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우 | 문화예술기획 제이비엠 대표

카라바조(Caravaggio) 작품을 오마주(Hommage)한래퍼 웨스트사이드 건(westside Gunn)2020년 앨범 “Pray For Paris” 앞면

음반을 손에 들었을 때 음악보다 먼저 만나는 것은 표지다. 한 장의 그림이 소리의 인상을 예고하기도 하고, 음악을 들은 뒤 그 그림이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도 한다. 

카라바조(Caravaggio) 작품을 오마주(Hommage)한래퍼 웨스트사이드 건(westside Gunn)2020년 앨범 “Pray For Paris” 뒷면

미국 래퍼 웨스트사이드 건(Westside Gunn)의 2020년 앨범 ‘Pray for Paris’는 그러한 만남을 흥미롭게 보여주는 음반이다. 바로크 회화의 거장 카라바조와 패션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 그리고 현대 힙합 음악가의 감각이 한 장의 표지에서 교차한다.

 

이 음반을 눈으로 즐기며 듣기 위해서는 먼저 카라바조의 그림 앞으로 다가갈 필요가 있다. 

카라바조(Caravaggio) 작품Medusa (1597-1598)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1~1610). 긴 본명보다 ‘카라바조’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그는 빛과 어둠의 대비로 인간의 육체와 감정을 강렬하게 드러낸 이탈리아 화가다.

카라바조(Caravaggio) 작품 Judith Beheading Holofernes (1599)

이름이 낯설더라도 ‘메두사’, ‘나르키소스’,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딧’ 같은 작품은 한 번쯤 마주했을 법하다. 그의 그림에서 빛은 인물을 밝히는 데 그치지 않는다. 어둠 속에서 얼굴과 손, 몸짓을 불러내며 사건의 긴장과 인간의 내면을 함께 드러낸다.

카라바조(Caravaggio) 작품 Narcissuss (1600)

카라바조는 1584년 밀라노에서 견습생활을 시작했으며, 이후 로마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생애 마지막 시기에는 나폴리와 몰타, 시칠리아 등을 오갔다. 그의 회화는 인간의 신체와 감정을 사실적으로 관찰하는 태도에 극적인 조명을 결합한 것으로 평가된다. 짙은 어둠과 강한 빛을 대비시키는 테네브리즘은 그 특징을 집약한다.

카라바조(Caravaggio) 작품 Narcissuss (1600)

빛을 받은 인물은 관객 바로 앞에 서 있는 듯 생생하고, 주변을 감싼 어둠은 화면 밖으로도 이어질 듯 깊다. 이러한 표현은 성서와 신화의 이야기를 멀리 떨어진 관념의 세계에서 끌어내려 인간의 현실적인 사건으로 느끼게 한다. 카라바조의 혁신이 바로크 회화에 끼친 영향은 루벤스와 리베라, 벨라스케스, 렘브란트 등 여러 작가의 작품에서도 직간접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수백 년 전 화가의 그림은 어떻게 오늘의 힙합 음반과 만났을까. 그 사이에 버질 아블로(Virgil Abloh, 1980~2021)가 있다.

버질 아블로(Virgil Abloh)

아블로가 작업한 ‘Pray for Paris’의 표지는 카라바조의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을 바탕으로 한다. 그는 그림 속 다윗의 목에 웨스트사이드 건을 상징하는 목걸이들을 더했다. 고전 회화의 인물이 현대 힙합 문화의 장신구를 걸치면서, 원작의 비장한 분위기 위로 새로운 시대의 취향과 성공의 상징이 겹쳐진다. 음반 발매 당시 두 사람이 함께한 인터뷰에서도 이러한 표지 작업과 협업의 배경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림의 기본 구도를 유지하면서 작은 개입으로 의미를 바꾸는 방식은 아블로의 감각을 잘 보여준다. 익숙한 이미지도 무엇과 결합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이 표지에서는 성서적 서사와 거리의 문화, 고전미술과 패션이 한 화면 안에 놓인다.

