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12월, 프랑스 노르망디의 작은 마을 지베르니.

여든여섯 살의 클로드 모네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림과 함께했다. 노년의 모네에게 백내장은 화가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이었다. 색과 형태를 분명하게 인식하기 어려울 정도로 시력이 크게 손상됐지만, 그는 그림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흐릿해진 시야 속에서 자신이 느끼는 빛과 색을 더욱 집요하게 캔버스에 옮겼다. 그에게 그림은 단순한 직업이 아니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었고,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이름을 넘어 바라본 세상
우리는 사물을 보면서 동시에 그것의 이름을 떠올린다. 나무를 보면 ‘나무’, 사과를 보면 ‘사과’, 강을 보면 ‘강’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이름을 붙이는 순간 우리는 그것을 안다고 믿는다. 그러나 모네가 바라본 세상은 달랐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대상의 이름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그 대상 위에 내려앉은 빛이었다. 하나의 나무도 아침과 정오, 저녁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맑은 날과 흐린 날이 달랐고, 봄과 겨울의 색도 같지 않았다. 모네에게 사물의 색은 고정되어 있지 않았다. 빛이 변하면 색도 변했고, 색이 변하면 세상도 새로운 얼굴을 드러냈다.
그래서 그는 같은 대상을 반복해서 그렸다.
건초더미와 포플러 나무, 루앙 대성당을 여러 차례 그린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대상은 하나였지만 빛은 매 순간 달랐다. 모네는 바로 그 찰나의 변화를 붙잡고 싶어 했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한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우리는 과연 세상을 제대로 보고 있는가.
어쩌면 우리는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 많은 것을 더 이상 바라보지 않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가난과 조롱 속에서 시작된 새로운 미술
모네의 삶이 처음부터 빛으로 가득했던 것은 아니다. 1840년 파리에서 태어난 그는 노르망디 르아브르에서 성장했다. 젊은 시절 화가 외젠 부댕을 만나 야외에서 직접 자연을 관찰하며 그림을 그리는 방법을 배웠다. 이 경험은 훗날 그의 예술 세계를 결정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다.
모네는 르누아르, 시슬레, 바지유 등 젊은 화가들과 교류하며 기존 아카데미 회화와는 다른 길을 모색했다. 그들은 작업실 안에서 만들어진 이상적인 풍경보다 실제 햇빛 아래에서 순간순간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을 그리고자 했다.
그러나 그들의 그림은 당시 미술계에서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874년 열린 첫 인상주의 전시에서 모네는 <인상, 해돋이>를 출품했다. 비평가 루이 르루아는 이 작품의 제목을 빌려 그들의 그림을 조롱하며 ‘인상주의자’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처음에는 비판과 조롱의 의미가 강했던 이름이었지만, 이후 그것은 미술사의 흐름을 바꾼 새로운 예술운동의 명칭이 됐다.
역사는 때때로 조롱받던 이름을 혁신의 이름으로 바꾸어 놓는다. 모네와 동료들은 사람들이 익숙하게 생각했던 회화의 규칙을 따르기보다 자신들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를 선택했다. 그 선택은 결국 현대미술로 향하는 커다란 문을 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예술적 성공 뒤에도 모네의 삶에는 깊은 상실이 있었다. 젊은 시절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고, 1879년에는 첫 번째 아내 카미유를 먼저 떠나보내야 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도 모네는 화가였다.
그에게 그림은 슬픔을 잊는 수단이 아니라 슬픔 속에서도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하나의 방식이었다. 삶은 계속해서 무언가를 빼앗아갔지만 그는 다시 캔버스 앞에 섰다. 어쩌면 예술가에게 작업이란 행복할 때만 가능한 일이 아닐 것이다. 상실과 절망 속에서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계속하는 것, 그것이 때로는 예술가가 삶을 견디는 방법이 된다.
지베르니, 자신이 만든 하나의 세계
1883년 모네는 지베르니에 정착했다. 그곳에서 그는 집 주변에 정원을 만들기 시작했다. 꽃을 심고 연못을 만들었으며 수련을 키웠다. 일본 미술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일본 판화를 수집했고, 정원에는 일본풍 다리도 설치했다. 그에게 정원은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자연을 찾아다니던 화가가 말년에 이르러서는 자신이 직접 그림이 될 자연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가 가꾼 정원은 결국 모네 예술의 가장 중요한 무대가 됐다. 연못 위에 떠 있는 수련, 물 위에 비친 하늘과 나무, 흔들리는 빛과 그림자.
그곳에서는 하늘과 물의 경계가 사라지고 사물과 그림자가 서로 뒤섞인다.
모네는 점점 대상 자체보다 빛과 색의 움직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의 후기 수련 연작이 현대 추상회화와 연결되어 논의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눈이 흐려져도 붓은 멈추지 않았다. 노년의 모네에게 가장 큰 시련은 백내장이었다. 화가에게 시력의 손상은 단순한 질병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색을 구분하기 어려워지고 형태가 흐릿해지는 상황은 평생 눈으로 세상을 관찰해 온 화가에게 가혹한 일이었을 것이다.
모네는 치료와 수술을 받았지만 시각의 변화로 오랫동안 어려움을 겪었다. 그럼에도 그는 붓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이 시기의 작품에서는 형태가 더욱 흐려지고 색채가 강렬해진다. 물과 꽃, 하늘과 나무의 경계도 점점 사라진다. 무엇을 그렸는지보다 무엇을 느꼈는지가 화면에 더 강하게 나타난다. 젊은 모네가 눈앞의 빛을 따라갔다면, 노년의 모네는 자신의 내면에 남아 있는 빛까지 그리려 했는지도 모른다.
보이는 세계가 흐릿해질수록 색은 더욱 자유로워졌다. 그것은 좌절의 기록이라기보다 끝까지 그림으로 세상과 대화하고자 했던 한 인간의 흔적처럼 보인다.
빛을 사랑한다는 것
모네의 작품을 바라보고 있으면 ‘빛을 그린 화가’라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빛을 그린 사람이 아니라 빛의 변화를 평생 기다린 사람이었다. 같은 장소에 앉아 빛이 달라지기를 기다렸고, 계절이 바뀌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세상이 조금 전과 다르게 보이는 바로 그 순간을 캔버스에 남겼다.
우리의 삶 역시 그렇다.
어제와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람을 만나고 같은 하루를 살아가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어느 하루도 완전히 같지 않다. 사람도 변하고 풍경도 변하고 우리 자신도 변한다.
문제는 그 변화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익숙하다는 이유로 보지 않고,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이상 질문하지 않는 순간 세상은 점점 단조로워진다.
모네의 그림은 우리에게 다시 보라고 말하는 듯하다. 나무 한 그루를 다시 보고, 물 위의 빛을 다시 보고, 오래 함께한 사람의 얼굴도 다시 바라보라고 한다.
어둠 속에서도 빛은 사라지지 않는다
모네는 1926년 지베르니에서 생을 마쳤다. 그가 떠난 지 한 세기가 지나가고 있지만 그의 수련과 정원, 그리고 캔버스 위의 빛은 여전히 우리 앞에 남아 있다. 그의 삶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찬란했던 성공만이 아니다.

