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을 고르는 일은 때때로 그림 한 장과의 만남에서 시작된다. 

레미 줄리에뵈(Remi Juliebø) 작품

아직 첫 곡을 듣기도 전에 커버의 색채와 선, 낯선 이미지가 먼저 말을 걸어온다. 어떤 음악이 담겨 있을까. 이 그림과 소리는 어떻게 이어질까. 그렇게 시작된 호기심은 음악을 듣는 동안 새로운 감상으로 자라난다.

 

이번에 소개할 두 음반은 노르웨이 오슬로의 음악가들이 발표한 작품이다. 

 

하나는 인디 록 밴드 코미트 키드(Comet Kid)의 2015년 앨범 《Forces of Nature》, 다른 하나는 에스노 재즈록 그룹 다나킬 사파리(Danakil Safari)의 2026년 데뷔 앨범 《From the Soil》이다. 발표 시기도, 음악의 결도 다르지만 두 음반의 커버에는 같은 작가의 이름이 놓인다.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일러스트레이터, 아트 디렉터인 레미 줄리에뵈(Remi Juliebø)다.

 

같은 이름 아래 서로 다른 작품이 탄생한다는 의미에서 이번 이야기에 ‘동명이작’이라는 제목을 붙여본다. 한 작가가 각기 다른 음악을 만나 어떤 시각적 언어를 만들어내는지 살펴보는 일이다.

 

음악마다 다른 얼굴을 찾아내는 디자이너

레미 줄리에뵈(Remi Juliebø)

레미 줄리에뵈는 노르웨이 오슬로를 기반으로 활동하며, ‘페인버킷(Painbucket)’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의 작업은 일러스트레이션과 그래픽 디자인을 오가며 음악과 문화, 상업 디자인의 여러 영역으로 뻗어 있다. 작가의 포트폴리오에서도 코미트 키드의 음반 작업과 함께 다양한 일러스트레이션 및 디자인 프로젝트를 확인할 수 있다.

레미 줄리에뵈(Remi Juliebø) 작품

그의 작업에서 눈여겨볼 점은 하나의 양식을 반복하기보다 프로젝트에 어울리는 표현을 찾는 태도다. 작가의 개성은 유지하되, 그 개성이 음악의 얼굴을 가리지 않도록 한다. 음악이 요구하는 분위기와 이미지의 역할에 따라 표현의 무게중심을 옮기는 것이다.

글로벌 광고대행사 “Carat”본사의 사옥 내부 작업 “Carat Walls”

스케이트보드 문화와 만화, 현대미술, 타이포그래피 등 다양한 시각문화는 그의 작업을 이해하는 단서가 된다. 자유로운 상상력과 디자인의 구성 감각이 만나고, 그림과 문자가 서로의 영역을 넘나든다. 음반 커버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음악을 설명하는 삽화를 넘어, 음악과 나란히 감상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작품이 되는 것이다.

 

그의 관심은 작은 인쇄물에 머물지 않는다. 글로벌 광고대행사 카라트(Carat)의 사옥 내부를 위한 ‘Carat Walls’ 작업처럼, 이미지와 글자를 실제 공간으로 확장하기도 한다. 손에 쥐는 음반과 몸으로 경험하는 공간은 규모가 다르지만, 시각적 표현을 통해 특정한 분위기를 만든다는 점에서 서로 통한다.

 

코미트 키드, 풋풋한 에너지가 번지는 록

코미트 키드(Comet Kid)2015년 앨범 “Forces of Nature”

먼저 들어볼 음반은 코미트 키드의 《Forces of Nature》다. 2012년 오슬로에서 결성된 이 밴드는 포크와 록을 바탕으로 팝과 소울의 요소를 더한 음악을 들려줬다. 

 

2014년 첫 앨범에 이어 이듬해 발표한 《Forces of Nature》는 밴드의 두 번째 앨범이다.

 

멤버는 보컬 안드레아스 쇨(Andreas Kjøll), 기타 알렉산데르 호데비크(Alexander Hoddevik), 드럼 스베인 잉에 비외르케달(Svein Inge Bjørkedal), 베이스 테오도르 페테르손(Theodor Peterson), 키보드 호그네 오스요르드(Hogne Aasjord)로 구성됐다.

코미트 키드(Comet Kid)

코미트 키드의 매력은 듣는 이를 자연스럽게 끌어들이는 친근함에 있다. 포크의 소박한 감촉과 록의 추진력, 팝의 선명한 멜로디가 어우러진다. 소울의 온기까지 더해지면서 음악은 경쾌함과 정서를 함께 품는다.

 

이들의 음악을 처음 접한다면 아래에 소개한 ‘Batman’, ‘Sweet Love’, ‘Sally’를 차례로 들어보길 권한다. 풋풋하고 경쾌한 록 사운드가 귀에 감기는 즐거움을 만날 수 있다. 장르를 세세하게 구분하며 듣기보다, 노래가 이끄는 흐름에 몸을 맡기는 편이 이 밴드와 가까워지는 좋은 방법이다.