 

미국 일리노이주 록퍼드에서 가나 출신 부모 사이에 태어난 아블로는 토목공학과 건축학을 공부했다. 건축을 배우는 동안에도 티셔츠를 디자인하고 패션과 디자인에 관한 글을 쓰며 자신의 관심을 넓혔다. 구조를 이해하는 훈련과 이미지를 다루는 감각은 이후 그의 다양한 활동을 지탱하는 바탕이 되었다.

 

카니예 웨스트와의 만남은 음악과 패션을 연결하는 중요한 계기였다. 아블로는 2009년 웨스트와 함께 펜디에서 인턴십을 경험했고, 이후 웨스트의 크리에이티브 조직 돈다에서 활동했다. 오프화이트를 통해 자신만의 디자인 언어를 펼쳤으며, 2018년에는 루이비통 남성복 아트 디렉터로 임명됐다.

 

아블로에게 음악과 패션, 건축과 시각예술은 서로 이어지는 창작의 영역이었다. 스트리트웨어의 감각을 명품 패션에 연결했던 그가 고전 회화를 힙합 음반의 표지로 가져온 일도 이러한 활동의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는 2021년 11월 28일, 4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더 많은 작업을 펼칠 수 있었을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은 안타깝다. ‘Pray for Paris’의 표지는 그가 서로 다른 문화의 언어를 얼마나 자연스럽게 연결했는지 돌아보게 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제 그림에서 소리로 시선을 옮겨보자. 음반의 주인공 웨스트사이드 건은 미국 뉴욕주 버팔로 출신으로, 본명은 앨빈 라마 워디(Alvin Lamar Worthy)다. 래퍼이자 그리셀다 레코즈의 공동 설립자로 활동하면서 음악과 패션을 긴밀하게 연결해 왔다.

 

그의 음악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는 샘플링이다. 기존 음원에서 가져온 짧은 선율과 목소리, 반복되는 리듬은 랩을 받치는 배경이면서 곡의 질감을 만드는 재료가 된다. 웨스트사이드 건의 독특한 음색은 이러한 소리 위에서 또렷한 개성을 드러낸다.

 

그의 세계에서는 거리의 거친 현실과 고급 예술, 패션과 장신구의 이미지가 함께 등장한다. 서로 멀리 떨어져 보이는 것들을 한 공간에 놓는 이 감각은 앨범 표지와도 통한다. 카라바조의 그림 속 다윗에게 더해진 목걸이는 음반의 시각적 장식인 동시에, 웨스트사이드 건이 음악 속에서 펼치는 세계를 압축한 표식처럼 읽힌다.

이번에 소개한 ‘George Bondo’와 ‘500 Dollar Ounces’를 감상의 출발점으로 삼아도 좋겠다. 반복되는 소리의 결, 그 위에 놓이는 목소리와 랩의 흐름에 귀를 기울이면 표지에서 받았던 인상이 음악 안에서 어떻게 이어지는지 생각해 볼 수 있다.

 

고전 회화를 차용한 음반 표지는 원작을 다시 보게 하고, 원작을 알고 나면 음악을 둘러싼 이미지도 한층 풍부해진다. 카라바조는 빛과 어둠으로 인간의 모습을 드러냈고, 아블로는 그 그림에 현대의 기호를 덧입혔다. 웨스트사이드 건은 자신의 음악을 통해 그 만남에 또 하나의 맥락을 부여한다.

 

‘Pray for Paris’를 듣는 시간은 이 세 사람의 시선을 차례로 통과하는 경험이다. 표지를 바라보고 음악을 들은 뒤 다시 그림으로 돌아오면,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관계들이 조금씩 눈에 들어온다. 눈으로 즐기며 듣는 음반의 매력은 바로 그러한 순간에 있다.

 

음반 개요

음반명: Pray for Paris
아티스트: 웨스트사이드 건(Westside Gunn)
발매일: 2020년 4월 17일
레이블: 그리셀다 레코즈(Griselda Records)
장르: 힙합·랩
커버 아트: 버질 아블로(Virgil Abloh)
커버 원작: 카라바조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
감상곡: George Bondo, 500 Dollar Ounces

Westside Gunn - 500 Dollar Ounces
https://www.youtube.com/watch?v=8uDP6zK5Da0&list=PLPRWtKgY2MOscSG_6wHNzFO6a8bK0mgWm&index=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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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우 칼럼니스트

jaewooart@naver.com