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길은 곧 바다를 건넌다. 캐나다 로키산맥과 밴프 국립공원의 호수 연작에는 만년설을 인 거봉과 숨죽인 수면이 마주 선다. 호수에 비친 설산이 위아래로 대칭을 이루는 화면은 풍경이라기보다 명상에 가깝다. 이 연작에는 랍슨 마운틴, 루이스 호수, 미네완카와 투잭 호수 등이 담겼다.
붉은 사암 협곡은 분위기를 바꾼다. 브라이스캐니언과 앤틸로프캐니언의 불타는 암벽 사이로 좁고 선명한 푸른 하늘이 갈라져 들어온다. 사선으로 겹겹이 쌓인 그랜드캐니언의 대지는 수억 년의 시간을 한눈에 펼쳐 보인다. 여정의 끝에서는 남미의 산과 이과수폭포가 압도적인 규모로 물을 쏟아낸다. 흰 물보라가 화면을 가득 채워, 자연이 지닌 원초적 생명력이 그대로 전해진다.
조광기의 작품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청색이다. 하늘에서 산자락으로 이어지는 짙고 옅은 푸름의 겹은 공간의 깊이를 만들고, 그 사이에 비워 둔 여백은 보는 이가 머물 자리를 내어준다.
지리산 162x130cm 혼합재료 2022
작가는 서양화의 재료와 표현 방식 위에 한국 산수의 정신성을 얹어 왔다. 이번 출품작 가운데에는 돌가루와 안료, 황토와 안료, 혼합재료로 완성한 작품이 많다. 한지 위에 돌가루와 안료를 얹은 폭포 작품에서는 암벽의 거친 질감이 화면 속에서 손에 잡힐 듯 살아난다.
이렇게 표현된 자연은 눈앞의 풍경을 옮겨 놓은 데서 그치지 않는다. 산과 물을 바라보던 관람객이 어느 순간 그 안에 비친 자기 자신과 마주하게 되는 것이 작품의 힘이다.
"자연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서로 다른 대륙의 풍경은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자연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으며, 인간은 그 질서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토왕성폭포 50호변형 혼합재료 2026
'무위자연'은 인위적 욕망과 억지스러운 개입을 내려놓고 만물 본래의 질서와 흐름을 따르는 삶의 태도를 뜻한다. 조광기에게 자연은 재현의 대상이 아니라 사유의 공간이다. 자연을 지배하거나 소유하려는 시선에서 벗어나 그와 함께 호흡하며 삶의 본질을 돌아보겠다는 뜻이 전시 제목에 담겼다. 자연에게 길을 묻는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 삶의 방향을 묻는 일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는 약 80점의 작품으로 오랜 시간 쌓아 온 자연 관찰과 세계 곳곳을 다닌 경험, 동양 철학에 대한 사유를 한자리에 모은다. 빠르게 변하고 끊임없이 성취를 요구받는 시대에, 관람객에게 잠시 걸음을 멈추고 자연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라고 권하는 자리다.
서른 해 넘게 이어진 같은 질문
'자연에게 길을 묻다'는 이번 전시를 위해 처음 쓴 제목이 아니다. 작가는 2010년 '자연에게 길을 묻다 Ⅰ'을 선보인 이후 같은 제목을 이어 왔다. 2015~2016년 '자연-순환(上善若水)', 2020~2021년 '청산사유', 2024년 '신들의 정원에 들다'처럼 부제를 바꿔 가며 자연이라는 한 주제를 파고들어 왔다. 2023년에는 '화첩기행'이라는 이름으로 길 위의 기록을 풀어놓기도 했다. 올해 한국미술재단과 갤러리 카프에서 연 40회 개인전에 이어 이번 41회 개인전으로 이 여정을 이어 간다.
전시포스터
전시 개요
전시명: 조광기 개인전 《자연에게 길을 묻다》
부제: 무위자연(無爲自然)
기간: 2026년 11월 13일(금)~11월 25일(수)
장소: 혜화아트센터 전관 (서울 종로구 대학로 156)
출품작: 약 80점
주요 작품: 지리산·설악산·북한산 등 한국의 산과 폭포, 캐나다 로키산맥·밴프 국립공원의 호수, 미국 서부의 협곡·그랜드캐니언, 남미의 산·이과수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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