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전자의 몸체에서 얼굴이 나타나고, 길게 뻗은 사물의 형태가 코가 된다. 손잡이는 귀처럼 자리하고, 서로 다른 물건의 윤곽이 만나 저마다 다른 표정을 만든다. 익숙한 생활용품을 떠올리게 하는 형상들은 어딘가 우스꽝스럽다가도, 오래 바라보면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을 드러낸다. 최지민 작가가 흙으로 빚어낸 얼굴들이다.

최지민 작가의 개인전 《SELF-PORTRAIT : 버리지 못해 텅 비어버린》이 오는 11월 4일부터 9일까지 서울 종로구 갤러리 에이치오엠(Gallery hoM)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살아오며 쌓아온 기억과 감정, 관계와 역할의 흔적을 일상의 사물에 투영하며 자신을 다시 바라보는 자리다.

전시의 출발점에는 하나의 역설이 놓여 있다. 많은 것을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까지 충만하게 채워져 있음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미 지나간 기억을 놓지 못하고,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떤 감정과 관계를 붙잡고 살아가는 동안, 오히려 그 안에서 비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버리지 못해 텅 비어버린’이라는 제목은 이처럼 축적과 공허가 함께 존재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이번 전시는 2025년 《SELF-PORTRAIT : 그때는 알고 지금은 모른다》에서 시작한 자기 탐색을 이어간다. 앞선 작업에서 던진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은 이제 ‘나는 무엇을 붙잡고 살아왔는가’라는 질문으로 옮겨간다.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려던 시선이 지금의 자신을 이루고 있는 시간과 흔적을 들여다보는 방향으로 확장된 셈이다.

최 작가는 채반과 플라스틱 통, 빗자루 등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물의 형태를 흙으로 다시 만든다. 실제 생활용품을 그대로 조립하는 대신, 그 형태를 흙으로 옮긴 뒤 이어 붙이고 쌓고 비틀면서 새로운 형상을 만들어간다. 본래의 쓰임에서 벗어난 형태들은 서로 관계없던 다른 형태와 만나 낯선 얼굴로 바뀐다.
그 과정은 미리 정해놓은 얼굴을 재현하는 방식과 거리가 있다. 손의 움직임과 순간적인 선택을 따라 형상이 만들어지고, 어느 순간 눈과 코, 입을 연상시키는 구성이 드러난다. 사물로 보이던 것이 얼굴이 되고, 얼굴로 읽히던 것이 다시 사물로 돌아가는 사이에서 관객의 시선도 움직인다.

작품에 나타난 회녹색과 황색 계열의 표면, 짙은 흔적이 남은 질감은 이러한 낯섦을 더한다. 비대칭으로 놓인 눈과 길게 돌출된 코, 기울어진 입은 하나의 감정으로 단정하기 어려운 표정을 만든다. 익살과 피로, 무심함과 쓸쓸함이 보는 이의 경험에 따라 다르게 읽힐 수 있는 얼굴들이다.

여러 형태가 하나의 얼굴 안에 공존하는 모습은 한 사람이 살아가며 맡는 다양한 역할과도 연결된다. 작업하는 자신, 엄마이자 딸인 자신, 여성으로 살아가는 자신, 그리고 타인의 시선 속에서 만들어진 자신이 겹쳐 지금의 한 사람을 이룬다. 어느 하나만으로 온전하게 설명할 수 없는 삶의 모습이 서로 다른 사물의 결합을 통해 드러난다.
최 작가에게 자화상은 외모를 닮게 만드는 작업보다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에 가깝다. 살아오며 축적한 것들을 꺼내 보고, 낯선 방식으로 다시 연결하면서 익숙하다고 믿었던 자신을 새롭게 마주하는 일이다.
작가는 전시 글에서 “나는 여전히 나 자신에 대해 알고 싶다”고 밝힌다. 이어 자신이 만든 얼굴에 대해 나를 닮은 듯하면서도 낯설고, 때로는 전혀 다른 누군가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작품 속 얼굴은 작가 개인의 자화상이면서, 관객이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비춰볼 수 있는 열린 형상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작품의 의미는 하나의 해석으로 고정되지 않는다. 누군가는 익숙한 생활용품을 먼저 발견하고, 다른 누군가는 그 안에서 사람의 표정과 감정을 읽는다. 같은 형상을 앞에 두고도 서로 다른 이야기가 떠오르는 순간, 작가의 자화상은 관객 각자의 삶으로 이어진다.

최지민 작가는 개인전 15회를 비롯해 다양한 기획전과 단체전에 참여해 왔다. 2026년에는 ‘초록은 동색’, ‘GO·STOP·BACK·ING-취약함과 연약함’, ‘가까운 듯 먼, 먼 듯 가까운’, 한국·캐나다 도예초대전, 천개의 사발전 등에 참여했다. 박준용예술문화상과 강릉미술 청년작가상을 수상했으며,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 대한민국 현대도예공모전 우수상, 청주 국제공예비엔날레 은상 등의 수상 경력을 갖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최 작가는 완성된 자신을 선언하기보다 여전히 자신을 알아가는 시간을 펼쳐 보인다. 버리지 못한 것과 이미 사라진 것, 채워진 것과 비어 있는 것 사이에서 빚어진 얼굴들은 관객에게도 같은 질문을 건넨다.
무엇을 붙잡고 살아왔으며, 그 많은 것들 사이에 지금 어떤 자신이 남아 있는지를?

전시 개요
전시명: 최지민 개인전 《SELF-PORTRAIT : 버리지 못해 텅 비어버린》
작가: 최지민
기간: 2026년 11월 4일(수)~11월 9일(월)
장소: 갤러리 에이치오엠(Gallery hoM)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 124-1, 1층
관람시간: 오전 11시~오후 7시
전시내용: 일상 사물의 형태를 흙으로 재구성해 기억과 감정, 관계와 역할을 탐색하는 자화상
문의: 02-720-6243
KANN 블로그 바로가기
https://blog.naver.com/kanlimmtaik/224457707641
임만택 기자 dream-kaz@daum.net





댓글을 불러오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