주는 손은
멀리서 보면 같은 모양이다.
BTS는 그 의자에 앉지 않기로 했다.
음악이 지역이나 언어로 나뉘기보다
음악 자체로 들리고 사랑받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들은 새로운 기준을 내놓지 않았다.
그 기준 안으로 들어가지 않기로 했을 뿐이다.
누군가 문 앞에서 멈춰 선 덕분에
우리는 처음으로 문을 바라보게 되었다.
우리는 음악가가
그 문을 통과할 자격이 있는지는 자주 물었다.
그러나 그 문이
그 음악을 판단할 자격이 있는지는
물어본 적이 있었을까.
선은 언제 자연이 되었나
그 의자 아래에도
보이지 않는 선이 있었다.
그제야 BTS의 신곡 〈NORMAL〉의 가사가
다르게 들렸다.
NORMAL과 스페셜은
몇 개의 선일 뿐이라고.
‘normal’의 뿌리인 라틴어 ‘norma’는
목수가 쓰던 직각자였다.
선을 재던 도구는 규칙이 되었고,
어느 순간 사람을 재기 시작했다.
그 규칙에 맞는 사람은
정상이라 불렸다.
정상은 처음부터 자연이 아니었다.
누군가 그어놓은 선이었다.
선은 얇다.
그러나 오래 그 자리에 놓이면 풍경이 된다.
풍경이 된 선은 더 이상 의심받지 않는다.
누가 그 선을 그었는가.
그리고 그 선을 그은 사람은
어느 쪽에 서 있었는가.
명단에 없던 심사위원
그래미의 기준을 바라보다가
나는 명단에 없는 심사위원 한 사람을
발견했다.
나였다.
나는 몇 초 만에
헬레네의 얼굴을 판단했다.
기준은 제도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 눈 안에도 있었다.
당연한 것은
오래 질문받지 않았을 뿐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기준 앞에서 자신을 증명해왔다.
그런데 그 기준은
언제 자신을 증명했는가.
당신을 재는 그 기준은
당신을 담을 만큼 큰가.

선에 불을 붙이려는 손인지,
그 선을 확인하려는 손인지,
나는 아직 정하지 못했다.
내가 그날 낯설어한 것은
헬레네의 얼굴이었을까.
아니면 처음 들킨
내 눈이었을까.
작가 소개

위성신은 AI Artist · Director · Singer-Songwriter로 활동하며, 이미지와 음악, 글을 통해 동시대의 감각과 존재를 탐구한다. 예술가적 배경 위에 금융과 기술 현장을 지나온 경험을 더해, AI 시대의 예술과 인간, 선택과 질문의 본질을 자신만의 언어로 풀어내고 있다.
현재 「위성신, 묻다」를 통해 작품과 글이 같은 질문에서 태어나는 칼럼 연작을 이어간다.
작가 활동 및 칼럼
위성신, 묻다」 칼럼 모음
작가 페이지 및 작품·전시 문의
위성신 | Sung Shin Wee |
위성신 칼럼니스트





댓글을 불러오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