 

《Forces of Nature》라는 제목도 흥미롭다. ‘자연의 힘’이라는 말은 거대한 풍경을 떠올리게 하지만, 음악 안에서는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활력으로 읽을 수도 있다. 한 곡의 멜로디가 기분을 바꾸고, 리듬이 몸의 움직임을 끌어내는 순간 말이다. 이 음반은 그렇게 어렵지 않게 다가와 오래 머무는 음악의 힘을 생각하게 한다.

 

다나킬 사파리, 오슬로에서 출발한 뜨거운 리듬의 여행

다나킬 사파리(Danakil Safari)2026년 앨범 “From the Soil”

두 번째 음반은 다나킬 사파리의 《From the Soil》이다. 2026년 발표된 이 데뷔 앨범에는 ‘Inner Struggle’을 비롯한 아홉 곡이 수록돼 있다.

 

밴드 이름은 에티오피아 북부의 다나킬 저지대에서 가져왔다. 화산 활동과 극한의 자연환경으로 알려진 지명은 이들이 지향하는 음악적 상상력과도 맞닿아 있다. 다나킬 사파리는 에티오피아 재즈인 에티오재즈(Ethiojazz)를 출발점으로 삼아 록과 전자음악, 즉흥연주의 요소를 결합한다.

다나킬 사파리(Danakil Safari)

멤버는 트럼펫의 야코브 에리 뮈레(Jakob Eri Myhre), 색소폰과 기타의 에밀 브라테스테드(Emil Brattested), 신디사이저와 타악기의 트룰스 한네뮈르(Truls Hannemyr), 베이스의 안드레아스 뢰들란 하가(Andreas Rødland Haga), 드럼의 토비아스 외르네스 안데르센(Tobias Ørnes Andersen) 등 다섯 명이다.

 

이들이 만드는 음악에서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악기들이 주고받는 움직임이다. 관악기와 리듬 악기, 전자음의 조합은 익숙한 밴드 사운드와는 다른 길을 열어준다. 재즈의 자유로운 호흡 위로 록의 에너지와 클럽 음악의 감각이 스며들 여지가 생긴다.

 

오슬로 재즈페스티벌에서도 이들이 전통적인 에티오재즈 레퍼토리에서 출발해 독자적인 스타일을 발전시켰다는 점을 강조한다. 데뷔 앨범의 여러 곡 역시 스튜디오에서 진행한 자유로운 집단 즉흥연주에서 시작됐다. 정해진 설계를 구현하는 과정과 함께, 연주자들이 서로의 소리에 반응하며 음악을 발견하는 과정이 담긴 셈이다.

 

《From the Soil》, 곧 ‘흙으로부터’라는 제목은 이런 음악을 생각하며 다시 읽게 된다. 흙은 서로 다른 생명이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자리다. 에티오재즈에 뿌리를 둔 음악이 오슬로의 연주자들을 만나 새로운 형태로 성장한다는 점에서, 제목은 이들의 음악을 상상하게 하는 좋은 출발점이 된다.

 

첫 곡 ‘Inner Struggle’을 들을 때도 하나의 멜로디만 따라가기보다 리듬과 악기 사이의 관계에 귀를 기울여보면 좋겠다. 각자의 소리가 어떻게 모이고 흩어지는지, 반복되는 흐름 속에서 무엇이 달라지는지 찾아보는 것이다. 즉흥연주를 즐기는 방법은 그 변화에 함께 반응하는 데 있다.

 

같은 작가, 서로 다른 음악의 입구

코미트 키드와 다나킬 사파리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청자를 끌어들인다. 코미트 키드가 노래의 친근함과 경쾌한 활력으로 다가온다면, 다나킬 사파리는 리듬과 즉흥연주가 열어놓는 공간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그 두 음악의 입구에 레미 줄리에뵈의 커버가 놓여 있다. 같은 작가의 작업이라는 사실을 알고 두 음반을 함께 바라보면, 커버를 감상하는 기준도 달라진다. 비슷한 화풍을 찾는 일에 더해 각각의 음악과 이미지가 어떻게 어울리는지 묻게 된다.

좋은 음반 커버는 음악을 한 가지 의미로 고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듣는 사람의 상상력을 열어둔다. 처음 보았을 때의 인상과 음악을 모두 들은 뒤의 인상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도 음반을 소장하고 감상하는 즐거움이다.

이번에는 커버를 먼저 바라본 뒤 음악을 들어보자. 그리고 마지막 곡이 끝나면 다시 커버로 눈을 돌려보자. 조금 전까지 무심히 지나쳤던 부분이 새롭게 보일지도 모른다. 레미 줄리에뵈의 이름으로 이어지는 두 음반은 그렇게, 눈과 귀가 서로의 감상을 넓혀주는 시간을 마련해준다.

글 ㅣ 최재우 | 문화예술기획 제이비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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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우 칼럼니스트 jaewooart@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