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미술은 서로 다른 예술의 언어를 사용하지만, 때로는 한 장의 음반 표지를 통해 깊은 공감대를 형성한다. 

MarkKnopfler-KillToGetCrimson-2007-front

이번에 소개할 음반은 영국 록그룹 다이어 스트레이츠(Dire Straits)의 리더이자 기타리스트인 마크 노플러(Mark Knopfler)가 2007년 발표한 다섯 번째 솔로 앨범 《Kill to Get Crimson》이다. 

MarkKnopfler-KillToGetCrimson-2007-back

앨범 표지에는 영국 화가 존 브랫비(John Bratby, 1928~1992)의 작품이 사용됐다.

존 브랫비(John Bratby) 작품“Self Portrait” (1953)

존 브랫비는 1950년대 영국 현대미술에서 중요한 흐름을 형성한 ‘키친 싱크 리얼리즘(Kitchen Sink Realism)’의 대표적인 화가다. 일상의 평범한 풍경과 사물을 예술의 중심으로 끌어들인 그의 회화는 당시 영국 사회의 현실과 인간의 삶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1928년 영국 런던 남서부 윔블던에서 태어난 브랫비는 킹스턴 미술대학에서 공부한 뒤 왕립미술대학에 진학해 1954년 학업을 마쳤다. 같은 해 런던 보자르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하며 본격적으로 미술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JohnBratby-StillLifeWithChipFrier-1954

그가 주도한 키친 싱크 리얼리즘은 부엌의 싱크대와 쓰레기통, 맥주병, 식기 등 일상적인 사물을 주요 소재로 삼았다. 화려하거나 이상화된 아름다움 대신 평범한 가정의 생활공간과 현실적인 인간의 모습을 회화에 담아낸 것이 특징이다. 두껍게 쌓아 올린 물감과 강렬한 색채, 때로는 거칠고 투박한 표현은 그의 작품에 독특한 생명력을 부여했다.

JohnBratby-CourtyardWithWashing-1956

브랫비는 특히 중산층 가정의 일상과 인물들의 내면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반드시 아름답거나 행복한 모습만을 보여주지 않는다. 때로는 피로와 불안, 절망이 드러나는 표정을 통해 현대인의 삶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이러한 회화적 태도는 당시 영국 사회의 기성 질서와 관습에 문제를 제기했던 ‘앵그리 영 맨(Angry Young Men)’의 문화적 흐름과도 맞닿아 있었다.

JohnBratby-TableTop-1955

1956년에는 에드워드 미들디치, 잭 스미스, 데릭 그레이브스 등과 함께 베니스 비엔날레에 영국 대표 작가로 참가했다. 그의 초기 대표작 《Still Life With Chip Frier》(1954)는 영국 테이트 갤러리에 소장됐으며, 이후 초상화와 풍경화, 정물화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쳤다.

JohnBratby-ThreePeopleAtATable-1955

브랫비는 대중문화와도 깊은 인연을 맺었다. 비틀즈의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는 그의 작품을 수집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1967년 브랫비의 작업실을 방문해 여러 시간 머무는 동안 세 점의 초상화가 제작되기도 했다. 이러한 만남은 영국 현대미술과 대중음악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던 시대적 분위기를 보여준다.

 

1960년대 이후 팝아트가 부상하면서 브랫비의 작품은 한동안 미술계의 중심에서 멀어졌지만, 그의 일상적 소재와 독창적인 표현 방식은 다시 주목받게 됐다. 1992년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영국 현대회화에서 그가 차지하는 의미는 여전히 중요하게 평가되고 있다.

JohnBratby-PaulMcCartneyAndFlowers-1967

이번 음반의 주인공 마크 노플러는 영국 록 음악을 대표하는 기타리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다. 그는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리더로 활동하면서 독창적인 기타 연주와 개성 있는 목소리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특히 기타 피크를 사용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현을 뜯어 연주하는 핑거스타일 주법은 그의 음악을 상징하는 요소다. 절제된 음색과 섬세한 리듬, 감정을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연주 방식은 수많은 기타리스트에게 영향을 끼쳤다.

 

다이어 스트레이츠 시절 발표한 《Money for Nothing》의 강렬한 기타 리프와 《Brothers in Arms》의 깊은 울림은 지금까지도 많은 음악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화려한 기교를 앞세우기보다 선율과 음색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그의 연주는 특유의 서정성을 지닌다.

2007년 발표한 《Kill to Get Crimson》은 마크 노플러의 다섯 번째 솔로 앨범이다. 발표 당시 미국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26위로 데뷔했으며, 첫 주 약 2만 3천 장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이후 2008년 3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시작된 앨범 기념 투어는 같은 해 7월 미국 마이애미에서 마무리됐다.

 

이 앨범에서 주목할 부분은 존 브랫비의 1958년 작품 《Four Lambrettas and Three Portraits of Janet Churchman》을 표지 이미지로 사용했다는 사실이다.

 

브랫비가 일상 속 사물과 인물의 모습을 강렬한 색채로 표현했다면, 노플러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기억, 사랑과 상실의 감정을 기타 선율과 노랫말로 풀어낸다. 두 예술가는 서로 다른 시대와 표현 방식을 지녔지만, 인간의 일상과 그 속에 담긴 정서를 중요하게 바라본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앨범에 수록된 《True Love Will Never Fade》는 제목처럼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 사랑의 감정을 떠올리게 하며, 《Let It All Go》에서는 노플러 특유의 담담한 음악적 표현을 만날 수 있다. 그의 기타는 격렬하게 감정을 쏟아내기보다 조용히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울림을 전한다.

 

한 장의 음반을 감상한다는 것은 단순히 음악을 듣는 일에 머물지 않는다. 앨범 표지에 담긴 회화의 역사와 작가의 삶을 함께 살펴보면 음악이 지닌 정서와 시대적 배경을 더욱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다.

 

존 브랫비가 일상의 평범한 풍경에서 예술적 가치를 발견했듯, 마크 노플러 역시 소박한 삶의 이야기에서 오래도록 기억될 음악을 만들어 왔다. 《Kill to Get Crimson》은 그렇게 영국 현대미술과 대중음악이 한 장의 음반 위에서 만나는 흥미로운 사례다.


글 ㅣ최재우 문화예술기획 제이비엠 대표
 

음반 개요

아티스트: 마크 노플러(Mark Knopfler) 앨범명: Kill to Get Crimson 발매연도: 2007년 구분: 다섯 번째 솔로 정규앨범 장르: 록, 포크 록 앨범 커버 작가: 존 브랫비(John Bratby) 커버 작품: Four Lambrettas and Three Portraits of Janet Churchman(1958)

 

음악 감상

Mark Knopfler – True Love Will Never Fade
https://www.youtube.com/watch?v=wVoJgwLIuNA

Mark Knopfler – Let It All Go
https://www.youtube.com/watch?v=dsnm1afc9v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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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우 칼럼니스트 jaewooart@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