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을 펼치자 바다가 나타난다. 수평선을 따라 늘어선 범선들, 하늘로 솟은 돛대와 복잡하게 얽힌 밧줄, 포연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함선들이 시선을 붙든다. 비지스가 1971년 발표한 《Trafalgar》의 표지다.

앞뒷면으로 이어지는 해전의 풍경은 음악을 듣기 전부터 한 시대의 이야기 속으로 우리를 이끈다. 이 장대한 바다를 그린 사람은 영국의 해양화가 니콜라스 포콕(Nicholas Pocock, 1740~1821)이다.
음반 개요
음반명: 《Trafalgar》
아티스트: 비지스(Bee Gees)
발표 연도: 1971년
장르: 팝, 팝 록
수록곡: 총 12곡
주요 멤버: 배리 깁, 로빈 깁, 모리스 깁
표지 그림: 니콜라스 포콕의 트라팔가 해전 그림
대표곡: ‘How Can You Mend a Broken Heart’
함께 들을 곡: ‘Dearest’, ‘Remembering’

브리스톨에서 선원의 아들로 태어난 포콕은 자신도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았다. 상선을 지휘했던 그에게 배는 일상과 생업의 공간이었다. 선체의 구조와 돛의 움직임, 바람에 따라 달라지는 항로를 몸으로 익혔고, 항해 중에는 배와 해안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겼다. 그의 해양화가 지닌 설득력은 이러한 관찰과 경험에서 비롯됐다.

포콕은 마흔을 넘긴 무렵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에 들어섰다. 바다에서 쌓은 지식은 화폭에서도 중요한 자산이 됐다. 함선의 외형과 배치, 돛과 밧줄의 세부를 꼼꼼하게 묘사한 작품들은 해군 관계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영국 왕립그리니치박물관은 그의 작품을 설명하면서 선박과 삭구에 대한 깊은 이해, 세부 묘사의 정확성을 주요 특징으로 꼽는다.

그의 그림에는 배를 직접 다뤄본 사람의 시선이 담겨 있다. 바다 위에서 함선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는지, 바람을 받은 돛은 어떻게 펼쳐지는지, 멀리 있는 배는 어떤 모습으로 보이는지를 세심하게 포착한다. 관객은 화폭의 웅장함을 감상하면서도 그 안에 담긴 구체적인 항해의 세계를 만나게 된다.

《Trafalgar》의 표지에는 1805년 트라팔가 해전을 다룬 포콕의 그림이 사용됐다. 음반을 펼치면 앞뒷면으로 이어진 바다와 함선들이 넓은 풍경을 이룬다. 가까운 곳에서는 선체와 돛대의 세부가 눈에 들어오고, 먼 곳에서는 포연과 수평선이 시선을 끌어당긴다. 전투의 긴장감이 화면을 채우는 가운데 하늘은 넓고 아득하게 열려 있다.

이 표지를 바라보며 비지스의 음악을 듣는 경험은 흥미롭다. 거대한 해전의 풍경 위로 사랑과 이별, 기억과 외로움을 품은 목소리가 흐른다. 함선들 사이에 머물던 시선은 노래가 이어질수록 그림 속 작은 공간으로 옮겨간다. 갑판 위의 사람들, 멀어지는 배, 포연 너머의 수평선을 바라보며 그곳에도 누군가의 그리움이 있었으리라 상상하게 된다.
비지스는 배리 깁(Barry Gibb), 로빈 깁(Robin Gibb), 모리스 깁(Maurice Gibb) 삼형제가 함께한 그룹이다. 영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호주에서 음악 활동을 이어간 이들은 1967년 영국으로 돌아온 뒤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각기 다른 음색을 지닌 세 사람은 한 곡 안에서 긴밀한 조화를 이뤘다. 선율을 이끄는 목소리와 그 주위를 감싸는 화음은 비지스의 음악을 오래 기억하게 하는 힘이었다.
비지스라는 이름에서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와 화려한 디스코 리듬을 먼저 떠올리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Trafalgar》에서는 그보다 앞선 시기의 서정적인 비지스를 만날 수 있다. 선율과 목소리, 풍성한 반주가 중심을 이루며 한 곡 한 곡의 감정을 천천히 펼쳐 보인다.
열두 곡을 담은 이 음반은 발라드의 비중이 높다. 첫 곡 ‘How Can You Mend a Broken Heart’는 상처 입은 마음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는지 묻는다. 담담하게 시작한 노래는 목소리가 포개지고 반주가 넓어지면서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이 곡은 비지스의 첫 미국 싱글 차트 1위 곡이 됐으며, 이후 여러 가수에 의해 다시 불렸다.
이번에 함께 들어볼 곡은 ‘Dearest’와 ‘Remembering’이다. 두 곡에는 이 음반의 정서를 차분하게 음미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 목소리의 떨림과 화음이 번지는 순간에 귀를 기울이면 비지스가 감정을 표현하는 섬세함이 전해진다.
‘Dearest’는 소중한 이를 부르는 듯한 제목에서부터 마음을 가까이 끌어당긴다. 부드러운 선율을 따라가다 보면 노래에 스며 있는 쓸쓸함이 차츰 짙어진다. 오래 품었던 말을 조심스럽게 꺼내는 듯한 목소리에는 애틋함이 배어 있다. 그 목소리를 듣는 동안 청자는 저마다 마음속에 간직한 얼굴 하나를 떠올리게 된다.
‘Remembering’에서는 추억을 되짚는 마음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진다. 선율 위로 화음이 겹쳐질 때마다 지나간 시간이 되살아나는 듯하다. 기억 속에서는 여전히 가까운 사람이 현실에서는 멀어져 있을 때, 그 거리를 설명하는 데에는 한 소절의 노래가 잘 어울리기도 한다. 이 곡은 그런 순간에 오래 곁을 지키는 음악이다.
두 곡을 이어 들으면 비지스의 하모니가 지닌 깊이를 새삼 느끼게 된다. 서로 다른 목소리가 만나면서 슬픔은 여러 겹의 표정을 얻는다. 한 목소리에서 외로움이 들린다면, 그 곁에 포개지는 화음에서는 위로가 느껴진다. 이들의 음악이 오랜 시간 사랑받아온 이유를 그러한 순간에서 찾게 된다.
포콕의 바다와 비지스의 노래를 함께 감상하면 음반 표지를 보는 속도도 달라진다. 처음에는 수많은 함선과 웅장한 구도에 눈길이 가지만, 음악이 흐르는 동안 시선은 작은 배와 희미한 수평선, 포연에 가려진 공간에 머문다. 그림은 음악을 듣는 상상을 넓혀주고, 음악은 그림 속에서 미처 보지 못했던 장면을 돌아보게 한다.
《Trafalgar》는 비지스의 목소리가 지닌 서정성을 다시 발견하게 하는 음반이다. 세월이 흐른 뒤에도 선율은 또렷하고 화음에는 온기가 남아 있다. 포콕의 바다를 눈앞에 두고 ‘Dearest’와 ‘Remembering’을 차례로 들어본다. 돛대 사이로 이어진 먼 수평선처럼, 노래가 끝난 뒤에도 그 여운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글 ㅣ 최재우 문화예술기획 제이비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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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우 칼럼니스트 jaewooa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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