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을 듣기 전, 표지 앞에서 잠시 눈길이 머문다. 깊은 푸른색을 배경으로 고개를 숙인 한 사람의 옆얼굴이 떠오른다. 얼굴을 물들이는 노란빛과 머리카락을 따라 흐르는 보랏빛, 물결처럼 겹겹이 이어지는 선들이 인상적이다. 정지된 초상이지만 화면 속 색채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듯하다. 기타의 현을 타고 번져 나가는 울림이 그림 속으로 스며든 것만 같다.

헝가리 출신 재즈 기타리스트 가보르 사보(Gabor Szabo, 1936~1982)의 ‘Live in Cleveland 1976’이다. 한 음악가가 남긴 공연의 순간과 그 음악을 시각적으로 되살린 작가의 감각이 한 장의 음반 안에서 만난다.
이 음반의 아트워크와 레이아웃은 안톤 보그다노프(Anton Bogdanov)가 맡았다. 러시아의 배우이자 영화감독인 동명의 인물과는 다른 시각예술가다. 러시아에서 회화와 그래픽을 공부하고 에르미타주 박물관에서 일한 경력을 지녔으며, 아르메니아 예레반을 기반으로 미술과 디자인 분야에서 활동해 왔다.
보그다노프의 표지는 인물의 외형을 전달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머리카락을 이루는 유려한 선들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흐르다가 하나의 얼굴을 완성한다. 따뜻한 얼굴빛과 차가운 배경색이 맞물리면서 화면에는 고요함과 생동감이 함께 자리한다. 재즈의 즉흥연주가 일정한 흐름 속에서 예상하지 못한 길을 열어 가듯, 표지의 선과 색도 보는 이의 시선을 자유롭게 이끈다.
촘촘하게 쌓인 색채와 질감은 이 음반이 품은 시간과도 잘 어울린다. 오래전 공연장에서 울렸던 소리가 세월을 건너 다시 들려오는 음반인 만큼, 표지 역시 기억을 천천히 더듬게 하는 회화적 분위기를 지닌다. 눈을 감고 있는 듯한 사보의 모습에서는 자신의 소리에 깊이 귀 기울이는 연주자의 내면이 느껴진다.

