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위에 한 여인이 누워 있다. 살짝 벌어진 입술과 하늘을 향한 두 손, 수면으로 퍼지는 옷자락 사이로 꽃들이 떠간다. 강둑의 풀과 나뭇잎은 생명으로 가득하지만, 그 한가운데 놓인 여인은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다.

아름다운 자연과 비극적인 운명이 한 화면 안에서 만나는 그림,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 1829~1896)의 ‘오필리아(Ophelia)’다.
이번에 소개할 음반은 이 작품을 표지에 담은 일본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 제라드(Gerard)의 두 번째 앨범 ‘Empty Lie, Empty Dream’이다. 1851~1852년 영국에서 그려진 회화와 1985년 일본에서 발표된 음악이 한 장의 음반에서 마주한다. 그림을 바라보며 음악을 듣는 순간, 시대와 지역의 거리는 감상의 또 다른 즐거움이 된다.

밀레이는 영국 사우샘프턴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열한 살에 왕립 아카데미 학교에 입학한 그는 일찍부터 촉망받는 화가였다. 이후 윌리엄 홀먼 헌트,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와 함께 라파엘 전파의 출발을 이끌며 자연에 대한 세밀한 관찰과 문학적 상상력을 회화에 담았다.


그의 초기 작품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화면 곳곳을 채우는 정교한 묘사다. 인물만을 강조하기보다 주변의 식물과 사물에도 충분한 시선을 기울인다. 작은 잎사귀와 꽃 한 송이까지 의미를 품은 듯 그려내는 방식은 관람자가 그림 앞에 오래 머물도록 한다.
‘오필리아’는 이러한 밀레이의 특징이 집약된 대표작이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에 등장하는 오필리아의 죽음을 소재로 삼았다. 아버지를 잃고 정신적 혼란에 빠진 오필리아가 물에 빠져 죽음에 이르는 장면은 극중 무대 위에서 직접 펼쳐지지 않는다. 왕비 거트루드가 전하는 이야기를 통해 관객에게 전달된다. 밀레이는 그 언어의 장면을 회화의 공간으로 옮겼다.
그림 속 오필리아는 아직 무언가를 노래하는 듯하다. 몸은 물에 잠겨가지만 얼굴과 손은 수면 위에 남아 있다. 그 짧은 순간이 화면 안에 붙들려 있다. 관람자는 이미 비극의 결말을 알고 있으면서도, 눈앞의 고요한 풍경 때문에 쉽게 시선을 거두지 못한다.
주변에 배치된 꽃과 식물은 이 장면의 정서를 더욱 깊게 한다. 밝은 꽃잎은 여인의 창백한 얼굴과 어우러지고, 짙은 녹음은 몸을 둘러싼다. 자연은 여전히 싱그럽지만 한 인간의 생명은 사라져간다. 화면의 아름다움이 짙어질수록 그 안의 슬픔도 선명해진다.
밀레이의 회화는 문학의 줄거리를 시각적으로 설명하는 데서 더 나아간다. ‘오필리아’에는 상실과 연약함,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느끼는 불안이 함께 담겨 있다. 세밀한 자연 묘사는 현실감을 높이면서도, 전체 장면을 꿈처럼 낯설게 만든다.
밀레이는 이후 초상화와 풍경화 등으로 작업을 넓혀 당대의 명성을 얻었다. 초기의 라파엘 전파 양식에서 변화한 후기 작품을 두고 평가는 엇갈렸지만, 그의 긴 작업 여정은 한 화가가 시대와 관계 맺으며 자신의 표현을 확장해간 과정이기도 하다. 1896년에는 왕립 아카데미 회장으로 선출됐으며, 같은 해 생을 마쳤다.
이제 그림에서 음반으로 시선을 옮겨보자. 제라드는 키보디스트 에가와 도시오(Toshio Egawa)를 중심으로 결성된 일본 록 그룹이다. 에가와는 노벨라(Novela)에서 활동한 뒤 기타와 보컬의 후지무라 유키히로, 베이스의 우오타니 야스마사, 드럼의 다니모토 마사키와 함께 제라드의 음악을 만들어갔다.

1985년 발표한 ‘Empty Lie, Empty Dream’은 프로그레시브 록의 구성미와 하드 록의 힘을 함께 품은 음반이다. 키보드를 중심으로 기타와 리듬 악기가 맞물리며, 곡의 전개를 따라 극적인 분위기를 형성한다. 음반을 발표한 킹레코드 역시 이 작품을 연주 기량과 변화무쌍한 구성이 어우러진 두 번째 앨범으로 소개한다.

이러한 음악을 ‘오필리아’와 함께 마주하면 감상의 방향이 넓어진다. 그림은 한순간을 멈춰 세우고, 음악은 시간을 따라 움직인다. 화면 속에서는 여인의 운명이 정지해 있지만, 음악을 듣는 동안 그 장면을 바라보는 우리의 감정은 계속 달라진다. 꽃과 물결에 머물던 시선이 얼굴과 손으로 옮겨가고, 아름다움으로 다가왔던 풍경에 서서히 비극의 무게가 더해진다.
앨범 제목인 ‘Empty Lie, Empty Dream’ 역시 그림과 함께 여러 생각을 불러온다. 헛된 거짓과 공허한 꿈이라는 말에서 상실과 허무를 떠올릴 수 있다. 이를 ‘오필리아’와 연결해 읽는 것은 감상자의 해석이다. 다만 이루어지지 못한 바람과 무너진 세계의 이미지는 그림과 음악 사이를 오가게 하는 하나의 실마리가 된다.
이번 음반 감상은 ‘The Acts of the Apostles’와 ‘Future’를 길잡이 삼아 들어보아도 좋겠다. 먼저 표지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바라보고, 이어 꽃과 수면, 옷자락과 표정으로 시선을 옮겨보자. 음악이 흐르는 동안 같은 그림에서 조금씩 다른 정서를 발견할 수 있다.
음악을 듣는 데 언어가 반드시 첫 번째 조건이 되는 것은 아니다. 목소리의 결, 악기의 울림, 긴장과 이완을 만들어내는 흐름만으로도 마음에 닿는 순간이 있다. 그림 역시 설명을 모두 이해하기 전부터 우리에게 말을 건다.
밀레이의 ‘오필리아’와 제라드의 ‘Empty Lie, Empty Dream’은 그렇게 눈과 귀를 함께 열어주는 한 장의 음반이다. 물 위에 머문 비극을 바라보며 음악을 듣는다. 그림은 그대로인데, 음악이 끝났을 때 그 장면을 바라보는 마음은 처음과 조금 달라져 있다.
글 ㅣ최재우 문화예술기획 제이비엠 대표
음반 개요
음반명: Empty Lie, Empty Dream
일본 발매명: 虚実の城
아티스트: 제라드(Gerard)
발표 연도: 1985년
음반 구분: 두 번째 정규 앨범
장르: 프로그레시브 록·프로그레시브 하드 록
레이블: 킹레코드·넥서스(King Records·Nexus)
주요 멤버: 에가와 도시오(키보드), 후지무라 유키히로(보컬·기타), 우오타니 야스마사(베이스), 다니모토 마사키(드럼)
커버 작품: 존 에버렛 밀레이, ‘오필리아(Ophelia)’
작품 제작: 1851~1852년
감상곡: The Acts of the Apostles, Fu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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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우 칼럼니스트 jaewooa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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