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은 언제나 마음보다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삶의 자리가 아무리 멀어져도 고향이라는 두 글자 앞에서는 누구나 잠시 말을 잃는다. 그곳에는 어린 시절의 웃음이 있고, 흙냄새 묻은 골목이 있으며, 계절마다 다른 빛깔로 마음을 흔들던 산천이 있다. 무엇보다 그곳에는 이제는 하늘에 계신 부모님의 숨결이 남아 있다.

나는 고향에 간다. 하늘에 계신 부모님을 뵈러 가는 길이다. 

살아생전에는 너무 당연하게 여겼던 부모님의 자리, 늘 그곳에 계실 것만 같았던 어머니의 품과 아버지의 묵묵한 뒷모습이 이제는 그리움이 되어 마음 한가운데 앉아 있다. 세월은 사람을 멀리 데려가지만, 그리움은 끝내 사람을 다시 고향으로 데려간다.

고향은 늘 아련하다. 

어린 시절의 꿈들이 추억 속에 잠들어 있는 곳이다. 여름 풀벌레 소리, 들판을 스치던 바람, 마을 어귀의 오래된 나무, 강물처럼 굽이쳐 흐르던 시간들이 아직도 그곳에 남아 있는 듯하다. 사진 속 고향 산천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새 마음은 어린 날의 나로 돌아간다. 논둑길을 뛰어다니던 아이, 친구들과 해질녘까지 놀던 아이,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에 집으로 달려가던 아이가 아직도 그 풍경 속에 서 있다.

고향의 냄새는 오래 사라지지 않는다. 

고향 집앞 보호수인 팽나무

진한 찔레꽃 향기처럼 어느 날 문득 가슴 깊은 곳에서 피어난다. 그 향기는 단순한 꽃향기가 아니다. 그것은 어머니의 손길이고, 아버지의 침묵이며, 가난했지만 따뜻했던 한 시대의 기억이다. 사람은 때때로 성공과 바쁨 속에서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잊고 살아가지만, 고향은 잊힌 시간들을 조용히 불러낸다.

부모님 산소 앞에 서면 늘 마음이 작아진다. 

살아계실 때 더 자주 찾아뵙지 못한 일, 따뜻한 말 한마디 더 드리지 못한 일, 바쁘다는 이유로 미루었던 시간들이 뒤늦게 가슴을 친다. 그러나 부모님은 언제나 그랬듯 말없이 받아주실 것이다. 자식이 늦게 찾아와도 탓하지 않고, 먼 길을 돌아온 마음만 어루만져 주실 것이다.

고향은 단순히 태어난 곳이 아니다. 

배산임수의 전형적인 시골마을, 영산강이 흐른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뿌리이며, 흔들릴 때마다 다시 서게 해주는 마음의 근원이다. 낯선 세상에서 버티고 살아갈 수 있었던 힘도 결국 고향에서 배운 것이다. 부모님의 사랑, 이웃의 정, 자연의 품, 그리고 어려운 시절을 함께 견뎌낸 삶의 기억들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그래서 고향을 그리워한다는 것은 과거에 머무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나의 뿌리를 돌아보고, 잊고 살았던 사랑을 다시 확인하는 일이다. 고향을 찾는 길은 부모님께 가는 길이자, 나 자신에게 돌아가는 길이다. 삶이 아무리 복잡하고 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변해도, 고향은 늘 같은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린다.

나는 다시 그 길을 걷는다. 

무성한 풀잎 사이로 세월이 지나간 흔적을 보고, 오래된 나무 아래에서 어린 날의 나를 떠올리고, 강과 들판이 펼쳐진 고향 산천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부모님께 인사를 드릴 것이다.

“아버지, 어머니, 저 왔습니다.”

고향은 늘 그립고 아련하다. 그리고 그 그리움이 있어 우리는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세월은 부모님을 하늘로 모셔갔지만, 사랑은 아직도 고향에 남아 있다. 그 사랑을 만나러, 나는 다시 고향에 간다.

임만택 기자

limmtai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