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을 듣기 전, 표지 속 얼굴과 먼저 눈이 마주친다. 검은 바탕 위로 떠오른 형상은 물결에 비친 초상처럼 일렁인다. 얼굴과 몸의 경계는 흘러내리고, 밝고 어두운 색채 사이로 붉은 입술과 눈빛이 선명하게 남는다. 익숙한 사람의 모습이면서도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이 초상은 퍼퓸 지니어스(Perfume Genius)의 2022년 앨범 Ugly Season으로 들어가는 첫 번째 문이다.

니카시오 토레스(Nicasio Torres)

이 표지를 작업한 작가는 니카시오 토레스(Nicasio Torres)다. 스페인 카나리아 제도의 라스팔마스에서 태어난 그는 공학과 미술, 사진을 두루 공부하며 자신만의 시각 언어를 길러 왔다. 2002년 라스팔마스대학교에서 토목공학 학사학위를 받은 뒤, 2010년 바르셀로나대학교에서 순수미술 학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바르셀로나 IDEP에서 고급 사진학 과정을 수료하고, 2024년 바르셀로나대학교에서 교사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구조를 다루는 공학에서 출발해 형태와 감각을 탐구하는 미술로 나아간 이력은 흥미롭다. 그러나 그의 그림은 단단한 구조를 드러내기보다 그 구조가 흔들리고 변형되는 순간에 시선을 붙든다. 얼굴은 고정된 윤곽 안에 머물지 않고, 몸은 하나의 형태로 쉽게 정리되지 않는다. 인물을 알아보려 할수록 오히려 그 안의 여러 표정과 감정이 겹쳐 보인다.

 

토레스의 작업을 관통하는 주제는 정체성이다. 끊임없이 달라지는 인물의 모습은 인간이 지닌 가변적인 본성을 드러낸다. 흑백 수채화의 붓놀림과 중성적인 얼굴, 신체에 대한 탐구는 그의 회화적 언어를 이루는 바탕이다. 퀴어 문화의 영향을 받은 시선 역시 인물을 규정된 틀에 가두기보다 다양한 가능성 속에 놓아둔다.

 

그에게 예술은 놀이이자 실험이며 소통의 공간이다. 직관과 본능을 따라 진행되는 작업 속에서 하나의 그림은 또 다른 질문이 된다. 겉으로 보이는 형태와 그 이면에서 움직이는 힘 사이의 긴장,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개인의 감각이 화면에 스며든다. 바르셀로나를 기반으로 회화와 일러스트레이션, 디자인과 패션 분야를 오가며 이어 온 활동은 이러한 탐구의 폭을 넓혀 왔다.

퍼퓸 제니어스(Perfume Genius)2022년 앨범 “Ugly Season”

Ugly Season의 표지에서도 그 특징을 읽을 수 있다. 인물의 윤곽은 녹아내리는 듯하지만 시선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살빛과 회색, 보랏빛이 뒤섞인 화면에서 붉은 입술은 작은 불씨처럼 남아 있다. 낯설고 불안정한 형상은 오래 바라볼수록 연약함과 강렬함을 함께 드러낸다. 아름다움이 반드시 반듯하고 안정된 모습에만 깃드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 이미지에 소리를 입히는 주인공은 미국 아이오와주 디모인 출신의 싱어송라이터 마이클 알든 하드레아스(Michael Alden Hadreas)다. 1981년생인 그는 퍼퓸 지니어스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2010년 데뷔 앨범을 발표했다. 예명은 영화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의 목소리는 음반 표지의 인상과 묘하게 닮아 있다. 분명히 들리면서도 손에 잡히지 않고, 가늘게 흐르면서도 긴 여운을 남긴다. 높은 음역의 미성은 성별에 관한 익숙한 청각적 구분을 잠시 잊게 한다. 목소리를 누구의 것으로 분류하기보다 그 안에 실린 감정과 호흡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이다.

수록곡 Pop Song을 들으면 이러한 매력이 다가온다. 아련하게 속삭이는 듯한 노래는 청자를 서서히 몽환적인 분위기 속으로 이끈다. 선율을 따라가다 보면 일상의 생각으로 가득했던 마음에 작은 여백이 생긴다. 무엇을 서둘러 이해하거나 판단하기보다, 소리가 흘러가는 자리에 잠시 머물게 된다.

 

표지 속 초상이 하나의 모습으로 굳어지지 않듯, 퍼퓸 지니어스의 목소리도 단순한 인상에 머무르지 않는다. 연약하게 들리던 소리는 어느 순간 깊은 존재감을 얻고, 낯설게 느껴지던 음색은 가까운 속삭임처럼 다가온다. 토레스의 그림과 퍼퓸 지니어스의 음악은 그렇게 서로 다른 감각을 통해 변화하는 존재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오늘은 음반 표지를 조금 오래 바라본 뒤 Pop Song을 들어보자. 이어서 Teeth까지 천천히 귀를 기울여도 좋겠다. 일렁이는 얼굴과 그 위로 흐르는 목소리 사이에서, 잠시 근심을 내려놓을 만한 시간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글 ㅣ최재우  문화예술기획 제이비엠 대표

 

음반 개요

음반명: Ugly Season
아티스트: 퍼퓸 지니어스(Perfume Genius)
발표 연도: 2022년
커버 아트: 니카시오 토레스(Nicasio Torres)
음악 감상:
Pop Song, Teeth

최재우 칼럼니스트 jaewooart@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