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음반은 음악이 흐르기 전부터 하나의 풍경을 펼쳐 보인다. 재킷을 바라보는 동안 색채와 질감이 먼저 마음에 스며들고, 뒤이어 들려오는 소리가 그 풍경에 움직임을 더한다.

일본 싱어송라이터 마가에 사토미(Magae Satomi)가 2021년 발표한 네 번째 앨범 ‘Hanazono’는 그렇게 눈과 귀가 함께 머무는 음반이다.
‘하나조노’, 곧 꽃밭이라는 이름을 지닌 이 앨범은 자매의 작업이 만난 결과물이다. 동생 사토미가 음악을 만들고, 언니인 조각가이자 목판화 작가 마가에 나츠미(Magae Natsumi)가 앞면 커버의 판화를 맡았다.
재킷에는 초록빛 언덕과 붉고 분홍빛을 띤 꽃들이 펼쳐져 있다. 보랏빛 땅 위로 줄기가 뻗어나가고, 회색빛 하늘에는 잉크가 고르게 덮이지 않은 듯한 질감이 남아 있다. 풍경의 윤곽은 단순하지만, 색이 겹치고 비워진 자리마다 시선이 오래 머문다. 꽃밭은 밝고 화사하면서도 어딘가 고요하다. 사토미의 음악을 소개하는 문턱으로 잘 어울리는 이미지다.

나츠미는 1985년 일본 이바라키현에서 태어났다. 2009년 타마미술대학교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2011년 도쿄예술대학교에서 인터미디어예술 석사과정을 마쳤다. 조각과 목판화를 중심으로 작업해 온 그는 동생의 음반에 자신의 조형 언어를 보탰다.

함께 소개된 나츠미의 2024년 판화에서도 선과 색면, 반복되는 흔적이 눈에 들어온다. 붉은 격자가 굽이치는 언덕처럼 이어지고, 푸른 색면 사이로 가느다란 선이 흐른다. 연두색 선들이 촘촘하게 교차하는 화면은 직물이나 잎맥을 떠올리게 한다. 구체적인 대상을 단정하기보다 형태와 질감의 관계를 따라가게 하는 작품들이다.
이러한 화면을 사토미의 음악과 나란히 놓으면 흥미로운 접점이 드러난다. 판화에서 색과 선이 겹쳐지듯, 음악에서는 기타와 목소리, 노이즈와 환경음이 포개진다. 서로 다른 매체 안에서 작은 흔적들이 모여 하나의 공간을 이룬다.

1989년생인 사토미의 음악적 여정은 중학교 시절 기타를 접하면서 시작됐다. 아버지가 미국에서 가져온 테이프와 CD에 담긴 오래된 델타 블루스는 초기 음악적 관심을 넓혀 준 자양분이었다. 기타로 작곡을 시도하던 그는 컴퓨터를 활용하면서 소리의 재료와 구성 방식을 확장해 나갔다.
대학에서는 분자생물학을 공부하고 밴드에서 베이스기타를 연주했다. 자연과 생물에 대한 관심을 키우는 한편, 앰비언트와 일렉트로닉, 테크노 등 다양한 음악을 접했다. 이후 샘플러를 활용한 솔로 공연을 시작하며 목소리와 기타에 노이즈를 겹쳐 놓는 자신만의 표현을 발전시켰다.
그의 작업을 이해하는 데 인상적인 일화가 있다. 밖에서 울리는 사이렌과 이어폰 속 음악이 우연히 섞이면서 새로운 소리로 들렸다는 경험이다. 음악과 주변 환경이 만나는 순간을 발견한 셈이다. 이 경험은 환경음을 작업 안으로 받아들이는 계기가 됐다.
사토미의 음악에서 주변의 소리는 곡의 바깥에 머물지 않는다. 기타와 목소리 사이에 놓이며 음악의 표정과 거리를 바꾼다. 우리가 일상에서 무심히 흘려보내는 소리도 귀를 기울이는 방식에 따라 하나의 음악적 재료가 될 수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2012년 첫 앨범 ‘awa’를 발표한 그는 2014년 ‘Koko’, 2017년 ‘Kemri’를 거쳐 2021년 ‘Hanazono’를 선보였다. ‘Hanazono’는 RVNG Intl.과 Guruguru Brain이 함께 발매한 작품으로, 그의 음악 세계를 해외 청중에게 넓힌 음반이기도 하다.
이 앨범을 관통하는 것은 기타와 보컬, 노이즈를 섬세하게 엮는 방식이다. 포크의 친밀한 감촉 위에 추상적인 소리의 층이 더해진다. 유기적인 것과 기계적인 것, 개인의 내면과 바깥의 환경이 한 공간에서 만난다. 곡의 형태를 따라가면서도 그 주변에 남는 여백을 함께 살피게 하는 음악이다.
‘꽃밭’이라는 제목은 이런 음악을 바라보는 좋은 단서가 된다. 꽃밭에는 꽃만 있지 않다. 흙과 돌, 바람과 습기, 눈에 잘 띄지 않는 생물들이 함께 살아간다. 사토미의 음악에서도 선율만큼 그 주변을 이루는 작은 소리들이 중요하다. 중심을 조금 비켜선 요소들이 모여 전체의 생기를 만든다.
언니의 판화 역시 꽃의 모양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잉크의 농담과 거친 표면, 색과 색 사이의 틈이 화면을 살아 있게 한다. 동생의 음악과 언니의 그림은 각자의 방식으로 우리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는지 되묻게 한다.
사토미는 이후 2025년 다섯 번째 앨범 ‘Taba’를 발표하며 작업을 이어갔다. 그러나 ‘Hanazono’는 자매의 시각과 청각이 한 장의 음반에서 만났다는 점에서 다시 꺼내 볼 만하다. 커버를 바라보고 음악을 듣다가, 다시 그림으로 시선을 돌리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이 음반을 마주할 때는 서둘러 의미를 붙이지 않아도 좋겠다. 꽃 사이의 빈자리와 색면의 흔적을 살피듯 소리의 겹과 여운에 머물러 보는 것이다. 자매가 완성한 꽃밭은 그렇게 천천히 바라보고 귀 기울일 때 조금씩 넓어진다.
글 ㅣ 최재우 | 문화예술기획 제이비엠 대표
음반 개요
아티스트: 마가에 사토미(Satomimagae)
음반명: Hanazono
발표 연도: 2021년
발매: RVNG Intl. / Guruguru Brain
음악 성격: 앰비언트 포크, 실험적 전자음악
앞면 커버 판화: 마가에 나츠미(Natsumi Magae)
음악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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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우 칼럼니스트 jaewooa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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