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음악을 듣다 보면 소리를 만들어낸 기계보다 그 기계를 다루는 사람의 감각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순간이 있다. 반복되는 리듬 사이의 미묘한 변화, 예상하지 못한 소리의 등장, 흐름을 잠시 비워두는 여백에서다. 작곡과 연주뿐 아니라 편집과 더빙, 믹싱까지 창작의 일부로 삼는 제레미아 치우(Jeremiah Chiu)의 음악은 그러한 순간을 생각하게 한다.
이번에 소개할 음반은 2026년 10월 9일 발표된 ‘Edge Conditions’다. 대만계 미국인 음악가이자 그래픽 디자이너인 치우의 작업을, 커버를 맡은 시각예술가 코리 마틴(Korey Martin)의 세계와 함께 들여다본다. 일상의 사물을 관찰하는 눈과 주변 환경에 귀 기울이는 태도가 한 장의 음반에서 만난다.
코리 마틴, 익숙한 사물에서 발견하는 낯선 표정

1989년 미국 테네시주 쿠크빌에서 태어난 코리 마틴은 시카고예술대학에서 공부하고 드로잉과 일러스트레이션을 중심으로 활동해 왔다. 색연필로 종이 위에 인물과 풍경을 그리는 그의 관심은 멀리 있는 특별한 대상보다 가까운 일상에 머문다. 오래된 물건과 거리의 풍경, 사람들의 생활 흔적이 작품의 소재가 된다.

마틴의 그림은 정확한 원근법이나 사실적인 재현에 얽매이지 않는다. 조금 비뚤어진 형태와 생략된 윤곽, 반복되는 선이 화면에 독특한 리듬을 만든다. 친숙한 사물에 유머를 더하고, 반복과 변형을 통해 기대했던 모습과 실제로 마주한 모습 사이의 간격을 드러낸다.

그의 드로잉에서 불완전함은 대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표현 방식이다. 반듯하게 정리되지 않은 선은 사물의 특징을 오히려 생생하게 전하며, 보는 이가 자신의 기억과 경험을 보태도록 이끈다. 익숙한 물건도 그의 시선을 거치면 처음 보는 듯한 표정을 얻는다.

일본 라이프스타일 잡지 ‘POPEYE’에 글과 일러스트레이션을 기고한 그는 미국 독립 음악 레이블 인터내셔널 앤섬(International Anthem)의 음반 커버와 애니메이션 작업에도 참여했다. 대상을 관찰하고 선으로 옮기며 관계를 발견하는 그의 작업은, 소리를 반복하고 변형하며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음악과 자연스럽게 맞닿는다.
클래식에서 즉흥연주와 전자음악으로

제레미아 치우(Jeremiah Chiu) 10월 9일 앨범 발매 공지
제레미아 치우의 음악적 출발점은 클래식이었다. 시카고에서 태어난 그는 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웠으며, 학교와 지역 청소년 오케스트라에서 연주 경험을 쌓았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기타와 베이스를 익히고 펑크 밴드 활동에 참여하면서 음악적 관심을 넓혔다.
이후 포스트록과 재즈, 전자음악과 즉흥연주를 받아들이며 독자적인 작업 세계를 형성했다. 아날로그 신시사이저와 전자적 리듬에 대한 관심은 1970년대 독일 실험음악으로도 이어졌다. 악보를 따라 연주하는 경험 위에 소리의 구조를 직접 만들고 변화시키는 탐구가 더해진 것이다.
그는 시카고의 아티스트 공동체에서 여러 그룹과 함께 활동했으며, 2014년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한 뒤 전자음악 작업에 더욱 집중했다. ‘코스믹 선’이라는 이름으로 2015년 ‘Moon Surf’를, 2018년에는 카세트와 책으로 구성한 ‘Song Send Poem’을 발표했다.
협업 역시 그의 음악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타카코 미네카와와 작업한 ‘Time You Can Change’, 비올리스트 마르타 소피아 호너와 함께한 2022년 음반 ‘Recordings from the Åland Islands’는 다른 연주자와 환경을 만나며 확장되는 그의 음악을 보여준다. 2023년에는 인터내셔널 앤섬을 통해 솔로 음반 ‘In Electric Time’을 선보였다.
이어 애나 버터스, 부커 스타드럼, 그레고리 울만, 조쉬 존슨과 즉흥연주 그룹 SML을 결성하고 ‘Small Medium Large’를 발표했다. 개인의 소리와 집단의 호흡을 오가는 경험은 그의 전자음악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실마리다.
환경 속에서, 환경과 함께 만드는 음악