가난했던 청년 시절에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도, 노년에 시력이 크게 약해졌을 때도 그는 다시 캔버스 앞으로 돌아왔다. 세상이 흐릿해졌다고 해서 빛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그것이 모네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중요한 메시지인지도 모른다.
삶을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시야가 흐려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실패와 상실을 겪고, 때로는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시간이 온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모든 것을 선명하게 볼 수 있는 눈이 아닐지도 모른다.
흐릿한 세계 속에서도 아직 남아 있는 작은 빛을 발견하려는 마음일 것이다.
그리고 그 빛을 끝까지 놓지 않는 것. 모네는 평생 그것을 그림으로 보여주었다.
빛은 매 순간 변한다. 그러나 그 변화하는 빛을 붙잡으려 했던 한 인간의 마음만은, 백 년이 지난 지금도 지베르니의 연못 위에서 여전히 반짝이고 있다.
글 ㅣ 김진혁 한국취업경제신문 부회장

필자: 김진혁 프로필
한국외국어대학교와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을 졸업하고 행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쌍용투자증권, 투자자문사, 솔로몬에셋 상무를 거쳐 ㈜금강랜드 대표와 미래성공전략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단법인 한국취업컨설턴트협회 공동대표, 한국취업경제신문 부회장, CBMC 신라지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경영지도사, 인증코치, 사회복지사 자격을 보유하고 있으며, 문학신문 수필 부문과 새한국문학회 시 부문을 통해 등단했다.
저서로는 《골프 시크릿》, 《기회》, 《화폐인문학》, 《돈 되는 진짜 공부》, 《크리스천이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66, 77, 88가지》, 시집 《사랑하며 살아가기》, 《행복한 부자로 만드는 황금열쇠》, 《이 별에서 현명해지기》 등이 있다.
글 ㅣ김진혁 한국취업경제신문 부회장
김진혁 칼럼니스트 kimjinhyu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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