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성장 한계는 반드시 기술 수준에서 결정되지 않는다. 많은 기업이 더 나은 기술을 개발하고 특허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실제 시장에서 지속적인 경쟁우위를 만드는 기업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기술을 어떻게 사업과 연결하는지를 고민한다. 흔히 지역 기업의 어려움을 자본 부족, 인재 확보의 어려움, 시장 접근성의 한계로 설명한다. 물론 이러한 환경적 요인은 현실적인 제약이다. 그러나 기업의 미래를 결정하는 본질적인 문제는 지역이라는 공간 자체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기업의 사고방식과 성장 전략이 지역이라는 경계 안에 머무르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지역은 기업의 출발점일 수 있지만, 기업이 바라보는 시장의 크기와 성장 목표까지 지역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많은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은 기술개발에는 익숙하다. 연구개발 역량을 강화하고 제품의 완성도를 높이며 새로운 기술을 확보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그 기술이 어떤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고, 어떤 산업으로 확장될 수 있으며, 어떻게 기업가치로 전환될 수 있는지에 대한 전략적 고민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경우가 많다. 기술은 그 자체만으로 기업가치를 만들지 않는다. 기술이 시장과 연결되고, 사업모델과 결합되며, 확장 가능한 구조로 설계될 때 비로소 기업의 핵심 자산이 된다.
필자는 이러한 관점을 기술경영 오케스트레이션이라고 부른다. 기술경영 오케스트레이션은 연구개발, 특허, 시장, 투자, 조직 역량을 각각 독립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성장이라는 하나의 목표 아래 서로 연결하고 조율하는 경영 방식이다. 과거 기업에게 특허는 기술을 보호하기 위한 법률적 수단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앞으로의 기업에게 특허는 미래 사업 방향을 설계하고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자산이 되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특허의 개수가 아니다. 어떤 기술을 권리화하고, 그 기술이 어떤 시장을 만들며, 기업의 성장 전략과 어떻게 연결되는지가 중요하다. 특허는 연구개발의 결과물이 아니라 기업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성장할 것인지를 보여주는 전략 지도여야 한다.
또 하나 기업이 극복해야 할 과제는 실행 속도와 확장성이다. 스타트업은 완성도를 경쟁하는 조직이 아니라 학습과 실행의 속도를 경쟁하는 조직이다. 시장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완벽한 기술을 만든 이후 시장에 진입하는 방식보다 고객의 문제를 빠르게 확인하고, 시장의 요구를 반영하면서 기술과 사업을 함께 발전시키는 구조가 필요하다. 특히 기술 중심 기업일수록 수직적 기술 고도화에는 적극적이지만 수평적 시장 확장에는 소극적인 경우가 많다. 하나의 기술을 깊게 만드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 기술이 다른 산업과 고객, 그리고 글로벌 시장에서도 가치를 만들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기업의 성장은 결국 기술 × 시장 × 확장성이 결합될 때 만들어진다.
기업은 또한 특정 지역이나 특정 분야에서 인정받는 수준을 넘어 산업의 변화를 주도하겠다는 목표를 가져야 한다. “우리 지역에서 좋은 기업이 되겠다”, “특정 분야에서 기술력이 인정받는 기업이 되겠다”는 목표만으로는 글로벌 경쟁 시대의 지속적인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기업은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우리가 이 산업의 기준을 만들 수 있는가”, “우리 기술이 시장의 방식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국내를 넘어 글로벌 기업과 경쟁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러한 질문이 기업의 방향을 결정한다. 정부지원사업 역시 마찬가지다. 지원사업은 기업 성장의 목적지가 아니라 성장 전략을 실행하기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지원을 받았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지원을 통해 어떤 기술을 확보하고 어떤 시장을 개척하며 어떤 기업가치를 만들어낼 것인가이다.
결국 지역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지원 확대만이 아니다. 더 큰 시장을 바라보는 시야, 더 빠르게 실행하는 문화, 더 높은 수준의 경쟁 상대, 그리고 산업의 판을 바꾸겠다는 기업가 정신이 필요하다. 기술경영 오케스트레이션의 관점에서 기업은 하나의 악기로 완성되지 않는다. 연구개발이라는 악기, 특허라는 악기, 시장이라는 악기, 투자와 조직이라는 악기가 각각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하나의 방향으로 조화를 이룰 때 기업은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 지역에서 시작한 기업도 세계 시장의 기준을 만들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기업의 위치가 아니라 방향이다. 어디에서 시작했는지가 아니라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가 기업의 미래를 결정한다. 미래의 경쟁력은 얼마나 많은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지가 아니라, 보유한 기술을 시장과 사업으로 연결하는 경영 역량에서 만들어질 것이다.
이병돈의 기술경영 한마디
기술은 기업의 출발점이지 목적지가 아니다. 진정한 경쟁력은 보유한 기술의 깊이가 아니라, 기술을 시장·사업·미래 가치와 연결하는 경영의 힘에서 만들어진다.

글 ㅣ 이병돈 아이피허브 대표
이병돈 칼럼니스트 siphub@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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