치우는 아날로그·디지털 신시사이저와 샘플러, 컴퓨터를 조합해 음악을 만든다. 그러나 그의 관심이 장비와 기술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현장 녹음과 야외 공연, 로스앤젤레스의 ‘리빙 어스(Living Earth)’ 프로그램 참여 등에서 드러나듯 주변 환경은 작업의 중요한 일부다.

바람과 새소리, 장소에 따라 달라지는 울림, 시간이 흐르며 변하는 분위기는 창작에 새로운 가능성을 더한다. 환경 속에서 작곡하는 동시에 환경과 함께 작곡한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이유다. 전자음악의 정교한 구조 안으로 우연과 변화가 들어오면서 소리는 한층 유기적인 흐름을 얻는다.
그래픽 디자이너로서의 활동도 이러한 관심과 연결된다. 디자인 스튜디오 ‘Some All None’의 설립자인 그는 음악과 이미지, 언어와 시스템, 지각의 관계를 여러 방식으로 탐구해 왔다. 온라인 라디오 더블랩(Dublab)의 레지던트 DJ이자 교육자로 활동하며, 음반 아트워크와 전시·출판·설치 작업 등으로 표현의 영역을 넓혔다.
그에게 시각예술과 음악은 서로 떨어진 분야라기보다 감각을 조직하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다가온다. 이미지를 배치하고 여백을 만드는 일, 소리를 겹치고 흐름을 조절하는 일에는 선택과 관계에 대한 세심한 판단이 필요하다.
AI 시대에 다시 듣는 창작의 과정
‘Edge Conditions’를 들으며 생각하게 되는 것은 전자음악에도 사람의 호흡과 손길이 깊이 스며들 수 있다는 점이다. 어떤 소리를 선택하고, 얼마나 반복하며, 어느 지점에서 변화를 줄 것인가. 창작자의 감각은 연주뿐 아니라 편집과 더빙, 믹싱의 과정에도 남는다.
AI가 짧은 시간 안에 음악을 만들어내는 시대일수록, 우리는 완성된 결과와 함께 그 음악에 담긴 관찰과 선택의 과정에도 귀를 기울이게 된다. 자연과 주변의 소리를 받아들이고, 우연한 순간에 반응하며, 자신만의 시간으로 구성하는 행위는 창작자의 경험을 드러낸다.
코리 마틴이 자유로운 선으로 일상의 사물을 다시 보게 한다면, 제레미아 치우는 전자적 소리의 흐름으로 주변 세계를 다시 듣게 한다. 한 사람은 눈앞의 사물에서, 다른 한 사람은 귀에 닿는 소리에서 새로운 관계를 발견한다.
이 음반은 기계로 만들어지는 음악 안에서도 인간의 감각이 어떻게 살아 움직이는지 생각하게 한다. 소리의 결을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기술의 정교함과 함께, 그 안에서 선택하고 반응하는 한 예술가의 존재를 만나게 된다.
글 ㅣ 최재우 | 문화예술기획 제이비엠 대표
음반 개요
음반명: Edge Conditions
음악가: 제레미아 치우(Jeremiah Chiu)
발매일: 2026년 10월 9일
레이블: 인터내셔널 앤섬(International Anthem)
음악 분야: 전자음악·실험음악
커버 아티스트: 코리 마틴(Korey Martin)
감상곡
https://www.youtube.com/watch?v=up-Zfw80x3U
Jeremiah Chiu - Plastic Mind / Elastic Machines
https://www.youtube.com/watch?v=qWiBwP8LyC4
Jeremiah Chiu - Non-narrative 시카고 라이브
https://www.youtube.com/watch?v=H3XpKV8_geQ
Jeremiah Chiu - Doub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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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kanlimmtaik/224460791405
최재우 칼럼니스트 jaewooa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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