가보르 사보는 1936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나 열네 살 무렵 기타를 잡았다. 1956년 헝가리 혁명 이후 미국으로 건너갔으며, 보스턴의 버클리 음악대학에서 공부했다. 고향에서 익힌 음악적 감수성은 미국에서 만난 재즈와 어우러져 그만의 연주 언어를 이루는 바탕이 됐다.
1961년에는 드러머 치코 해밀턴(Chico Hamilton)의 밴드에 합류했다. 색소포니스트 찰스 로이드(Charles Lloyd)도 함께했던 이 시기의 경험은 사보가 자신의 소리를 넓혀 가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이후 개리 맥파랜드(Gary McFarland) 등 여러 음악가와 협업하며 재즈와 팝, 다양한 지역의 음악적 요소를 오가는 활동을 이어 갔다.
그의 이름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곡이 ‘Gypsy Queen’이다. 1966년 발표한 ‘Spellbinder’에 수록된 이 곡은 카를로스 산타나(Carlos Santana)가 ‘Black Magic Woman/Gypsy Queen’에 접목하면서 더욱 널리 알려졌다. 사보의 음악이 재즈 애호가들의 감상 영역을 넘어 록 음악의 청중에게까지 이어진 대표적인 사례다.
사보의 매력은 서로 다른 음악을 자신의 감각으로 엮어 내는 데 있다. 헝가리의 음악적 뿌리와 재즈의 즉흥성, 집시 음악과 인도 음악에서 얻은 영감이 그의 기타 안에서 만난다. 익숙한 선율을 연주할 때에도 그만의 음색과 리듬 감각이 더해지면 곡은 새로운 표정을 얻는다.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러한 태도는 그의 음악을 오늘 다시 듣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Live in Cleveland 1976’은 1976년 8월 17일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의 아고라 볼룸에서 녹음한 공연을 담고 있다. 당시의 연주를 간직한 음원은 세월이 흐른 뒤 마스터링을 거쳐 2022년 음반으로 발매됐다. 사보가 세상을 떠난 지 40년이 되는 해에 그의 공연을 다시 만날 수 있게 된 셈이다.
음반에는 ‘It Happens’, ‘Autumn Leaves’, ‘Magical Connection’, ‘Concorde (Nightflight)’가 수록돼 있다. 뒷면에는 곡명과 작곡가의 이름이 간결하게 정리돼 있고, 이를 둘러싼 원형 장식 안으로 앞면의 유려한 색채가 이어진다. 표지와 뒷면이 하나의 시각적 흐름을 이루며 음악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만든다.
첫 곡 ‘It Happens’는 베이시스트 토니 듀마스(Tony Dumas)의 작품이다. 이어지는 ‘Autumn Leaves’는 재즈를 즐겨 듣지 않는 이들에게도 익숙한 곡이다. 수많은 연주자가 다뤄 온 선율이기에 오히려 연주자 고유의 감각이 어떻게 드러나는지 귀 기울이게 된다. 익숙함 속에서 차이를 발견하는 즐거움이 이 곡을 듣는 또 하나의 이유다.
존 세바스찬(John Sebastian)의 ‘Magical Connection’과 사보 자신의 작품 ‘Concorde (Nightflight)’는 그가 관심을 두었던 음악의 폭을 보여 준다. 다른 작곡가의 작품과 자신의 곡을 함께 놓은 구성은 해석자이자 창작자였던 사보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라이브 음반을 듣는 즐거움은 완성된 곡뿐 아니라 음악이 만들어지는 순간을 만나는 데 있다. 공연장에서는 연주자들이 서로의 소리에 반응하고, 그날의 호흡에 따라 음악의 흐름이 달라진다. 음반에 남은 소리는 지나간 시간을 기록하면서도 재생되는 순간 다시 현재가 된다. 이 음반 역시 1976년의 무대를 오늘의 감상 공간으로 불러온다.
사보는 1982년 2월 26일, 마흔여섯 번째 생일을 얼마 앞두고 세상을 떠났다. 짧은 생애였지만 그가 남긴 음악은 후대의 기타리스트와 청중에게 계속 전해지고 있다. 뒤늦게 공개된 공연 음반은 이미 알려진 그의 작품들 곁에서 또 하나의 목소리가 된다.
다시 표지를 바라본다. 푸른 배경 속 옆얼굴을 따라 흐르는 선들이 조금 전과 다르게 다가온다. 처음에는 머리카락의 무늬로 보였던 곡선이 이제는 기타의 여운처럼 느껴진다. 보그다노프의 그림을 눈으로 더듬고 사보의 연주를 귀로 따라가다 보면, 한 장의 음반을 감상하는 시간이 조금 더 깊어진다.
오래전 무대에서 울린 기타는 그렇게 다시 우리 곁에 도착한다.
최재우 | 문화예술기획 제이비엠 대표

앨범 개요
음반명: Live in Cleveland 1976
아티스트: 가보르 사보(Gabor Szabo)
장르: 재즈
발매연도: 2022년
레이블: Ebalunga!!!
발매 형식: LP·CD
녹음일: 1976년 8월 17일
녹음 장소: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아고라 볼룸(Agora Ballroom)
기타 연주: 가보르 사보
원녹음 프로듀서: 행크 로콘티(Hank LoConti)
녹음 엔지니어: Arnie Rosenberg, Jim Hillenbrand, Ken Tomsick
마스터링: 제시카 톰프슨(Jessica Thompson)
아트워크·레이아웃: 안톤 보그다노프(Anton Bogdanov)
수록곡
It Happens — Tony Dumas
Autumn Leaves — Joseph Kosma, Jacques Prévert, Johnny Mercer
Magical Connection — John Sebastian
Concorde (Nightflight) — Gabor Sza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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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우 칼럼니스트 jaewooa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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